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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이야기(2)-싸우지 않고 이기기

등록일 2015-04-24 02:01 게재일 2015-04-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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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편집국장
▲ 김진호편집국장

이완구 총리의 사퇴는 자초한 측면이 많다. 국회 인사청문회 때 부동산 투기, 언론 외압, 병역 기피 등 각종 의혹을 안고 취임한 이 총리는 지난달 12일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주위에서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다. 과거 정권에서 사정수사가 성공한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주위의 우려속에 이 총리의 사정의지는 검찰의 포스코건설과 경남기업 압수 수색으로 이어졌다. 정치권에서 마당발로 알려진 성완종 전 회장의 경남기업이 `MB 정부`자원 외교 비리 수사의 첫 표적으로 지목됐고, 우려곡절끝에 지난 9일 성 전 회장이 자살하고 말았다. 그는 친박 핵심 정치인 8명에 대한 금품 로비 내용을 적은 `메모`와 육성 인터뷰를 남겼다. 육성 파일을 통해서는 “2013년 재·보궐 선거 때 (이 전 총리에게) 3000만원을 줬다”고 폭로했다. 이 총리는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성 전 회장한테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까지 내놓겠다”며 배수진을 쳤지만 섣부른 해명이 되고 말았다. 성 전 회장 운전기사가 “2013년 4월 4일 성 전 회장이 이 총리와 선거사무소에서 단둘이 만났고, (3000만원이 든) 비타500 상자를 두고 왔다”고 폭로했고, 이 총리는 “성 전 회장이 왔는지 모른다”고 했다가 “독대는 하지 않았다”고 다시 말을 바꿨다. 더구나 이 총리와 성 전 회장이 최근 1년 사이 200회가 넘는 전화를 주고받은 객관적 물증까지 등장하자 이 총리는 더이상 버티지못하고 사퇴의사를 밝혔다. 총리 취임 63일만이었다.

아직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성 전 회장이 지난 16년간 주요 정관계 인물에 보낸 선물 리스트를 별도로 작성해 관리해 온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 선물 명단에는 `성완종 리스트`에 거론된 8인은 물론 박근혜 정부 청와대 고위 인사와 장관 등도 다수 포함됐다. 적지 않은 후폭풍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A4용지 200장으로 이뤄진 장부에는 성 회장이 16년 동안 해마다 500여명의 정관계 인사들에게 전달한 선물 내역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한다. 특히 성완종 리스트에 거론된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은 물론 이완구 국무총리, 김기춘 전 비서실장, 홍문종 의원 등 금품수수 의혹에 연루된 인물들이 모두 성 회장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치판에서 싸움이나 전쟁은 일상적이다. 다만 싸움도 다 똑같은 게 아니다. 피투성이가 된 상처뿐인 영광이 있는 가 하면,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완벽한 승리도 있다. 전쟁은 즐거움을 주자고 하는 것도, 박수를 받자고 하는 것도 아니다. 적을 굴복시키고 적이 가진 것을 빼앗는 게 목적이다. 어떻게 하면 나는 다치지 않으면서 적이 가진 것을 빼앗고, 동시에 갖고 싶었던 것을 얼마나 온전하게 내 손에 넣느냐가 관심사다.

싸움이나 전쟁에 관한 고전중의 고전인 손자병법의 모공(謨功)편에서 손자는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걸 최고라 하지 않는다(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백전백승 비선지선자야).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을 최고(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라 했다.

여(與)도, 야(野)도 성완종 리스트를 둘러싸고 헐뜯고 싸워봐야 모양만 우스운 꼴이다. 싸움은 적을 전멸시키기 보다는 온전히 보존하면서 이기는 게 좋다. 아니 가능하면 아예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좋다. 손자는 전쟁을 벌이는 맞상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치판에서의 싸움도 적군을 깡그리 죽여 없애야 하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적으로 지칭되는 경쟁자나 정당도 사회를 만들어가는 구성원이며, 더불어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의 최고 경지가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이듯 정치판에서 최고경지가 `상생의 정치`로 귀결되는 게 당연해 보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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