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 보면 처음 가본 곳인데 이전에 와본 적이 있다고 느끼거나 처음 하는 일을 전에 똑같은 일을 한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 이럴 때 우리는 꿈속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데, 이것을 `데자뷰((deja vu·기시감) 현상`이라고 한다.
최근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내게 강한`데자뷰현상`을 일으킨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진영 측은 “현재 사용되고 있는 역사교과서들의 역사서술이 좌편향돼 있어 이를 방치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에 위배되며, 교과서마다 서술이 달라 학생들로 하여금 혼란을 유발하고 있다”면서 통일된 역사관에 의한 역사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야당을 비롯한 재야정치권은 물론 역사학과 교수들이 일제히 반대운동에 나섰다. 연세대 사학과 교수 13명 전원을 필두로 고려대 한국사학과·사학과·역사교육과 교수 18명 전원과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4명, 경희대 사학과 교수 9명 전원 등은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대해 반대의 뜻을 밝히는 성명을 내고, 국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명박 정부시절 대통령 공약사업이었던 4대강 사업을 추진할 때도 이랬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 재야단체, 환경론자, 학자나 교수들이 찬성과 반대 양편으로 갈렸다. 오랜 논란 끝에 가뭄과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시작된 4대강 사업은 하상계수가 높은 4대강 바닥을 준설하고 16개의 보는 건설했으나 최종단계인 지류·지천 정비사업은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중단되고 말았다.
정말 곤혹스러웠던 점은 언론에 몸담고 있는 나로서도 이처럼 격렬한 찬반논쟁이 벌어질 때 도대체 어느 쪽 주장이 옳은 지 편들기 힘들다는 데 있었다. 온 나라의 하천과 건설 전문가들이 일제히 찬반으로 나뉘어 저마다 자기 주장이 옳다고 하니 `양쪽 다 일리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내 깜냥으로는 가뭄과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4대강 사업을 해야 한다는 측의 주장과 보를 건설해도 가뭄이나 홍수를 막기 어렵고 환경파괴와 수질오염 우려가 크다며 반대하는 측의 의견을 모두 수렴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대통령 선거공약사업인 4대강 사업을 야당이 반대한다고 해서 막을 수 없는 상황이란 점을 감안한 것이었다. 즉, 야당이나 환경단체들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4대강 사업으로 인한 환경파괴나 수질오염 등의 후유증이 생기지 않도록, 가뭄과 홍수를 예방하는 데 꼭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보 설계나 시공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는 쪽으로 힘을 쓰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세월이 흘러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지금, 4대강 사업은 민간단체 전문가들에 의해 잘못된 정책도, 실패한 정책도 아니란 평가를 받고 있는 듯 하다. 임기 내 완공을 목표로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하는 바람에 관급공사 수주로 연명해왔던 상당수 국내 중소건설업체들이 문을 닫는 부작용이 아팠고, 보가 갈라지고, 녹조현상이 생겨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상수도에는 피해가 없고, 홍수 위험도가 현저히 낮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중부지방에서 시작된 사상 최악의 가뭄이 경북 북부지역으로 번지자 정부가 항구적 가뭄 예방과 수자원 대책으로, 보·저수지의 연계 운영을 현행 4대강에서 12개 하천으로 확대해 신규 수자원을 확보하고, 지하댐 등 대체 수자원을 개발할 예정이라니 4대강 사업에 대한 따가운 비판도 다소 가라앉은 모양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도 여야가 국론분열 양상으로 끌고 갈 사안이 아니다. 국정화를 추진하는 측에도 당위성이 있지만 반대하는 측의 우려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역사는 승자만의 논리로 발전하지 않는다. 헤겔이 정립, 반정립, 종합을 뜻하는 정반합(正反合)이란 논리의 삼단계 개념을 제시한 것도 오래 반복되는 데자뷰 현상을 궁구한 결과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