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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이야기 (1) - 지피지기(知彼知己)

등록일 2015-04-17 02:01 게재일 2015-04-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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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편집국장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파문으로 이완구 국무총리에 대한 자진사퇴 요구가 야당은 물론 여권 내부에서도 크게 번지고 있다. 이 총리는 결백을 주장하고 있지만 여당내 친이(친이명박)계를 중심으로 이 총리 사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사퇴 불가피론`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양상이다. 그런 와중에도 이 총리는 증거도 없이 일방적 주장만으로 거취 문제를 결정할 수 없다면서 사퇴를 거부해 정치권이 온통 야단법석이다.

정치권의 공방을 지켜보노라니 박근혜 정부의 갈 길이 멀고, 험난하다는 생각에 안쓰런 마음뿐이다. 집권 3년차를 맞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공공부문의 개혁을 동력으로 노동, 교육, 금융 부문의 개혁을 추진하려 했던 전략이 크게 빗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령탑인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구조개혁을 통한 경제체질 개선에 매진하겠다며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정치현실이 제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노동개혁은 노사정 대타협이 결렬되면서 제동이 걸려버렸고, 공공부문 개혁의 핵심이었던 공무원연금 개혁은 국회가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휘말려 표류중이다. 설상가상으로 성과연봉제 도입과 임금피크제, 저성과자 퇴출제, 공공기관 기능재편 등의 내용을 담은 2단계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도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국정동력이 손아귀 사이로 물 새듯 새고 있는 상황이다.

여야의 사퇴압박을 받고 있는 이 총리 입장에서는 증거도 없이 마냥 총리직을 사퇴하라니 억울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옛말에 “도둑놈은 한 죄, 도둑맞은 놈은 열죄”라고 했다. 도둑놈의 죄는 물건 훔친 것 하나밖에 없지만 도둑 맞은 사람은 물건 제대로 간수 못한 죄에 쓸데없이 사람 의심하게 한 죄 등 10가지 죄를 짓게 된다는 말이다. 도둑을 탓할 일이 아니라 도둑을 막지 못한 스스로를 탓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정치판에서 기업인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는 일은 흔하디 흔한 일이다. 그래서 불법적인 일과 관련이 없는 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당사자로서, 국정을 책임지고 영을 세워야 할 총리로서 정치자금 스캔들에 휘말린 것은 돌이키기 어려운 치명상이다.

정치판은 언제나 전쟁이다. 그리고 전쟁에 관한 한 영원한 고전인 손자병법에서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고 했다. 손자는 나를 아는 건 당연하고, 적을 아는 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보면 상대를 아는 것보다 자신을 안다는 게 더 어려울 때가 많다. 열가지 자기 흠은 보지 못하고, 남의 작은 결점에만 눈이 가는 게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지피지기를 제대로 못할 경우 개인의 신세를 망치는 것은 물론 나라까지 망친다. 고려시대 최 영 장군은 과거 원나라가 지배하던 철령 이북의 땅을 내놓으라는 명나라의 요구에 반발해 요동정벌을 계획했다. 나라가 바뀌는 시기에 명나라는 전력을 다할 수 없으므로 해볼만하다는 게 최영의 계산이었다. 그러나 그는 적의 사정만 생각했을 뿐 고려의 처지는 돌아보지 못했다. 남쪽에서는 왜구가 창궐했고, 선봉에 내세울 장수는 전쟁에 반대하는 이성계였다. 그런 상황에서 전쟁을 강행하다 보니 결국 위화도 회군으로 이어졌고, 최영 장군 자신의 목숨을 잃은 건 물론이고 고려왕조까지 무너지고 말았다. 모름지기 싸움이나 전쟁을 하려면 적을 알기에 앞서 나 자신부터 잘 알아야 한다. 마음을 비우고 적의 위치에서 나를 바라볼 필요가 있고, 적의 입장에서 적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래저래 남을 아는 것은 어렵고, 자신을 알기란 더 어렵다. 그래서 더 어려운 지피지기(知彼知己)를 이 총리에게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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