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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누가 `진실한 사람`인가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박근혜 대통령이 “진실(眞實)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 한마디에 새누리당의 텃밭인 대구·경북(TK)지역에서는 온통 유치하고 낯 뜨거운 `진실한 사람 찾기` 게임이 한창이다. 지난 20일에는 아예 `진박`을 자처하며 20대 총선 대구지역에 출사표를 던진 6명의 `진실한 사람들`이 대구 남구의 한 식당에 모였다. 이른바 `진실한 6인방` 모임이다. 이날 참석자의 면면을 보면 박근혜 정부의 장관·청와대참모 출신으로 TK(대구·경북) 물갈이론의 주체들이다. 대구 동구갑의 정종섭 전 행자부 장관, 대구 서구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대구 중·남구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 대구 달성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 대구 북구갑 하춘수 전 대구은행장, 대구 동구을 이재만 전 동구청장 등이다. 이들은 각각 류성걸·김상훈·김희국·이종진·권은희·유승민 의원 등 6명의 새누리당 현역의원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그중 이종진 의원은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이 출사표를 던진 직후 돌연 불출마를 선언해 `박심`에 따른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진박` 논란은 박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국무회의에서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길 부탁한다”고 언급하면서 시작됐다. 그 직후부터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이른바 `진박(진실한 친박)` `가박(가짜 친박)` 논쟁이 벌어졌다. 지난달 19일에는 친박계에 `배신의 아이콘`으로 낙인찍힌 유승민 의원에게 도전한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의 출정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친박계 행동대장급 의원들은 본격적인 `진박 마케팅`에 나섰다. 그러나 과거 수해 골프로 당에서 제명까지 당했던 의원을 선두주자로 한 이들이 `진실한 사람`을 목청껏 외쳐대는 모습이 그리 곱지만은 않았다. 그때까지도 `진실한 사람이 누구냐`에 대한 답은 없었다. 많은 국민들이 궁금해했다.그러던 중, 박 대통령이 직접 답을 내놨다. 지난 13일 대국민담화 후 가진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다. 박 대통령은 “진실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고, “진정으로 국민을 생각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그런 사람이라는 뜻이지 다른 뜻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20대 국회는 최소한 19대 국회보다 나아야 한다. 그런(진실한)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가야 국회가 제대로 국민을 위해 작동될 것”이라고 강조했다.`진실한 사람`이란 본래 말뜻대로라면 `국민이 선출하는 선출직이니 국민에 대해 진실한 사람`이란 뜻일게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은 왠지 `대통령 말 잘듣는 사람`이거나 `대통령 뜻을 거스르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 대목에서 `유권자 입장에서 진실한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해보자. 유권자를 위해 `열심히 일했거나 일할 사람`일 것이다. 현역 의원이 임기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 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임기동안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에 얼마나 열심히 출석했고, 국민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법안을 얼마나 많이 제시하고 통과시켰으며, 지역구 발전을 위해 얼마나 많은 국비예산을 확보했으며, 여러 의정 평가기관에서 어떤 평가를 받아왔나 등을 살펴보면 된다. 그런데 진실한 찾기 게임이 시작되면서 이런 기준은 깡그리 무시됐다. 그저 박근혜 정부에서 장관이나 참모로 일했다는 이유하나로 `진실한 사람` 대열에 끼어 `진박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게 과연 `박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인가` 묻고 싶다. 절대 수긍할 수 없다.심지어 최근에는 대구의 한 지역구에 출마하려고 예비후보로 뛰던 도중 좀처럼 지지율이 뜨지 않자 경북의 다른 지역구로 갈아 타고도 자신이 `진실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후보도 있다. 이같은 사람들의 `진실하지 못한` 행보에는 `불편한 진실`이 깔려있다. 바로 “TK엔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오만이다.대구·경북지역에서 `누가 과연 진실한 사람인가`를 여러분 모두에게 되물어보고 싶다.

2016-01-22

대통령의 신년 담화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삼권분립제의 폐해일까, 대통령 중심제에 젖은 대통령의 독선일까. 13일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담화를 본 상당수 지식인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놓은 반응들이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담화는 안보와 경제 두 축의 위기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고 위기타파를 위해 국민이 나서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특히 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선거구획정도 안되고, 국가경제와 국민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핵심법안들도 한 건도 처리되지 못한 현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신년담화를 되짚어보면 새해 벽두부터 북한이 기습적인 4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지난 금요일 종료된 임시국회에서는 선거구도 획정짓지 못한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으며, 국가 경제와 국민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핵심법안들이 한 건도 처리되지 못한 것이 이 나라의 안보와 경제위기를 동시에 맞게되는 비상상황을 불러왔다는 요지였다.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은 경제활성화법과 노동개혁 4법을 1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달라고 주문했다. 이번에도 통과 시켜주지 않고 계속 방치한다면 국회는 국민을 대신하는 민의의 전당이 아닌 개인의 정치를 추구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담화 말미에 박 대통령은 정치권이 아닌 국민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정치가 국민들을 위한 일에 나서고 위기의 대한민국을 위해 모든 정쟁을 내려놓고 힘을 합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국민 여러분들이 이런 정치 문화를 만들어 줘야 한다”담화에 이은 기자회견에서는 예전의 국회를 `동물국회`로, 지금의 국회를 `식물국회`로 비유하는 초강성발언도 나왔다. 기존 정치권, 즉 현재의 국회에 대한 대통령의 불신이 얼마나 큰 지 규제프리존 특별법 제정과 관련한 발언에서 여실히 확인됐다. 박 대통령은 최근 정부가 도입한 규제 프리존과 관련한 기자의 질문을 받고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과감한 규제 철폐와 인센티브를 통해 적극적인 투자가 실제로 일어나도록 정책을 세웠다”면서 “이것이 법적으로도 잘 뒷받침돼야 하고 기반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규제 프리존 특별법을 곧 만들어…”라고 말하다가 갑자기 “어휴 그런데 뭐, 지금같은 국회에서 어느 세월에 되겠나. (법을) 만들기도 겁난다”고 한숨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이날 행사를 마치고 지역기자실을 찾은 박 대통령은 “규제 프리존 특별법을 만들어서 지역 전략산업에 다양한 인센티브를 주고 아주 특별히 규제를 풀어서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도록 힘쓰겠다”며 지역언론의 관심과 협조를 당부하기도 했다.문제는 현재 국회 법안 처리의 키를 쥐고 있는 야당들의 반응이다. 더민주당 문재인 대표나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 등은 모두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반응일색이었다. 문 대표는 “재벌·대기업에는 희망이 되었을지 몰라도 서민과 중산층에는 절망만 주었을 뿐이며, 청년고용 절벽과 비정규직 차별, 전월세 대란과 가계부채까지 민생 해결 의지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평가절하했다. 안 의원 역시 “대통령의 해법은 대단히 실망스러우며, 안보와 경제, 민생 등 대통령의 인식에 절박감이 없다”면서 “무엇보다 선거구가 획정되지 못하는 전대미문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대통령의 잘못된 대국회 압박과 여기에 동조한 새누리당의 잘못된 협상태도에 기인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미국이나 영국, 독일 등 대다수의 선진국에서는 정부와 여당이 야당과 협조해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해나간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은 하루도 시끄럽지 않은 날이 없다. 비판을 위한 비판, 반대를 위한 반대로 날을 샌다. 이래서야 야당을 다독여 잘 이끌어가지 못하는 정부·여당도, 반대만 일삼는 야당도 국민의 눈에 미운 털이 박힐 뿐이다. 야당과 정치소수자를 존중하는 여당, 건설적인 비판으로 국정운영에 기여하는 야당의 모습은 언제쯤 볼 수 있을 것인가.

2016-01-15

무궁화꽃이 피었습니까?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한국이 낳은 천재 물리학자 이용후는 노벨상의 명예와 보장된 영화를 버리고 돌아온 조국에서 핵 개발 도중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임을 당한다. 이어 박정희 대통령까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이해하기 어려운 죽음을 당하게 된다. 두 사람의 죽음으로 묻혀버린 비밀 유산과 그것을 찾으려는 미국의 음모가 시작된다. 10여년 후, 한 기자의 끈질긴 추적 끝에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는데….`10여년 전에 감명 깊게 읽었던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줄거리다. 이 소설은 구소련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영원한 우방이 돼줄 것처럼 굴던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보듯 자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일순간 철수해 버리고,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의식해 `아시아는 아시아인들의 것`이라며 아시아 안보에 발을 빼는 듯한 입장을 취하던 시기에 국가존망을 우려하던 박정희 대통령과 그의 국가적 이상을 실헌하기 위해 함께 한 실존인물 이휘소 박사의 죽음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이 소설은 한일관계, 박정희와 이용후박사, 국제사회의 변화, 독도문제, 남북문제 등 어느 것 하나 실제 사실과 그리 다르지 않은 상황 설정에다가 현실과 픽션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스토리 전개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화제를 모았을 때 이런 얘기들이 나돌았다. 시중에 주변국인 중국과 러시아, 북한이 이미 핵무장했고, 일본은 우라늄 농축을 하고 있어 언제라도 핵무장이 가능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핵무장을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북한의 핵무장을 미국과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박을 통해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랬기에 미국을 비롯한 핵무장국들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압박을 이기지 못한 결과이긴 하지만) 핵무장을 강력하게 주장한 세력은 없었다. 국민들도 마지못해(?) 동의했다.그런데 2016년 병신년에 접어들자 말자 북한이 수소폭탄실험을 했다고 전격발표했다. 핵실험으로는 벌써 4번째고, 핵폭탄보다 더 강력한 수소탄 실험이란다. 이 말대로라면 그동안 우리 정부와 미국, 그리고 국제사회가 노력해온 여러가지 제재들이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 마당에 유엔안보리의 추가제재나 경제봉쇄 등이 북한의 핵무장을 해제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북한의 핵무장이 이제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자 위협으로 다가온 이 시점에 우리는 과연 어떤 대처를 해야 할까.이런저런 상념을 떠올리다 핵실험 관련한 북한정부의 성명을 읽다가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북한은 성명에서 “방대한 각종 핵살인무기로 우리 공화국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침략의 원흉 미국과 맞서고 있는 우리 공화국이 정의의 수소탄을 틀어쥔 것은 주권국가의 합법적인 자위적 권리이며 그 누구도 시비할 수 없는 정정당당한 조치”라면서 “진정한 평화와 안전은 그 어떤 굴욕적인 청탁이나 타협적인 회담탁자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납게 승냥이 무리앞에서 사냥총을 내려놓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은 없을 것”이라며 “미국의 극악무도한 대조선 적대시 정책이 근절되지 않는 한 우리의 핵개발중단이나 핵포기는 하늘이 무너져도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김진명의 소설에서처럼 북한의 핵이 남한과 손잡고 만든 것이 아닌데도 북한이 핵무장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우리 상황에도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다.정부는 이제라도 핵 정책을 다시 재고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압박을 통해 북한을 핵무장 해제시키겠다는 것은 허망한 바람에 불과하다는 걸 직시해야 한다. 핵무장국으로 둘러싸인 이 나라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핵무장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그래서 묻는다. 이 땅에 무궁화꽃이 피었습니까?

2016-01-08

행복한 세상 만들기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딸랑딸랑!`포항 죽도시장앞 국민은행 사거리에 구세군 종소리가 울려퍼진다. 성탄절을 앞둔 거리엔 종종걸음을 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 추위를 이기지 못한 탓이다. 이렇듯 추운 연말이면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온정이 그리울 때다. 성경에서는 이웃을 사랑하자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복음 7장 12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장 40절)자비를 강조하는 불교 역시 이웃사랑을 강조한다. 법구 비유경에서는 “곡식을 얻으려면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하고, 큰 부자가 되려면 보시를 행해야 하며, 장수하려면 대자비를 행해야 하고, 지혜를 얻으려면 배우고 물어야 하는 것이다. 이 네가지 일을 행해야 그 종류에 따라 결과를 얻을 것이다.”라고 했다.우리 선조들 역시 이웃사랑을 재물 위에 두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재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무릇 재물을 비밀스레 간직하는 것은 베품만 한 것이 없다. 내 재물로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흔적없이 사라질 재물이 받은 사람의 마음과 내 마음에 깊이 새겨져 변치않는 보석이 된다.” 재물을 모으는 일보다 재물로 어려운 이웃을 도우는 것이 더 훌륭하고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우리의 의식은 돈과 권력, 명예를 원한다. 그러나 깊은 무의식은 나 자신을 초월하는 사랑, 합일, 공감, 소통, 유머, 아름다움, 신성함, 고요를 원한다. 그런 진실을 깨닫고 나면 세상살이에 조금은 초연해진다.사십대가 된 어느 날, 세상사는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질까 고심하다 두 가지 진실(?)을 깨달았다. 첫번 째는 내가 상상하는 것 만큼 세상 사람들은 나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사례를 들어보자. 여러분은 일주일 전에 만났던 친구가 입었던 옷을 기억하는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친구가 어떤 색상의 어떤 옷을 입었고, 머리 모양은 어땠는 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친구에 대해 잘 기억하지 못하는 만큼 그 친구 역시 나에 대해 잘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제각각 자기 생각만 하기에도 바쁘다. 남 걱정이나 비판도 알고보면 잠시뿐이다. 하루 24시간 가운데 아주 잠깐 남 걱정 혹은 비판을 하다가 재빨리 자기 생각으로 돌아온다. 그렇다면, 내 삶의 많은 시간을 남의 눈에 비친 내 모습 걱정하는 데 쓸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두번 째는 남을 위한다면서 하는 모든 행위들도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내 가족이 잘 되기를 바라는 기도도 내 마음 깊이 들여다보면 가족이 있어서 따뜻한 나를 위한 것이고,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우는 것도 결국 내가 보고싶을 때 마음대로 볼 수 없는 외로운 내 처지가 슬퍼서 우는 것이다. 자식이 잘 되길 바라면서 욕심껏 잘해주는 것도 결국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것이다. 모두가 자기 중심의 관점에서 하는 일들이란 얘기다. 이런 두가지 사실을 마음깊이 새기고 나니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다른 사람에게 크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남 눈치 보지않고 하고 싶은 일 하고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걱정할 시간에 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그냥 해버리자고 마음먹게 된 것이다.또 내 가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이나 학벌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닌 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았는가로 측정돼야 한다고 믿게됐다. 행복이 자족에 있다면, 내가 충분히 가치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믿어야 행복할 것이다. 내가 행복해야 내가 또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2015-12-18

죽을 권리에 대한 이야기

▲ 김진호 논설위원“살아갈 권리와 마찬가지로 죽을 권리도 있다.”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신이나 가족의 결정으로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이 지난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과돼 입법화를 눈앞에 두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터져나온 반응들이다. 연명의료란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으로 임종기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임종기 환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 있게 하는 `연명의료 결정법`은 찬성하는 주장도 많지만 반대의견도 적지않아 논란이 많았다. 사람들은 누구나`오래 살고싶다`는 욕망을 갖고있다. 그렇다 해도 삶의 끝자락에서 회복할 수 없는 병에 빠져 고통스런 삶이 반복되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본인이 힘든 것은 물론이고 가족들도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이제 논란을 넘어 입법화되는 단계에 온 만큼 죽을 권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그만큼 무르익은 셈이어서 죽음에 대한 여러 단상들을 떠올리게 된다.에릭 시걸이 쓴 베스트 셀러 소설인 `러브 스토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스물 다섯살에 죽은 여자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녀가 예뻤다고. 그리고 총명했다고. 그녀가 모차르트와 바흐를 사랑했다고. 그리고 비틀즈를 사랑했다고. 그리고 나를 사랑했다고.` 알베르 카뮈가 쓴 소설 `이방인`도 이렇게 시작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은 소설들은 첫 문장에 삶 혹은 죽음을 얘기한다. 특히 죽음은 두번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너는 상황이니 충격요법에 해당하는 소설적 장치다. 누구라도 인연맺은 사람들과 영원히 헤어져야 하는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 인생의 허무함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사람은 죽는다는 걸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무의식에서는 자신은 영원히 살 것 같다. 그러다 자신이나 친인의 죽음이 눈앞에 닥쳤을 때 비로소 `우리 삶이 영원한 게 아니구나`하는 사실을 깨닫는다. 보통 사람이 가장 먼저 경험하는 죽음은 대개 부모의 죽음이다. 여기서 넌센스 퀴즈 한 토막.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제일 서럽게 우는 사람은 효자와 불효자 가운데 누굴까? 정답은 불효자다. 정답 해설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효자들은 살아계신 동안에 할 만큼 했기 때문에 울 일이 없단다. 부모가 아프면 따뜻한 밥이라도 한 번 더해 드리고 조금 더 웃어드리면 된다. 부모가 아프다고 `돌아가시면 어떡하나` 전전긍긍하며 울면 부모도 마음이 불편하다. 내일 돌아가시더라도 오늘은 생글생글 웃어야 부모도 남은 시간을 웃다가 돌아가실 수 있다.사실 나이 많은 부모가 죽는 것은 무척 아쉽고 안타깝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맨 정신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경우는 바로 자식이 부모에 앞서 갔을 때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이 미어질 수 밖에 없다. 자식을 부모의 가슴속에서 떠나 보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도 그런 경우를 당하면 어쩌랴. 떠난 사람은 보내줘야 한다. 그저 `잘가라. 안녕`하고 보내줘야 한다.이처럼 생사에 초연해지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법륜스님은 `삶과 죽음은 하나의 변화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런 깨우침이 필요하다. 바닷가에 나가 해변에 몰아치는 파도를 보라.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고, 또 일어나고 사라진다. 그러나 바다 전체를 보면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바닷물이 출렁거릴 뿐이다. 바다 전체를 보듯 인생을 관조해보자. 세상에서는 보이면 살았다고 하고, 안보이면 죽었다고 하고, 안보이다 보이면 태어났다고 한다. 세상에 실재하는 건 변화일 뿐이며 인식의 문제다. 사람이 태어나고 늙고, 죽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당연한 변화다. 그걸 알면서도 변화를 괴로워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 인간으로서 끝내 떨쳐내기 어려운 집착과 욕심때문일게다.

2015-12-11

성공한 삶

▲ 김진호 논설위원세상에 태어난 사람치고 성공한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1803년 보스턴에서 태어난, 산문가이자 사상가이며 시인이었던 랄프 왈도 에머슨은 성공적인 삶을 명쾌하게 정의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날마다 많이 웃게나/지혜로운 사람에게 존경받고/ 해맑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들에게 인정받고/ 거짓된 친구들의 배반을 견뎌내는 것,/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알아보는 것,/ 튼튼한 아이를 낳거나/ 한 뼘의 정원을 가꾸거나/ 사회여건을 개선하거나/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놓고 가는 것,/ 자네가 이곳에 살다 간 덕분에/ 단 한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이라네.`(시 `성공이란` 전문) 에머슨이 말한 성공적인 삶에 가장 부합하는 사례가 페이스북의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와 프리실라 챈 부부가 아닐까 싶다. 저커버그 부부는 최근 첫 딸의 출산 소식을 알리면서 재산의 99%를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저커버그와 그의 중국계 아내가 보유한 페이스북의 주식 가치는 450억달러(약 52조2200억원)에 달한다. 그는 딸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를 통해 “우리가 사는 오늘의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네가 자라기를 바란다”고 기부 이유를 밝혔다. 세 번의 유산 끝에 어렵게 얻은 딸을 위해 52조원 대신 `더 나은 세상`을 유산으로 남기겠다고 약속했으니 에머슨의 성공이란 정의에 완벽히 부합한다.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약관의 나이에 천문학적인 부를 쌓아올린 저커버그야말로 인터넷·모바일 시대가 낳은 살아있는 성공신화다. 그런 청년이 부와 명성, 안락한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딸에 대한 사랑을 인류사회에 대한 공헌으로 승화시킨 모습은 자못 감동적이다. 저커버그의 기부 약속은 한 세대 앞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부부와 워런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의 사회공헌 활동을 떠올리게 한다. 게이츠는 부인 멜린다 게이츠와 자신의 이름을 딴 총자산 346억 달러 규모의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하는 등 자선봉사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역시 총 250억 달러(약 29조원)를 기부해 기부의 큰손으로 불리고 있다. 그는 저커버그 부부의 기부소식을 듣고 “두뇌, 열정, 자원이 합해져 수백만 명의 삶을 바꿀 것”이라면서 “미래 세대를 대신해, 그들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젊었을 때 지칠 줄 모르는 기업가 정신으로 돈을 벌고, 성공한 후엔 사회공헌으로 세상을 감동시키는 것이 미국 부자들의 삶의 방식이다한국의 기업가들은 어떤가. 장학사업과 교육사업에 헌신한 유한양행 설립자 고(故) 유일한 박사와 같은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에 상응하는 대재벌이 사회공헌을 위해 재산의 상당 부분을 기부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재벌기업이 해마다 많게는 수백억 원의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지만 알고 보면 회삿돈으로 생색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범법행위로 사법처리될 처지에 놓인 기업인이 여론무마용으로 기부 계획을 밝혔다가 눈총을 받는 경우도 적지않았다.시인 정호승은 이렇게 노래했다. `꽃씨 속에 숨어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꽃씨 속에 숨어있는/ 잎을 보려면/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꽃씨 속에 숨어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꽃씨 속에 숨어 있는/꽃을 보려면/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시 `꽃을 보려면`전문)시인은 꽃을 보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돼야 한다고 손짓한다. 눈이 녹기를 미처 기다리지 못하고,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리지도 못하고, 내 속을 찌르는 칼마저 버리지 못했다면 오늘 들판으로 나가 먼저 봄이 되어도 좋다고 했다. 젊은 나이에 먼저 세상의 봄이 된 저커버그 부부에게 경의를 표한다.

2015-12-04

마음이 간절하면 보인다

▲ 김진호 논설위원누구나 잘 아는 심청전의 얘기다. 눈 못 보는 심봉사의 딸 어린 심청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300석에 중국상인들에게 팔려 바닷물에 몸을 던졌다. 하지만 우여곡절끝에 심청은 죽지않고 오히려 왕후의 자리에 오르게 되고, 아버지를 찾기위해 맹인잔치를 벌인다. 그때까지 눈을 뜨지 못하고 있던 심 봉사가 맹인 잔치에 나타나고, 아버지를 본 심청은 그의 목을 얼싸안고 이렇게 통곡했다. “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뜨셨소. 몽은사 화주승이 공들인다 하더니만 영검이 덜혀선가. 아이고 아버지, 인당수 풍랑중에 빠져 죽은 심청이 살아서 여기 왔소.” 이 말을 들은 심 봉사, 심청이의 얼굴을 부여잡고 통곡한다. “아니, 누가 나더러 아버지라고 혀. 나는 자식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오. 내 딸 심청이는 애비 눈뜨게 한다고 인당수에 빠져 죽었는 데 어디라고 살아오다니. 이게 웬말이냐.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꿈이거든 깨지 말고 생시거든 다시 보자” 그 순간 심봉사는 감은 눈을 희번덕 뜸으로써 맹인에서 벗어나게 되고, 꿈에도 그리던 딸 심청이의 얼굴을 보게된다. 판소리 심청전의 가슴 뭉클한 이 대목을 들을 때 마다 나는 엉뚱한 상념에 빠진다. 만약 심봉사가 평소에 딸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면 심청이와 같이 지낼 때에 벌써 눈을 떴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심 봉사가 공양미 300석에 딸까지 잃어버린 후 천우신조로 심청이를 다시 만났을 때 눈을 뜨게 된다는 건 무엇을 말하는 걸까. 바로 절망의 밑바닥을 박차고, 운명을 거슬러 오를 만큼 간절한 마음이 온 몸과 마음을 사로잡았을 때 눈을 뜨는 기적도 가능하다는 뜻이리라.`눈 뜨고 보는 일이 기적처럼 위대함`을 설파한 또 다른 사람은 바로 헬렌켈러다. 어릴 때 뇌척수염으로 추정되는 병을 앓아 시력과 청력을 잃고, 말하는 법까지 잃어버린 헬렌켈러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세계에 갇혀 버렸다. 그런데도 그녀는 촉감으로 세상을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줄 알았다. 그녀의 밝은 마음은 가정교사로 온 설리번 선생의 도움으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물`이라는 단어 하나로 7년동안 사투를 벌인 그녀는 나중에 하버드대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5개국어를 정복했다. 이후 그녀는 세계를 돌며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도왔다. 어느 날,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았던 헬렌 켈러는 숲 속을 거닐다 온 친구에게 “뭘 봤느냐”고 물어본다. 그러자 친구는 “특별한 게 없었다”고 대답한다. 헬렌 켈러는 그런 친구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두 눈이 멀쩡히 있는데,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니….` 그때 헬렌 켈러는 만약 자신이 단 삼일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을 글로 적는다. 먼저 설리번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그 다음 바람에 나풀거리는 나뭇잎과 들꽃을 보며, 마지막으로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오페라 하우스와 영화관의 멋진 공연을 볼 거라고 정한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일상이 헬렌 켈러에게는 기적 같은 순간이자 평생의 소원이었다.현세의 기적은 현재의 소중함을 알고, 최선을 다하는 간절한 마음, 소망에서 비롯된다. 그런 삶은 아름답다. 동양철학자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별기인 `붓다의 치명적 농담`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스님도 도를 닦고 있습니까?” “닦고 있지” “어떻게 하시는데요?”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잔다” “에이, 그거야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까? 도 닦는 게 그런 거라면 아무나 도를 닦고 있다고 하겠군요” “그렇지 않아, 그들은 밥 먹을 때 밥은 안 먹고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고 있고, 잠 잘때 잠은 안자고 이런저런 걱정에 시달리고 있지.”밥 먹을 때 걱정하지 말고 밥만 먹고, 잠 잘때 계획 세우지 말고 잠만 자라는 거다.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게 그리 쉽고 간단치 않다는 역설로도 들린다.한평생 간절한 마음으로 민주화를 위해 애썼던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영결식으로 분주한 하루해가 저물었다. 그리고 새벽은 올 것이다.

2015-11-27

단풍처럼 물드는 삶

▲ 김진호 논설위원가을이 깊었다. 단풍은 어느새 절정을 넘어 끝물로 치닫고 있다. 길거리에 뒹구는 낙엽을 보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쓸쓸하다고 한다. 낙엽을 보는 그네들 마음이 쓸쓸한 것이다. 떨어지는 이파리를 보면서 `찬란했던 내 젊음도 저 가랑잎처럼 스러져 가는구나`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한 해가 저물어 한 살 더 먹게 된 내 삶을 아쉬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일생은 나고, 자라고, 나이들어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이드는 일은 결코 서글프지 않다. 자연이 변화하듯 우리 삶도 편안하게 나이들 때에 그 삶에 평화로움이 깃들게 된다고 믿는다.삶을 가을철 단풍처럼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물들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려고 아등바등 몸부림치지 말아야한다. 나이 들어가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나이 들면 드는 대로, 늙으면 늙은 대로, 병이 나면 병나는 대로, 머리가 희어지면 희어지는 대로, 주름살이 생기면 주름살이 생기는 대로, 아파서 걷는 일이 불편하면 `많이 부려먹었으니 고장날 때도 됐지`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의 현재를 군말없이 받아들인 사람의 얼굴은 편안하다. 다른 사람들도 `저분은 나이 들어도 참 편안하고 당당하게 사는구나`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런 편안한 모습이 잘 물든 단풍처럼 구차스럽거나 초라하지 않게 나이드는 비결이다.또 하나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을 지표로 삼아 무슨 일이든 지나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과식을 해서는 안되고, 과음을 해서도 안된다. 과로도 금물이다. 젊을 때는 많이 먹어도, 많이 마셔도, 밤을 새워 일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지만 나이들면 이런 일들은 몸을 상하게 한다. 이것저것 자꾸 일을 벌리는 것을 피하고,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평화적으로 설득하고 점잖게 타이르는 것이 좋다. 이제 잔가지들은 정리하고 인생의 열매를 맺어가는 과정에 있는 처지에 목소리 높여 내 주장만 앞세워서야 되겠나. 철마다 드는 단풍처럼 한해한해 물들어가는 나를 차분하게 관조하며 받아들이는 여유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끝으로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어느 것 하나 그대로 사라져버리는 것이 없으니 힘 닿는대로 좋은 인연을 많이 짓기를 권한다. 불경 가운데 자설경(自說經)에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저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이 말씀은 인간의 모든 일들은 연기(緣起)의 법에 따라 일어나고, 인간의 모든 일들은 인(因)과 연(緣)이 서로 의존하고 관계하여 결과를 이룬다는 불교의 핵심적인 진리다. 어설픈 나쁜 말 한마디도 그대로 사라지는 법 없이 어디론가 날아가 씨앗으로 떨어져 나쁜 결과를 맺게 되고, 좋은 인연도 허망하게 사라지는 법 없이 어디엔가 씨앗으로 떨어져 좋은 열매를 맺고야 만다는 것이다.단풍 얘기를 하다보니 아이들이 어릴 적 살던 단독주택 넓은 마당에 섰던 키 큰 감나무와 중키의 무화과 나무가 생각난다. 겨울이 다가오면 잎을 모조리 털어버린 나무들은 겨우내 앙상한 가지로만 버텨야 했다. 그러다 봄이 오면 감나무는 감나무대로, 무화과 나무는 무화과 나무대로 앙상한 가지에 커다란 이파리들을 빼곡히 피워 올렸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이 짙푸른 이파리들을 비추고, 두어 계절 동안 때맞춰 내리는 빗물이 나뭇잎과 뿌리를 촉촉하게 적셔주노라면 어느덧 빨갛고 노란 열매가 나뭇가지마다 주렁주렁 맺히곤 했다.그 나무들은 자연의 섭리속에 묵묵히 서 있었다. 흙 한 줌속에서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어나고, 풀이 우거진다. 흙 한 줌속에서 감이 열리고, 대추가 매달리고, 달콤한 무화과 열매가 향기를 내뿜는다. 모든 나무가 흙 한줌에서 출발하듯 우리의 육체도 흙 한 줌에서 태어나 다시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나는 단풍처럼 아름답게 물드는 삶을 꿈꾸며 이 늦은 가을의 밤을 지새운다.

2015-11-20

행복하게 사는 법

▲ 김진호 논설위원누구에게나 `그때가 좋았어`라고 그리워하는 바로 `그때`가 있다. 그런데 과연 그때는 행복했을까 되짚어보면 그게 그렇지가 않다는 걸 알게된다. 흔히 그리워하는, 어릴 때, 젊을 때가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당장 중고등학생에게 행복하냐고 물어보라. 입시에, 학교생활에 시달려 힘들다고 답할 것이다. 대학생에게 행복하냐고 물어보라. 역시 취업준비 하느라, 학과공부 하느라 힘들다고 답할 것이다. 이렇게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난 시간은 다 아름답고 좋은 것 같아도 실제 그 시간에 늘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란 걸 알게된다.한 여론조사에서 10대부터 50대까지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세대와 상관없이 1위로 나온 것이 바로 “공부 좀 할걸”이란 반응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때 놀지 말고 공부했다면`지금 훨씬 더 잘 살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우리는 늘 후회하며 과거에 연연해 한다. `그때 이걸 알았더라면` `이런 선택을 했더라면`하고 지난 선택을 후회하고, 지금의 모습을 불만스럽게 여긴다. 되돌릴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과거에 매이면 현실은 늘 괴롭고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인생을 후회 없이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10대는 10대에 충실하고, 20대는 20대에 충실하게 살면된다. 10대에 충실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10대는 공부할 시기이니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 어른이 되면 식구들을 부양할 책임을 져야 하므로 밥벌이를 해야 하지만 10대에는 공부만 해도 되고, 그것만 잘하면 칭찬까지 듣는다. 인생에서 그런 시간이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데, 그때는 그걸 모르고 공부하는 게 힘들다며 괴로워한다. 20대는 꽃피는 청춘의 계절이다. 연애를 하고, 설레고, 가슴앓이도 한다. 청춘의 특권이다. 무슨 일을 하다 실패해도 좋다. 아직 젊으니까. 실패의 경험덕분에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삶도 성숙해진다. 이때는 이런 과정들이 힘겨워 `빨리 나이들어 이런 가슴 아픈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그 시기에는 늘 힘들고 괴롭지만 지나고 보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그리워한다. 지금 40, 50대가 나이들었다고 한탄하지만 20~30년 지나고 보면 바로 지금이 한창때였음을 알게 된다. 지금 60, 70대가 나이들었다고 서러워하지만 10년만 지나면 `내가 10년만 젊었어도`하면서 지금 이때를 그리워한다.아이들이 어른을 흉내내며 현재를 충실히 살지 못하는 것이나 젊은 사람이 험난한 세상살이가 힘들다고 `빨리 나이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늙어서 `젊을 때가 좋았다`고 나이든 것만 탓하는 것 모두가 지금 내게 주어진 행복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어린 대로, 젊을 때는 젊은 대로, 늙으면 늙은 대로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평생 행복하게 산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을 충실히 사는 것이 바로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다.사람들이 나이들어가면서 후회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불행한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더 좋은 대학에 가야하고,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더 놓은 지위에 올라야 하고, 더 널리 이름을 알리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인생을 살기 때문이다.욕망은 욕망을 부른다. 끝없는 욕망을 내려놓지 않으면 삶은 걷잡을 수 없이 피곤해진다. 이런 욕망들을 내려놓아야 인생의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욕망을 내려놓고 스스로 현재에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세상에서 추구하는 성공과 상관없이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때 사람은 행복하다. 오늘의 삶이 만족스러운 사람은 평생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2015-11-13

쉽지 않은 정치

▲ 김진호 논설위원나이를 마흔두살 먹도록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해봤다는 남자가 있었다. 왜 연애를 한번도 못했을까 궁금해서 물어보니 간단한 일을 어렵게 생각한 듯 했다.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나는 당신이 좋다”고 말하면 되는데, 그걸 못해서 연애를 못했다는 것이다. 만약 상대가 “나는 당신이 싫어”하면 “알았어”하면 되는데, 싫다는 소리가 듣기 싫고, “나도 당신이 좋아요”라는 대답을 들으려고 하니까 말을 못꺼냈단다. 상대가 싫다고 하면 “알았어”하면 된다.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가 아닌가. 그러면 다시 다른 사람에게 가서 “나는 당신이 좋다”고 하면 된다. 상대가 “나는 당신이 싫어요”한다고 해서 거기에 상처받을 필요가 없다. 그러다가 어떤 여자가 “나도 당신이 좋아요”하면 사귀면 되는 것이다.문제는 상대가 “나는 당신이 싫어요”하는 데도 내가 좋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이럴 때는 작전을 짜야한다. 나를 싫어하는 상대가 날 좋아할 수 있도록 만들려면 비상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노력하다보면 연애기술을 터득해서 상대에게 다가가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자신을 초라하게 여기면 마음이 무거워져 다른 사람을 만나기 힘들어진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거두고 마음을 가볍게 가질 필요가 있다. 마흔이 넘도록 결혼을 못했다거나 연애를 못한 것은 초라한 게 아니다. 자기가 자기를 초라하게 생각한데서 비롯된다. 사람 사는 이치는 어디서나 비슷한 법이다.정치판 역시 한쪽이 싫다해도 그 사람을 완전히 배제한 채 다른 사람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많다. 예를 들어 여당의 정책에 야당이 반대한다고 해서 야당을 완전히 배제하고 정국을 이끌어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야당도 무조건 싫다고 고개만 흔들게 아니라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는 대안을 제시해야 하고, 여당은 여당대로 반대하는 이유를 듣고, 최대한 싫다는 쪽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 한쪽이 모든 걸 다 가지는 정치는 독재와 다를 바 없다.요즘 국회는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고시로 여야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첨예한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다. 야당인 새정치연합이 국회 의사일정 마저 전면거부한 채 농성을 벌이고 있고, 새누리당은 야당의 국회복귀를 촉구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더이상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난을 듣지 않도록 상생의 국회, 일하는 국회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면서 “(과거) 야당을 이끄신 선대 정치인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의회주의와 통합의 정치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길거리 대신 원내투쟁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돌이켜 봐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의 헌법소원, 역사교과서 국정화금지법안, 국민불복종 운동 추진 계획 등을 언급한 뒤 “그런 것 다 하시라”면서 “그러나 국회를 정상 가동시키면서 해야지 19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해야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장외로만 돌아다니는지 참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이런 독려가 효험(?)을 봤는 지 새정치민주연합은 국회 농성 나흘째인 5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투쟁은 계속 벌여 나가되 조만간 국회 농성을 접고 국회에 복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날 열린 의원총회와 전국 시도당-지역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장기전 양상을 보이는 국정 교과서 저지 투쟁의 지속적·효과적 추진을 위해 이같이 방향을 잡았다는 것이다. 야당이 지난 2일부터 국회 보이콧이라는 `외통수 전략`을 접고 국회로 회군해 원내외 병행 투쟁을 벌여나가기로 궤도를 수정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국정교과서 저지 투쟁의 승부를 당장 판가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회 의사일정 참여를 계속 거부해봐야 `민생 외면`이라는 여당의 공세 프레임에 갇힐 뿐이라고 판단한 듯 하다. 또 연말 예산안 심사나 총선준비 등 굵직굵직한 정치일정을 감안할 때도 더 이상 장외투쟁은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게다. 참 쉽지않은 게 정치다.

2015-11-06

세상을 바꾸는 소통

▲ 김진호 논설위원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일이 간단한 것 같지만 참 어렵다. 나 자신도 자녀를 키우면서 소통에 많은 곤란을 겪었다. 사실 신문기자로서 바쁘게 지내느라 아이들과 그리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나로서는 아이들과 대화하는 게 쉬운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몇가지 묻다보면 왠지 질문이 아니라 취재 내지 취조 분위기로 바뀐 경우가 적지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될까 궁리한 끝에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며 대화하자고 마음먹었다.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게 소통을 위해 쉽고 빠르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크는 동안 남달리 공부하라고 성화를 부리지 않았다. 나 역시 어릴 때 공부하라는 독촉을 받는 게 싫었기 때문이었다. 법륜스님은 `엄마수업`이란 책에서 `아이들을 야단치지 말고 내 자신이 아이였을 때 어떻게 했는 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모든 엄마들은 내 아이가 1등이 되길 원하고 우등생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본인은 그랬나. 엄마 본인은 그러지 못했으면서 왜 아이한테는 강요를 하나. 그걸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결코 사랑이 아니라 집착일 뿐이다. 아이 입장이 돼서 봐줘야 한다는 게 스님의 충고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소통을 위해 상대 입장에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를 간파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그런데 프루스트가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데는 그가 갖고있던 대인공포증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항상 사람들한테 따돌림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어서 대화할 때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걸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의 머릿속에 있는 걸 끄집어 내서 이야기하려고 노력했고, 그것이 사람과 사람간 소통에 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세대간 의사소통이 막히는 이유나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직원간 소통이 막히는 이유는 모두 같다.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더 강하다.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지않기 때문에 소통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의제설정이 가능한 윗사람들만 말하는 풍토가 생겨나고, 즐거워야할 회식이 힘겨운 사역(使役)으로 바뀌는 것도 같은 이유다.또 하나 소통을 잘하려면 생각을 세련되게 전달하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는 훈련이 잘 안돼있다. 우리 문화는 사색의 문화이지 서양과 같은 논쟁의 문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초등학교때부터 토론하고 논쟁한다. 끊임없이 묻고 답한다. 우리는 학교나 사회에서 그런 풍경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말이 막히면 감정적으로 멱살부터 잡는 사람들이 많다.멋진 말 한마디를 듣기 원한다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배우들의 수상소감을 귀담아 들어보라. 오래전 영화 `타이타닉`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거의 휩쓸었을 때 잭 니콜슨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영화 주연으로서 남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얘기다. 잭 니콜슨은 수상을 위해 무대에 오르자마자 “조금전까지 나는 침몰하는 줄 알았다”고 말해 웃음과 환호를 터뜨리게 만들었다. 정치판에서 멋진 말로 분위기를 일신한 예도 많다. 조지부시는 40대까지 알코올중독이었고, 대통령 후보로 나섰을 때 음주운전경력이 밝혀졌다. 기자가 당신의 음주운전 경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조지부시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실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이럴 때 우리나라 정치인 같으면 왠지 “기억이 안난다”고 했을 법한 대목에서 나온 명답이다.소통을 위해서는 우선 상대의 입장에 서서 어떻게 생각할 지 먼저 헤아릴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해 마음을 움직이는 멋진 대사로 자신의 뜻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통이 이루어진다. 소통을 잘 하면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2015-10-30

영덕원전 논란

▲ 김진호 논설위원영덕 천지원전 건설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정부는 영덕군과 영덕군의회의 동의를 얻어 지난 2012년 영덕읍 석리 일대 320여만㎡를 신규 원전 4기 유치 지역으로 지정 고시했으며, 지난 7월엔 2026~2027년 원전 2기를 영덕에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그러나 영덕군 주민들로 구성된 `영덕 핵발전소 찬반 주민투표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는 지난 2010년 영덕원전 유치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4만 군민의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이 전혀 없었기에 주민투표를 통해 군민의 목소리를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다음달 11~12일 이틀간 영덕읍 덕곡1리 등 20여 곳 투표소에서 전 군민을 대상으로 주민투표를 실시한다. 문제는 영덕군의 신규원전 유치에 대한 군민들의 여론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추진위가 최근 영덕군민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영덕핵발전소 관련 설문조사에서 영덕군민의 61.7%가 영덕핵발전소 유치에 반대하고, 68.3%가 주민투표에 동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이런 분위기에서 주민투표가 다가오자 정부도 발등에 불 떨어진 듯 부산을 떨기 시작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 20일 영덕원전사무소에서 영덕 발전 10대 대안사업을 처음으로 제안하면서 원전 반대 여론 잠재우기에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추진위는 “알맹이 없는 내용으로 영덕군민을 우롱하지말라”고 일축하며 주민투표를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영덕군의 입장도 시큰둥하다. 군이 나서서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도록 원전테마랜드나 원자력안전기술원, 원전해체연구센타 등의 지역유치나 포항-영덕KTX연장 등 획기적인 지역발전 대안이 필요한 데, 정부가 그런 제안들에 대해서는 응답하지 않고 구렁이 담넘어가듯 두루뭉수리한 공약만 내놓고 있다며 볼멘소리를 내고있다.산자부는 민간 차원의 원전 찬반 주민투표의 법적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주민투표는 군민 여론을 수렴하는 중요한 행위인 만큼 투표결과는 영덕원전의 향배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다. 원자력발전소는 아무리 사고위험이 없도록 안전하게 짓는다 해도 만에 하나 사고가 일어났을 때는 해당 지역민들의 생명과 재산에 큰 위협이 되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지역주민의 동의과정 없이 건설되어서도 안되고, 건설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영덕 원전건설을 둘러싼 논란을 보노라면 경주가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입지로 선정된 우여곡절이 떠오른다. 지난 2003년 당시 김종규 부안군수가 정부의 장기미제 국책사업이던 방폐장을 `지역발전을 위해` 부안군 위도에 유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촉발된 소위 `부안사태`는 1년 이상 지속되면서 엄청난 상처를 남겼다. 군수가 주민들에게 감금돼 폭행당했으며, 주민 160여 명이 사법처리됐다. 부상자도 500명을 넘었다. 부안사태는 주민투표에서 91.8%의 주민이 방폐장 유치를 반대해 간신히 일단락됐다. 부안사태 이후 정부는 방폐장 유치지역 선정을 공모 방식으로 바꿨다. 이에 따라 2005년 경북 경주·포항·영덕, 전북 군산시가 유치를 신청했고, 주민투표를 통해 경주시가 찬성 89.5%로 후보지로 선정됐다. 정부가 방폐장 용지를 물색한 지 19년 만이었다.오랜 기간 자리잡지 못했던 방폐장 입지를 공모 방식으로 확정지을 수 있었던 것은 유치지역에 한수원 본사이전을 포함해 막대한 지역발전사업 예산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영덕 원전건설을 둘러싼 논란을 끝낼 해법도 간단하다. 지역민들이 `원전을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 지역이 확실히 발전하겠구나`하고 생각할 만한 인센티브를 약속하면 된다. 정부가 그런 지원 약속없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원전건설을 강행했다가는 결코 좋은 결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다.대한민국 헌법 제 1조 1항과 2항을 돌이켜보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주민의 뜻에 반해 강제로 이룰 수 있는 정책은 없다.

2015-10-23

데자뷰 현상

▲ 김진호 논설위원세상을 살다 보면 처음 가본 곳인데 이전에 와본 적이 있다고 느끼거나 처음 하는 일을 전에 똑같은 일을 한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 이럴 때 우리는 꿈속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데, 이것을 `데자뷰((deja vu·기시감) 현상`이라고 한다. 최근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내게 강한`데자뷰현상`을 일으킨다.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진영 측은 “현재 사용되고 있는 역사교과서들의 역사서술이 좌편향돼 있어 이를 방치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에 위배되며, 교과서마다 서술이 달라 학생들로 하여금 혼란을 유발하고 있다”면서 통일된 역사관에 의한 역사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이에 대해 야당을 비롯한 재야정치권은 물론 역사학과 교수들이 일제히 반대운동에 나섰다. 연세대 사학과 교수 13명 전원을 필두로 고려대 한국사학과·사학과·역사교육과 교수 18명 전원과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4명, 경희대 사학과 교수 9명 전원 등은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대해 반대의 뜻을 밝히는 성명을 내고, 국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이명박 정부시절 대통령 공약사업이었던 4대강 사업을 추진할 때도 이랬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 재야단체, 환경론자, 학자나 교수들이 찬성과 반대 양편으로 갈렸다. 오랜 논란 끝에 가뭄과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시작된 4대강 사업은 하상계수가 높은 4대강 바닥을 준설하고 16개의 보는 건설했으나 최종단계인 지류·지천 정비사업은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중단되고 말았다.정말 곤혹스러웠던 점은 언론에 몸담고 있는 나로서도 이처럼 격렬한 찬반논쟁이 벌어질 때 도대체 어느 쪽 주장이 옳은 지 편들기 힘들다는 데 있었다. 온 나라의 하천과 건설 전문가들이 일제히 찬반으로 나뉘어 저마다 자기 주장이 옳다고 하니 `양쪽 다 일리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내 깜냥으로는 가뭄과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4대강 사업을 해야 한다는 측의 주장과 보를 건설해도 가뭄이나 홍수를 막기 어렵고 환경파괴와 수질오염 우려가 크다며 반대하는 측의 의견을 모두 수렴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대통령 선거공약사업인 4대강 사업을 야당이 반대한다고 해서 막을 수 없는 상황이란 점을 감안한 것이었다. 즉, 야당이나 환경단체들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4대강 사업으로 인한 환경파괴나 수질오염 등의 후유증이 생기지 않도록, 가뭄과 홍수를 예방하는 데 꼭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보 설계나 시공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는 쪽으로 힘을 쓰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었다.세월이 흘러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지금, 4대강 사업은 민간단체 전문가들에 의해 잘못된 정책도, 실패한 정책도 아니란 평가를 받고 있는 듯 하다. 임기 내 완공을 목표로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하는 바람에 관급공사 수주로 연명해왔던 상당수 국내 중소건설업체들이 문을 닫는 부작용이 아팠고, 보가 갈라지고, 녹조현상이 생겨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상수도에는 피해가 없고, 홍수 위험도가 현저히 낮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최근에는 중부지방에서 시작된 사상 최악의 가뭄이 경북 북부지역으로 번지자 정부가 항구적 가뭄 예방과 수자원 대책으로, 보·저수지의 연계 운영을 현행 4대강에서 12개 하천으로 확대해 신규 수자원을 확보하고, 지하댐 등 대체 수자원을 개발할 예정이라니 4대강 사업에 대한 따가운 비판도 다소 가라앉은 모양새다.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도 여야가 국론분열 양상으로 끌고 갈 사안이 아니다. 국정화를 추진하는 측에도 당위성이 있지만 반대하는 측의 우려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역사는 승자만의 논리로 발전하지 않는다. 헤겔이 정립, 반정립, 종합을 뜻하는 정반합(正反合)이란 논리의 삼단계 개념을 제시한 것도 오래 반복되는 데자뷰 현상을 궁구한 결과가 아닐까.

2015-10-16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

▲ 김진호 논설위원“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이 아니라 `병원균`때문에 넘어진 것일 수 있다.”미국 감염질환학회(IDWeek 2015)가 8일 `주목할 만한 연구`중 하나로 꼽은 논문제목이다. 깜짝 놀랄만한 발상의 전환이 엿보이는 얘기다. 하버드대 의과대학의 알렉산더 블레어 연구원이 미국 보스턴의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치료한 낙상사고 환자 기록을 분석한 결과, 낙상사고와 감염병을 함께 진단받은 환자 161명 가운데 절반 가까운 73명(45.3%)이 치명적인 `균혈증`을 앓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이다. 균혈증은 병원균이 혈관 속에 들어가서 몸속을 돌아다니는 상태를 말한다. 원래 혈관에는 백혈구가 있어서 병균이 존재할 수 없는데, 염증이 일부 심하게 발생하면 균혈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부 균은 혈관을 돌아다니면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하다. 연구팀은 낙상 환자 사이에서 균혈증의 비율이 매우 높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낙상사고 자체가 이미 특정 감염병이 원인이 돼 발생했을 수 있다면서 앞으로는 넘어져서 병원을 찾은 환자들에게 관련된 검사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발상의 전환은 예전과 다른 관점에서 특정 사물과 현상을 보는 것이다. 특정 사물을 보더라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유명한 모자그림이 대표적인 사례다.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모자그림이라 할 수 밖에 없는 모습이지만 어린 왕자는 이 그림을 코끼리를 삼킨 구렁이를 표현한 것이라고 털어놓는다.현대에 발상의 전환으로 경쟁력을 확보한 기업을 꼽으라면 골프를 게임의 수준으로 변화시켜 성공한 골프존(Golfzone)을 들 수 있다. 2000년에 창업한 골프존은 미국에서 골프 연습에 주로 쓰이던 시뮬레이터를 보고 사업모델을 만들었다. 여기에 한국의 강점인 IT기술을 접목해서 골프시뮬레이터가 아닌 네트워크화한 골프게임을 만든 것이다. 사람들은 골프를 치면서도 게임처럼 즐기는 것에 열광하게 됐고, 큰 성공을 거뒀다. 또 하나는 애플의 스마트폰이다. 그전까지 핸드폰은 사람들 사이의 음성통화를 연결해주는 전화기였다. 하지만 애플사는 핸드폰 제조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PDA(Personal Digital Assisstant)에 전화기능을 포함한 아이폰을 생산했다.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신개념의 전화기는 휴대폰 시장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분야는 다르지만 조선의 21대 왕인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을 묘사한 영화 `사도`가 인기를 끄는 것 역시 발상의 전환에 힘입은 결과가 아닐까 싶다. 영조가 41세에 얻은 늦둥이 아들이자 장차 자신의 뒤를 이을 사도세자를 9일동안이나 뒤주속에 가둬 죽이는, 참혹한 살인을 저지른 것은 잘 알려져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그런 일이 일어났는 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있지 않았다. 이준익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역사가 말해주고 있지 않는 부분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영조는 숙종의 둘째아들로 태어났지만 그의 어머니는 무수리출신의 미천한 신분이었기에 왕위에 오른 후에도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이 뒤따랐고, 영조가 왕의 자리에 오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노론의 등쌀에도 시달려야 했다. 스스로의 컴플렉스때문에 아들의 학문에 대한 성취를 기대했으나 학문에 힘쓰지 않는 모습에 실망을 한 영조는 대리청정에서 자신의 소신을 펼쳐보인 사도세자를 칭찬이 아니라 꾸지람으로 몰아세워 아들을 점점 삐뚤어지게 만드는, 최악의 아버지가 되고 말았다. 영화 사도를 보며 한 나라의 왕이라는 권력이 아무리 소중해도 한 아이의 아버지라는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려서야 무슨 소용이랴 하는 감상에 빠져들고 말았다.어디서든 위기는 소리없이 다가온다. 불현듯 다가온 위기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마인드를 유지해야 한다. 바로 그곳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2015-10-09

사람이 멀어질 때

▲ 김진호 논설위원학교 다닐 때는 친구가 제일로 여겨진다. 무엇이든 친구와 함께하고, 부모님에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친구에게 터놓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보다 친구를 더 믿고 의지하기도 한다. 어릴 때는 부모에게 의지하다가 학창시절에는 친구에게 의지하고, 이성에 눈을 뜨면 연애에 빠지고, 사회에 나가면 또 직장동료라는 새로운 관계를 맺어간다. 이것이 인간관계에서 자연스런 변화 양상이다. 내가 30대일 때도 그랬다. 이런 변화를 두고 사람들은 “우정이 옛날 같지 않다.” “친구들이 이기적으로 변했다.”고 섭섭해한다. 어릴 때 우정으로 뭉쳤던 친구들이 세월이 가면서 자기 살기 바빠서 자주 만나기 어려워지게 마련이다. 모여도 예전처럼 반갑지 않고 시들하기만 하다. 우정은 있지만 어릴 때 처럼 정겹고, 다정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사회생활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자신을 돌아보고 이렇게 탄식한다.“내가 필요할 때 마음놓고 소주 한 잔 마실 친구가 없어요. 누구는 왠지 불편하고, 누구는 자기주장이 너무 강해서 머리가 아프고, 누구는 남하고 타협을 할 줄 몰라 피곤해요.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을 피하다보니 주위에 사람이 자꾸 줄고, 진심으로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없어요. 추석날 고향에 내려가도 예전에 많이 모이던 친구들이 이제는 불과 한두명밖에 모이지 않아요. 그것도 마지못해 나오는 것 같아요.”대인관계가 가장 크게 변화하는 계기는 결혼을 전후해서다. 결혼하면 친구와의 만남도 점점 드물어진다. 부인의 눈치를 봐야 하니까 친구에게 술 한잔 사기도 힘들다. 여자의 경우라면 남편과 자식 챙기느라 옛 친구와 저녁약속 한번 하기가 어렵다. 가정이 있으니까 혼자 살 때 처럼 자기 마음대로 사람을 만날 수도 없다.대구서 학교를 다니다 서울서 생활하게 된 집 사람의 경우는 일년내내 친구들과 만날 기회조차 없다. 대학시절 매일같이 붙어다니던 친구들과도 명절 전후해 전화나 문자로 안부를 전하는 게 고작이다. 그래도 별 달리 불만은 없어 보인다. 두 딸과 아들 하나 건사하는 데도 시간이 모자란다며 바빠한다. 직장때문에 4년째 주말부부로 지내는 나로서는 “애들 건사하느라 수고가 많다”고 깍듯한 인사로 미안한 마음을 전할 뿐이다.지금 한 지붕아래 웃고 울며 지내는 내 아이들인들 어찌 알랴. 떨어져 살거라고 상상도 못했던 형제자매도 세월이 흐르면 뿔뿔이 흩어지게 마련인 것을. 같은 밥상에서 밥먹고 옷을 나눠 입던 형제자매도 자기 가정을 가지면 다 제 갈 길을 가게 된다. 그러면 부모형제를 내 마음대로 도와주기도 어려워진다. 가정을 따로 꾸렸으니까 부인이나 남편이 “우리 쓸 것도 없는 데, 왜 당신 마음대로 형제(자매)에게 줬느냐”고 따지면 할 말이 없어지기 때문이다.친구가 멀어지고, 형제자매 마저 예전같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자신이 몸담은 울타리가 달라지면서 생기는, 자연스런 변화다. 당연하고, 자연스런 변화인 데도 우리는 옛날 기억속에 “그때가 좋았다”며 추억에 매달린다. 친구들이 멀어지는 변화에 당황하고,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친구들이 나쁘고 의리없는 게 아니다. 형제자매가 멀어지고 소원해진게 아니다. 누구는 불편하고, 누구는 피곤해서 만나도 편하지 않다는 건 본인도 친구들에 대한 우정이 예전 같지 않다는 증거다. 형제자매가 멀어지거나 소원해지기보다 내가 챙겨야 할 식구가 생겼기에 나 스스로도 형제자매들을 잘 챙기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사람관계가 변하는 것을 억지로 잡으려고 해봐야 소용없다. `오는 사람 막지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마라`는 말이 있듯이 떠난다고 아쉬워하지도 말고, 집착하지도 않아야 편안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래야 새로운 인연도 만날 수 있다.그런 맥락에서 보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청와대와 친박계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오픈 프라이머리를 고집하는 것 역시 오롯이 자신의 길을 가려는 몸짓이니 나무라거나 말려서 해결될 일이 아니란 생각이다.

2015-10-02

가을에 듣는 사랑노래

▲ 김진호 논설위원`오 기억해주오/우리가 연인이었던 그 행복했던 날들을/ 그 시절 삶은 아름다웠고/ 태양은 오늘보다 뜨겁게 타올랐다네/죽은 잎들은 하염없이 쌓이고/너도 알리라, 내가 잊지 못하는 걸/….나를 사랑했던 너, 너를 사랑했던 나/하지만 인생은 사랑했던 두 사람을 갈라놓는 법/너무나 부드럽게, 아무 소리조차 내지 않고서/ 그리고 바다는 모래위를 지우지/하나였던 연인들의 발자국들을….`가을이 깊어간다. 그래선지 소절마다 절절한 사랑과 삶의 회한으로 가득한 샹송 `고엽(Autumn Leaves)`의 가사가 내 가슴을 울린다. 이 노래의 가사는 프랑스의 시인 쟈끄 프레베르가 썼고, 곡은 작곡가 조제프 코스마가 1945년에 초연된 롤랑 프티의 발레 작품 `랑데부`를 위해 만들었다. 1946년 이브 몽탕이 영화 `밤의 문`에서 불러 인기를 끌었는데, 영어로 번역된 `Autumn Leaves` 는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가 유명하다. 가을이면 `레미 드 구르몽`의 시 `낙엽` 중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밟는 발자국 소리가`를 읊어 보았듯이 누구나 한 번쯤 듣고, 불렀던 노래다. 특히 가을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고 난 뒤 위안을 받을 수 있는 노래다.우리는 사랑을 할 때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그래서 연인들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의식을 좋아한다. 우리나라 사람만 그런 것도 아니다. 몇 해전 들렀던 중국의 명산인 화산 정상 난간에 주렁주렁 매달린 자물쇠는 영원한 사랑을 다짐하는 징표로 보였다. 유럽도 다를 바 없다. 프랑스 퐁데자르 다리나 피렌체 두오모, 베키오 다리, 베네치아 다리 등에도 사랑의 맹세를 위한 자물쇠가 줄줄이 채워져 있고, 노트르담대성당 사랑의 자물쇠도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산타워 난간에 주렁주렁 매달린 자물쇠가 진풍경이다. 경북지역에선 예천 회룡포 전망대 가는길에 세워져 있는 사랑의 자물쇠탑이 유명하다. 회룡포 너머 보이는 하트모양의 산 모양때문인지 사랑을 맹세하는 연인들이 많이 찾는다.하지만 아무리 자물쇠를 채운 들 무슨 소용이랴. 잔인한 말일지 모르지만 사랑은 시들게 마련이다. 모래위에 새긴 발자국과 같은 것이다. 사랑은, 고엽의 가사에서 말하듯 파도가 밀려오면 지워져버리고 만다.김용택 시인은 `첫 사랑`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해 같은 처녀의 얼굴도/ 새봄에 피어나는 산중의 진달래꽃도/ 설날 입은 새 옷도/ 아, 꿈같던 그때/이 세상 전부 같던 사랑도/ 다 낡아간다네`어느 순간 사랑이 시작되면 그 사람은 그냥 한 사람이 아닌 전 우주를 담고 있는 사람이 되고, 우리는 봄날을 맞이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봄날은 계속되지 않는다. 노래가사처럼 `봄날은 간다`. 곧 바람이 불고, 잎이 떨어지고, 싸늘한 공기가 세상을 메운다.가을에 들을만한 사랑노래 가운데 가수 이선희가 지난 2014년 내놓은 자전적인 가사말의 신곡 `그중에 그대를 만나`는 또 다른 감동을 던져준다.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노래하는 것을 넘어 사람끼리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을 감동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나를 꽃처럼 불러주던 그대 입술에 핀 내 이름/이제 수많은 이름들 그중에 하나되고/오~그대의 이유였던 나의 모든 것도 그저 그렇게/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서로를 만나/사랑하고 다시 멀어지고/억겁의 시간이 지나도 어쩌면 또 다시 만나/우리 사랑 운명이었다면/내가 너의 기적이었다면`대중가수에서 서울시의원을 거쳐 다시 가수로 돌아온 이선희는 이 기간중에 결혼과 이혼이란 개인적인 아픔을 겪었고, 그 후 내놓은 이 노래에서 운명적이고 기적같은 사랑을 꿈꾸며 듣는 사람의 마음을 가차없이 흔들고 있다. 사람은, 사랑은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모양이다.

2015-09-25

`싫어요` 버튼 이야기

▲ 김진호 논설위원`싫어요`를 싫어해 왔던 페이스북이 `싫어요`버튼과 유사한 공감(共感)기능을 추가할 뜻을 밝혀 화제다. 지난 2009년 `좋아요`버튼 기능 추가 이후 요지부동이던 `싫어요` 거부 정책을 페이스북이 7년 만에 공식 포기한 셈이다.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대표는 최근 “사람들이 수년 동안 `싫어요`버튼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해 왔는데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와 관련한 작업을 진행 중이며 이를 곧 출시할 것이라고 발표하는 날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멘로파크의 페이스북 본사에서 생중계로 진행된 QA 세션에서 “`싫어요`버튼을 통해 사용자들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준다는 건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저커버그는 이날 “시리아 난민 사태나 가족의 사망 소식처럼 `좋아요` 버튼으로는 공감을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좋아요`보다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은 그동안 게시물에 대한 반응을 `좋아요(like)` `댓글(comment)` `공유(Share)` 셋으로만 제한해왔다. 페이스북은 15억 명의 사용자들이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길 원한다는 이유로 `싫어요`버튼에 대한 요청을 거부해 왔다. 새로운 공감 버튼을 도입하는 문제는 간단치 않다. 다른 이용자를 깎아내리거나 비난하는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저커버그는 “누군가 슬퍼하거나 화가 났을 때 공감을 표현하기 위한 용도로 제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페이스북 “싫어요”버튼 이야기를 듣고 분단세대를 살아온 기성세대는 “공산당이 싫어요”의 주인공 이승복을 떠올릴 것이다. 1968년 12월9일 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노동리 외딴 집으로 북한 무장공비들이 잠입, 공부하고 있던 초등학교 2학년생 이승복에게 묻는다. “야, 너는 북한이 좋으냐, 남한이 좋으냐?” “우리는 북한이 싫어요. 공산당은 싫어요.”이 말을 들은 공비가 “야!”하고 고함을 지르면서 승복이의 멱살을 잡아 번쩍 들어올렸다. 버둥거리는 승복이에게 공비 한 놈이 다가가 칼을 입 속으로 쑤셔 박았다. 두 동생도 깨어나 울기 시작했다. 공비들은 둘을 거꾸로 들어 올린 뒤, 벽에 머리를 패대기쳐 죽였다. 어머니도 죽였다. 형(이학관)은 수십 군데 찔리고도 살아남아 역사의 증인이 되었다. 당시 한 신문기자가 살아남은 형을 인터뷰한 기사를 특종보도해 세상에 참상이 생생하게 알려진 사건이다. 동족상쟁의 전란이 끝난 뒤 이념대립으로 빚어진 참극의 주인공, 반공소년 이승복의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외침은 오래도록 남한을 반공이데올로기에 침잠하게 만들었다.미국에서 “싫어요”는 훗날 `흑인 민권 운동의 어머니`로 일컬어진 로자 파크스 이야기로 이어진다. 1955년 12월 1일, 로자 파크스라는 이름의 흑인 여성이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의 한 버스 안에서 백인을 위해 자리를 내어 주라는 운전사의 요구를 거부했다가 경찰에 체포당한다. 이 사건은 흑인들의 버스 승차 거부 운동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미국 최고 법원까지 올라가 버스에서의 인종 분리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얻어낸다.법륜스님은 최근 SNS를 통해 보내는 희망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내려놓으면 스스로에 대해 핑계댈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다. 누가 `노래한번 해봐`할 때 `싫어요`라거나 `할 줄 모른다`고 빼는 것은 노래 못하는 자기를 보이기 싫기 때문이다. 즉, 겸손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잘 났다는 말이다. 자기를 놓아버리면 잘하든 못하든 그냥 한다. 잘해서 칭찬 들으려고 하니까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쥐고 있던 나를 탁 놓으면 남이 나에게 욕을 해도 그만, 칭찬을 해도 그만이다.”누군가 내게 뭔가를 해보라고 하는 데 대해 싫다고 거부하거나 변명하려들지 말자. 그저 가볍게 받아들이자. 있는 그대로 당당한 자세가 그립고 아쉽다.

2015-09-18

권위(權威)의 사회학

▲ 김진호 논설위원“권위는 내가 열망해온 게 아니다” 권위의 상징인 영국 왕위에 올라 최장기간 재위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말이다. 지난 9일 오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인근에서 열린 새로운 열차 노선 개통식에 참석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분30여초간 한 연설 에서 “많은 사람이 오늘의 또 다른 특별함에 대해 친절하게 언급해줬다”고 운을 뗀 뒤 이렇게 말했다. 여왕은 이어 “불가피하게 기나긴 인생은 많은 이정표를 지나간다. 내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며 “국내외에 있는 모든 다른 이들이 보내준 후의에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털어놨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이날 오후 5시30분께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 기간인 2만3천226일 16시간 23분을 넘어서면서 최장 재위 영국 군주라는 기록을 세웠다.권위(權威)는 어느 개인이나 조직, 관념이 사회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널리 인정되는 영향력을 지닐 경우, 이 영향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권위는 역사 발전에 대하여 긍정적으로도, 또한 부정적으로도 작용한다. 역사적으로 몰락의 위기에 처한 종래의 지배 계급은 기존의 권위에 집착하여 권위를 강제하고, 물질적 강제력인 권력에 호소한다. 권력(power)과 권위(authority)는 인간을 복종시키는 힘이자 위력이라는 의미에서 흔히 동의어로 사용되지만, 엄밀히 말하면 권위는 정당성을 획득한 권력이다.동양에서는 서양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권위에 접근하고 있다. 중국 고전인 논어 학이편에 공자의 권위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자금이 자공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가시는 모든 나라에서 반드시 정치 이야기를 들으시는 데, 선생님이 원해서인가요 아니면 그쪽에서 요청해온 것인가요?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은 온화, 선량, 공손, 검소, 겸손이라는 덕성으로 그 나라의 요청을 받은 것입니다.(夫子 溫良恭儉讓 以得之) 선생님이 먼저 의견을 내었다해도 그것은 벼슬이나 경제적 대가를 위해 의견을 내는 부류의 사람들과는 다르지요.”논어는 여기서 권위의 5대요소를 말하고 있다. 자공의 대답처럼 공자는 돈이나 벼슬을 얻으려고 정치인들과 대화하는 게 아니라 온화, 선량, 공손, 검소, 겸손이라는 다섯가지 덕목으로 제후나 정치인들을 감화시켜 감복한 그들 스스로 공자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공자는 스승으로서, 학자로서 온양공검양(溫良恭儉讓)이라고 표현한 품성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았던 것이다.현실에서 권위가 가장 필요한 곳은 바로 정치판일게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당 혁신안 처리과정과 함께 자신에 대한 재신임을 당원과 국민께 묻겠다고 선언했다. 문 대표는 “최근 당 안에서 공공연히 당을 흔들고 당을 깨려는 시도가 금도를 넘었다”며 “만약 혁신안이 끝까지 통과되지 못하면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당 대표로서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이를 회복하기 위해 재신임투표라는 극약처방을 내놓은 셈이다. 문 대표는 `투 트랙`으로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다. 하나는 오는 16일 중앙위에서 혁신안 통과와 연계하는 것이고, 이와 별도로 국민여론조사(50%)+당원 투표(50%)로 재신임을 묻는 것이다. 또 재신임 이후 `혁신`과 `통합`에 이어 `기강`을 당 운영 방향으로 제시하면서 비노 측의 정치적 공세에 대해 정면 돌파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공천 혁신안이 비주류 반발속에서도 최고위와 당무위를 통과했기에 중앙위에서 제동이 걸릴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문 대표의 운명은 별도의 재신임 평가 결과에서 결판날 전망이다. 정치권에서는 문 대표가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만큼 여론조사에서는 지지 응답률이 높게 나오겠지만, 당원투표의 향방은 불투명하다고 진단하고 있다.동서양을 망라해 `권위란 세우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는 더 어렵다`더니 `옛말이 그른 게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2015-09-11

한국의 우울한 자화상

▲ 김진호 논설위원최근 보도된 뉴스 가운데 가장 우울한 뉴스를 꼽으라면 우리나라가 11년째 34개 OECD회원국 가운데 1위인 자살률 소식이다. OECD가 발표한 `건강 통계 2015(Health Data 2015)`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자살로 사망하는 사람은 10만명 당 29.1명으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34개 OECD 회원국 평균 자살 사망자수 10만명당 12.1명에 비해서도 2배가 넘고, 11년째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어 2위 헝가리(19.4명), 3위 일본(18.7명), 4위 슬로베니아(18.6명), 5위 벨기에(17.4명) 등의 순이었다. 1985년 이후 OECD 대부분 국가의 자살률은 점차 줄어드는 반면, 한국은 2000년을 기점으로 오히려 급증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자살률이 높은 수준이지만 2010년 이후 감소하고 있다. 자살사망률이 가장 낮은 국가는 터키(2.6명)였으며, 그리스(4.2명, 2012년 기준)·멕시코(5명)·이탈리아(6.3명)·이스라엘(6.4명)이 뒤를 이었다.높은 자살률은 현재의 삶이 불만족스럽다는 증거다. 우리 선조들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하며 낙천적인 삶을 살았다. 그 이후 우리나라는 경제가 발전해 살림살이가 풍족해졌는 데, 대체 왜 자살이 느는 걸까. 삶과 죽음에 대해 담담하면서도 예리한 통찰을 보여준 법륜스님은 저서 `인생수업`에서 이렇게 얘기한다.자살의 원인은 주로`자아인식의 오류`에 있다. 사람들은 모두 남이 뭐라하든 관계없이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런 사람이 돼야해`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싶어`하는 게 있다. 이를 자아, 자아상(自我像), 자아의식이라고 한다. 우리는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상상의 자기를 만들고, 그 상상의 내가 진짜 나인 줄 착각한다. 문제는 이런 자아상이 대부분 높게 설정돼 있다는 데서 생긴다. 주변에서 기대가 크면 클 수록 `나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해`하는 목표가 너무 높게 잡히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막상 현실의 자기는 생각과 달리 너무 초라하게 생각된다. 자기가 그린 `자아상`과 성질내고 화내고 슬퍼하는 `현실의 나`사이에 간격이 너무 벌어지면 자아가 현실의 나를 못마땅해한다. 처음에는 자기를 별 볼일없다고 생각하다가 그것이 심해지면 자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워서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방안에만 들어가 있게된다. 그것이 극에 이르면 `나같이 쓸모없는 건 없어져야 해`하는 심리로 발전하고, 결국에는 자신을 죽여버린다. 즉, 자아의식이 현실의 자기를 죽여버리는 게 자살인 셈이다. 이러니 마음이 건강한 보통 사람이 자살하는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려울 수 밖에 없다.자살충동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법륜스님은 자아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자아의식에 맞게 현실의 자기를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이 자아의식이 허위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현실의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말이 서툴면 말이 서툰 게 자기이고, 공부를 못하면 공부를 못하는 게 자기이다. 이것이 현실이고, 이것은 있는 그대로 다 소중하다. 돌멩이가 큰 게 좋고, 작은 게 나쁜 게 아니듯이, 현실의 자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자기사랑이다. 그런 후 말을 잘 하고 싶으면 말하는 연습을 하면 되고, 공부를 잘하고 싶으면 공부에 시간을 더쓰면 된다. 현재의 나로부터 출발하면 조금만 노력해도 성과가 나니까 자긍심이 생긴다. 그런데 상상의 나를 기준으로 삼으면 현실의 자기가 어느 정도 나아져도 그 기준에 한참 못미치기 때문에 불만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좌절하고, 절망해 자살에 이르는 것이다. 자중자애(自重自愛), 이 간명한 이치를 잘 챙겨주지 못해 며칠전 황망히 떠나보낸 조카의 명복을 빌 뿐이다.

2015-09-04

답은 현재에 있다

▲ 김진호 논설위원“머물러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철학·법학·의학·신학자인 파우스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깨닫고 스스로 결코 만족을 모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내기를 하는 데, 악마의 힘을 빌리는 대가로 만약 자신의 삶에 만족해 “머물러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외치면 영혼을 가져가도 좋다고 약속한다. 결국 삶의 어느 순간 파우스트는 만족을 하고 이 말을 실제로 내뱉게 된다. 자신의 삶에 만족한 순간 목숨이 달아나는 내기를 한 파우스트가 마냥 어리석다고 탓할 수만은 없다. 인간의 탐욕은 측정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하다고 믿기 때문이다.이 글을 보는 순간 우리는 오히려 매 순간을 이처럼 만족하고, 감탄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되새기게 된다. 누구라도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길지않은 우리 삶에 행복은 삶이 끝나갈 때쯤에나 찾게 될 뿐이다. 숨쉬는 매 순간순간, 의미를 부여해야만 내 삶은 의미있는 삶이 된다. 그리고 내가 존재하는 이 순간에 이름을 붙여주고, 의미를 불어넣으면 모든 순간이 나에게 다가와 `꽃`이 되어줄 것이다.그런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바쁘게 직장생활을 하느라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문득 봄이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순간들 말이다. 나는 아파트 마당을 가로질러 가다가 경비실옆 화단에 핀 라일락꽃 향기를 맡게 될 때 생생한 봄을 알게 되곤 했다. 무덥고, 찌는 듯한 더위로 매사에 흥미를 잃고 짜증스러운 기분속에 하루를 보내다가 휴일날 무심코 지인들과 나들이갔다가 산자락에 핀 코스모스 군락과 그 위를 맴도는 잠자리떼를 보고 벌써 완연한 가을이구나 하고 깨닫는 것이다.사르트르는 카뮈의 `이방인`에 대한 비평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잘 짜인 이야기보다는 그 하나하나가 관능적인 기쁨인, 내일없는 작은 조각들의 광채다.” 어떤 순간이 보배로운 순간인지 우리들은 모른다. 그러니 우리가 겪는 모든 순간들을 보배롭게 보고 느끼면 된다.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근무하는 2명이 `대한민국 명장`에 뽑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지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올해 `대한민국 명장`18명을 뽑았는데, 여기에 포스코 직원 박진현(55)씨와 김공영(47)씨가 포함됐다는 것이다. 기계정비 분야 명장 박진현씨는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학업의 열정을 불태워 국립부산공업전문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고, 1985년 포스코에 입사한 이후 배관기능장, 전기기능장 등 14개 종목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는 맞춤형 통합 진단시스템 특허를 개발해 회사 수익 향상에 한몫하고 각종 숙련기술을 체계화하는 데 앞장서 명장에 뽑혔다. 금속재생산 분야 명장 김공영씨는 포철공고를 졸업하고 1987년 포스코에 입사해 제강기능장 등 8개 종목 자격증을 땄다. 그는 스테인리스강 생산과 관련한 특허 9건을 등록하는 등 고순도 스테인리스강 제조 기술을 체계화해 명장으로 선정됐다. 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서 어떤 마음으로 일해왔는지 짧은 이력에서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어느 한 분야에서 명장이 되려면 수많은 밤을 지새워야 했으리라.답은 내 앞에 있다는 걸 믿어야 한다. 답이 현재에 있다는 걸 믿어야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파울로 코엘료가 쓴 `연금술사`에서도 양치기 산티아고가 보물을 찾아 이집트로 떠났다가 갖은 고생 끝에 자신의 고향 낡은 교회터에서 보물을 찾게된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파울로는 이 이야기를 통해 꿈은 멀리 있지 않고 꿈(자아의 신화)을 찾아 나선다면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다는 걸 얘기하고 있다. 또 하나는 무언가를 온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걸 강조한다.

2015-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