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기억해주오/우리가 연인이었던 그 행복했던 날들을/ 그 시절 삶은 아름다웠고/ 태양은 오늘보다 뜨겁게 타올랐다네/죽은 잎들은 하염없이 쌓이고/너도 알리라, 내가 잊지 못하는 걸/….나를 사랑했던 너, 너를 사랑했던 나/하지만 인생은 사랑했던 두 사람을 갈라놓는 법/너무나 부드럽게, 아무 소리조차 내지 않고서/ 그리고 바다는 모래위를 지우지/하나였던 연인들의 발자국들을….`
가을이 깊어간다. 그래선지 소절마다 절절한 사랑과 삶의 회한으로 가득한 샹송 `고엽(Autumn Leaves)`의 가사가 내 가슴을 울린다. 이 노래의 가사는 프랑스의 시인 쟈끄 프레베르가 썼고, 곡은 작곡가 조제프 코스마가 1945년에 초연된 롤랑 프티의 발레 작품 `랑데부`를 위해 만들었다. 1946년 이브 몽탕이 영화 `밤의 문`에서 불러 인기를 끌었는데, 영어로 번역된 `Autumn Leaves` 는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가 유명하다. 가을이면 `레미 드 구르몽`의 시 `낙엽` 중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밟는 발자국 소리가`를 읊어 보았듯이 누구나 한 번쯤 듣고, 불렀던 노래다. 특히 가을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고 난 뒤 위안을 받을 수 있는 노래다.
우리는 사랑을 할 때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그래서 연인들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의식을 좋아한다. 우리나라 사람만 그런 것도 아니다. 몇 해전 들렀던 중국의 명산인 화산 정상 난간에 주렁주렁 매달린 자물쇠는 영원한 사랑을 다짐하는 징표로 보였다. 유럽도 다를 바 없다. 프랑스 퐁데자르 다리나 피렌체 두오모, 베키오 다리, 베네치아 다리 등에도 사랑의 맹세를 위한 자물쇠가 줄줄이 채워져 있고, 노트르담대성당 사랑의 자물쇠도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산타워 난간에 주렁주렁 매달린 자물쇠가 진풍경이다. 경북지역에선 예천 회룡포 전망대 가는길에 세워져 있는 사랑의 자물쇠탑이 유명하다. 회룡포 너머 보이는 하트모양의 산 모양때문인지 사랑을 맹세하는 연인들이 많이 찾는다.
하지만 아무리 자물쇠를 채운 들 무슨 소용이랴. 잔인한 말일지 모르지만 사랑은 시들게 마련이다. 모래위에 새긴 발자국과 같은 것이다. 사랑은, 고엽의 가사에서 말하듯 파도가 밀려오면 지워져버리고 만다.
김용택 시인은 `첫 사랑`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해 같은 처녀의 얼굴도/ 새봄에 피어나는 산중의 진달래꽃도/ 설날 입은 새 옷도/ 아, 꿈같던 그때/이 세상 전부 같던 사랑도/ 다 낡아간다네`
어느 순간 사랑이 시작되면 그 사람은 그냥 한 사람이 아닌 전 우주를 담고 있는 사람이 되고, 우리는 봄날을 맞이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봄날은 계속되지 않는다. 노래가사처럼 `봄날은 간다`. 곧 바람이 불고, 잎이 떨어지고, 싸늘한 공기가 세상을 메운다.
가을에 들을만한 사랑노래 가운데 가수 이선희가 지난 2014년 내놓은 자전적인 가사말의 신곡 `그중에 그대를 만나`는 또 다른 감동을 던져준다.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노래하는 것을 넘어 사람끼리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을 감동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꽃처럼 불러주던 그대 입술에 핀 내 이름/이제 수많은 이름들 그중에 하나되고/오~그대의 이유였던 나의 모든 것도 그저 그렇게/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서로를 만나/사랑하고 다시 멀어지고/억겁의 시간이 지나도 어쩌면 또 다시 만나/우리 사랑 운명이었다면/내가 너의 기적이었다면`
대중가수에서 서울시의원을 거쳐 다시 가수로 돌아온 이선희는 이 기간중에 결혼과 이혼이란 개인적인 아픔을 겪었고, 그 후 내놓은 이 노래에서 운명적이고 기적같은 사랑을 꿈꾸며 듣는 사람의 마음을 가차없이 흔들고 있다. 사람은, 사랑은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