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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사회학

등록일 2015-06-12 02:01 게재일 2015-06-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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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편집국장

온 나라가 메르스(중동감기) 공포로 야단법석이다. 공포(恐怖)는 특정한 사물이나 상황에 대해 극렬하면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비이성적인 두려움을 말한다. 실생활에서 우리들은 공포의 대상에 따라 다양한 공포의 유형을 만난다. 예를 들어 높은 위치에 대한 두려움을 가리키는 고소공포증(acrophobia)이나 열린 곳이나 공공장소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광장공포증(agoraphobia), 그리고 밀폐된 공간에 대한 두려움인 폐쇄공포증(claustrophobia) 등은 일반인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증상이다.

요즘 세태를 보면 여기에다 메르스 공포(mersphobia)를 하나 더 추가해야 할 판이다. 메르스공포는 `메르스`처럼 전염돼 질병 자체보다 후유증이 더 무섭게 퍼지고 있다. 수도권의 대다수 학교들이 메르스 전염을 피해 휴교를 하니, 학생들이 갈 곳이 없어 PC방이 북새통이란다. 경찰이 음주단속을 미온적으로 하자 음주운전도 부쩍 늘었다. 음주측정기를 통해 메르스가 감염될 수 있다는 이유로 경찰이 “명백한 음주운전자에 대해서만 음주측정을 하라”는 업무지시를 각 지방청에 하달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만취상태가 아니면 대리운전을 부르지 않아 대리운전업계가 “손님이 절반 이상 줄었다”고 하소연한다.

11일에는 전날 2차검사에서 음성으로 나왔던 임신부가 최종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져 시끄럽다. 병원이나 보건소에는 `임신부가 감염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임신부들은 태아에 영향을 미칠까봐 약 같은 것도 잘못먹기 때문에 더욱 큰 걱정이다. 문제는 메르스가 임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거의 연구된 게 없다는 데 있다. 그저 임신부가 감염될 경우, 증상이 더 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문가들의 전망만 나와있다. 임신부는 태아와 함께 호흡해야 해 필요한 호흡량이 20% 가량 늘어나는데 폐활량이 떨어져 있어 호흡기 질환에 취약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메르스 공포가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기저에는 공포심리의 확산기제가 작용하고 있다. 바로 엘러리 퀸이 쓴 소설 `꼬리아홉 고양이`에 적용된 공포의 사회학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공포심리는 살인 그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무차별 살인사건으로 인해 군중들이 느끼는 공포, 익명의 타인들 사이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도시인들만이 느끼는 공포, 바로 `모른다`는 사실이 공포를 확대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살인사건은 벌어지고 있으나 살인범이 밝혀지지 않는다. 똑같은 방법으로 살해당한 시체는 계속 늘어가는 데, 범인은 내 이웃에 살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미치광이 범인은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사는 내 가족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번져나가는 것이다.

메르스가 공포로 번진 것 역시 치료약도, 예방약도 없어 해법을 모른다는 점에서 출발했고, 치사율 40%란 사실이 과대포장됐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메르스에) 걸리기만 하면 약도 없이 반수는 죽는다`는 걸로 잘못 알고, 공포에 빠지는 것이다. 유럽 질병통제센터가 지난 달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메르스 치사율은 40.8%(확진 환자 1172명·사망자 479명)에 이른다. 그러나 11일 현재 국내 메르스 환자의 치사율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실제로 10일 기준, 메르스 확진환자 108명 가운데 9명이 사망해 현재 국내 메르스 치사율은 8.3%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독감이나 폐렴에 걸려 사망하는 치사률과 비슷하다. 통상 폐렴구군에 의한 폐렴이 5~7%의 사망률을 보이며, 연령이 올라갈수록 폐렴에 의한 사망률이 훨씬 더 올라가기 때문이다.

미지(未知)에 대해 인간이 공포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이 공포를 잡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를 제때 제공하고, 그에 따른 대책을 적확하게 실행하는 방책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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