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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우울한 자화상

등록일 2015-09-04 02:01 게재일 2015-09-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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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논설위원
▲ 김진호 논설위원

최근 보도된 뉴스 가운데 가장 우울한 뉴스를 꼽으라면 우리나라가 11년째 34개 OECD회원국 가운데 1위인 자살률 소식이다. OECD가 발표한 `건강 통계 2015(Health Data 2015)`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자살로 사망하는 사람은 10만명 당 29.1명으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34개 OECD 회원국 평균 자살 사망자수 10만명당 12.1명에 비해서도 2배가 넘고, 11년째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어 2위 헝가리(19.4명), 3위 일본(18.7명), 4위 슬로베니아(18.6명), 5위 벨기에(17.4명) 등의 순이었다.

1985년 이후 OECD 대부분 국가의 자살률은 점차 줄어드는 반면, 한국은 2000년을 기점으로 오히려 급증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자살률이 높은 수준이지만 2010년 이후 감소하고 있다. 자살사망률이 가장 낮은 국가는 터키(2.6명)였으며, 그리스(4.2명, 2012년 기준)·멕시코(5명)·이탈리아(6.3명)·이스라엘(6.4명)이 뒤를 이었다.

높은 자살률은 현재의 삶이 불만족스럽다는 증거다. 우리 선조들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하며 낙천적인 삶을 살았다. 그 이후 우리나라는 경제가 발전해 살림살이가 풍족해졌는 데, 대체 왜 자살이 느는 걸까. 삶과 죽음에 대해 담담하면서도 예리한 통찰을 보여준 법륜스님은 저서 `인생수업`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자살의 원인은 주로`자아인식의 오류`에 있다. 사람들은 모두 남이 뭐라하든 관계없이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런 사람이 돼야해`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싶어`하는 게 있다. 이를 자아, 자아상(自我像), 자아의식이라고 한다. 우리는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상상의 자기를 만들고, 그 상상의 내가 진짜 나인 줄 착각한다. 문제는 이런 자아상이 대부분 높게 설정돼 있다는 데서 생긴다. 주변에서 기대가 크면 클 수록 `나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해`하는 목표가 너무 높게 잡히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막상 현실의 자기는 생각과 달리 너무 초라하게 생각된다. 자기가 그린 `자아상`과 성질내고 화내고 슬퍼하는 `현실의 나`사이에 간격이 너무 벌어지면 자아가 현실의 나를 못마땅해한다. 처음에는 자기를 별 볼일없다고 생각하다가 그것이 심해지면 자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워서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방안에만 들어가 있게된다. 그것이 극에 이르면 `나같이 쓸모없는 건 없어져야 해`하는 심리로 발전하고, 결국에는 자신을 죽여버린다. 즉, 자아의식이 현실의 자기를 죽여버리는 게 자살인 셈이다. 이러니 마음이 건강한 보통 사람이 자살하는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자살충동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법륜스님은 자아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자아의식에 맞게 현실의 자기를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이 자아의식이 허위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현실의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말이 서툴면 말이 서툰 게 자기이고, 공부를 못하면 공부를 못하는 게 자기이다. 이것이 현실이고, 이것은 있는 그대로 다 소중하다. 돌멩이가 큰 게 좋고, 작은 게 나쁜 게 아니듯이, 현실의 자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자기사랑이다. 그런 후 말을 잘 하고 싶으면 말하는 연습을 하면 되고, 공부를 잘하고 싶으면 공부에 시간을 더쓰면 된다. 현재의 나로부터 출발하면 조금만 노력해도 성과가 나니까 자긍심이 생긴다. 그런데 상상의 나를 기준으로 삼으면 현실의 자기가 어느 정도 나아져도 그 기준에 한참 못미치기 때문에 불만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좌절하고, 절망해 자살에 이르는 것이다. 자중자애(自重自愛), 이 간명한 이치를 잘 챙겨주지 못해 며칠전 황망히 떠나보낸 조카의 명복을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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