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연설이었다.
지난 8일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국회교섭단체 대표 연설이 끝나자 여야의원들은 물론 국민들이 함께 박수쳤다. 유 원내대표는 이날 연설에서“새누리당은 보수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한다”면서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고 싶다”고 했다.
유 원내대표는 평소 자신이 견지해온 `경제는 중도, 안보는 보수`기조를 바탕으로 현안에 대한 입장을 조목조목 피력했다. 특히 기존 여당의 입장에서 볼때 중도나 중도좌파적 정책까지 과감하게 내세우며 새누리당도 시대흐름에 맞춰 혁신하고 변화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경제·안보정당`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정책노선의 `우클릭`을 모색하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여야가 어떤 점을 목표로 수렴하는 듯한 움직임은 매우 흥미롭다.
유 원내대표는 연설에서 보수의 정의를 내렸다. “제가 꿈꾸는 보수는 정의롭고 공정하며, 진실되며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땀흘려 노력하는 보수이다.”그러면서 그는 “새누리당은 가진 자, 기득권 세력, 재벌대기업의 편이 아니라, 고통받는 서민과 중산층의 편에 서겠다”고 했다. 예전 진보정당 대표 연설에서나 나올법한 단어로 점철된 연설이었다. 그는 “10년 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처음 `양극화 해소`를 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찰을 높이 평가한다”고도 했다. 가장 파격적이었던 대목은 박근혜 정부가 공약으로 내건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반성과 대안제시부분이었다. 유 원내대표는 2012년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과 관련한 134조5천억원의 공약가계부를 더 이상 지킬 수 없는 점을 반성한다고 고백했다. 아예 “지난 3년간 예산 대비 세수부족은 22조2천억원으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다”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그는“이제 우리 정치권은 국민 앞에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여야 간에 중부담-중복지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는 만큼 우리는 국민의 동의를 전제로 이 목표에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당의 전통적 지지층인 `재벌`개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유 원내대표는 “재벌대기업은 지난날 정부의 특혜와 국민의 희생으로 오늘의 성장을 이뤘다”며 “천민자본주의 단계를 벗어나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의 아픔을 알고 2차, 3차 하도급업체의 아픔을 알고 이런 문제의 해결에 자발적으로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에 대해서도 “재벌대기업에 임금인상을 호소할 게 아니라 하청단가를 올려 중소기업의 임금인상과 고용유지가 가능하도록 해야한다”고 지적하고 “재벌그룹 총수일가를 보통사람과 똑같이 처벌하고 사면, 복권, 가석방 등도 다르게 취급하면 안된다”고 밝혔다. 다만 유 원내대표는 안보이슈에 대해서만큼은 “정통보수의 길을 확실하게 가겠다”면서 야당과 분명한 차별화에 나섰다.
보수여당 원내대표가 대다수 국민들이 아쉽게 생각하는 문제들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자성을 촉구한 것이다. 이제 공은 던져졌다. 일각에서는 유 원내대표가 이날 연설에서 밝힌 세금과 복지 문제, 재벌개혁 등에 대한 입장과 기조는 기존 당의 기본 입장과 차이가 있어 향후 당내 논란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되어서도, 되지도 않을 것이다. 청와대는 자제모드에 들어갔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별도의 논평을 삼가겠다”고 말했다. 섣부른 논평으로 국민감정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청와대도 이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을 해선 안된다.
예전 권위주의 정권시절, 한 기업 총수가 “대한민국 경제는 이류, 행정은 삼류, 정치는 사류”라고 논평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던 걸 생각하면 이제 `사류`정치의 급수가 좀 올라가려나 하는 기대를 갖게 된다. 유 원내대표의 연설을 본 시민들의 반응도 내 맘과 같은 듯 했다. “진작 이랬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