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요`를 싫어해 왔던 페이스북이 `싫어요`버튼과 유사한 공감(共感)기능을 추가할 뜻을 밝혀 화제다. 지난 2009년 `좋아요`버튼 기능 추가 이후 요지부동이던 `싫어요` 거부 정책을 페이스북이 7년 만에 공식 포기한 셈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대표는 최근 “사람들이 수년 동안 `싫어요`버튼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해 왔는데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와 관련한 작업을 진행 중이며 이를 곧 출시할 것이라고 발표하는 날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멘로파크의 페이스북 본사에서 생중계로 진행된 Q&A 세션에서 “`싫어요`버튼을 통해 사용자들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준다는 건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저커버그는 이날 “시리아 난민 사태나 가족의 사망 소식처럼 `좋아요` 버튼으로는 공감을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좋아요`보다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은 그동안 게시물에 대한 반응을 `좋아요(like)` `댓글(comment)` `공유(Share)` 셋으로만 제한해왔다. 페이스북은 15억 명의 사용자들이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길 원한다는 이유로 `싫어요`버튼에 대한 요청을 거부해 왔다. 새로운 공감 버튼을 도입하는 문제는 간단치 않다. 다른 이용자를 깎아내리거나 비난하는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저커버그는 “누군가 슬퍼하거나 화가 났을 때 공감을 표현하기 위한 용도로 제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싫어요”버튼 이야기를 듣고 분단세대를 살아온 기성세대는 “공산당이 싫어요”의 주인공 이승복을 떠올릴 것이다. 1968년 12월9일 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노동리 외딴 집으로 북한 무장공비들이 잠입, 공부하고 있던 초등학교 2학년생 이승복에게 묻는다. “야, 너는 북한이 좋으냐, 남한이 좋으냐?” “우리는 북한이 싫어요. 공산당은 싫어요.”이 말을 들은 공비가 “야!”하고 고함을 지르면서 승복이의 멱살을 잡아 번쩍 들어올렸다. 버둥거리는 승복이에게 공비 한 놈이 다가가 칼을 입 속으로 쑤셔 박았다. 두 동생도 깨어나 울기 시작했다. 공비들은 둘을 거꾸로 들어 올린 뒤, 벽에 머리를 패대기쳐 죽였다. 어머니도 죽였다. 형(이학관)은 수십 군데 찔리고도 살아남아 역사의 증인이 되었다. 당시 한 신문기자가 살아남은 형을 인터뷰한 기사를 특종보도해 세상에 참상이 생생하게 알려진 사건이다. 동족상쟁의 전란이 끝난 뒤 이념대립으로 빚어진 참극의 주인공, 반공소년 이승복의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외침은 오래도록 남한을 반공이데올로기에 침잠하게 만들었다.
미국에서 “싫어요”는 훗날 `흑인 민권 운동의 어머니`로 일컬어진 로자 파크스 이야기로 이어진다. 1955년 12월 1일, 로자 파크스라는 이름의 흑인 여성이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의 한 버스 안에서 백인을 위해 자리를 내어 주라는 운전사의 요구를 거부했다가 경찰에 체포당한다. 이 사건은 흑인들의 버스 승차 거부 운동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미국 최고 법원까지 올라가 버스에서의 인종 분리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얻어낸다.
법륜스님은 최근 SNS를 통해 보내는 희망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내려놓으면 스스로에 대해 핑계댈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다. 누가 `노래한번 해봐`할 때 `싫어요`라거나 `할 줄 모른다`고 빼는 것은 노래 못하는 자기를 보이기 싫기 때문이다. 즉, 겸손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잘 났다는 말이다. 자기를 놓아버리면 잘하든 못하든 그냥 한다. 잘해서 칭찬 들으려고 하니까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쥐고 있던 나를 탁 놓으면 남이 나에게 욕을 해도 그만, 칭찬을 해도 그만이다.”
누군가 내게 뭔가를 해보라고 하는 데 대해 싫다고 거부하거나 변명하려들지 말자. 그저 가볍게 받아들이자. 있는 그대로 당당한 자세가 그립고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