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단풍처럼 물드는 삶

등록일 2015-11-20 02:01 게재일 2015-11-20 19면
스크랩버튼
▲ 김진호<br /><br />논설위원
▲ 김진호 논설위원

가을이 깊었다. 단풍은 어느새 절정을 넘어 끝물로 치닫고 있다. 길거리에 뒹구는 낙엽을 보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쓸쓸하다고 한다. 낙엽을 보는 그네들 마음이 쓸쓸한 것이다. 떨어지는 이파리를 보면서 `찬란했던 내 젊음도 저 가랑잎처럼 스러져 가는구나`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한 해가 저물어 한 살 더 먹게 된 내 삶을 아쉬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일생은 나고, 자라고, 나이들어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이드는 일은 결코 서글프지 않다. 자연이 변화하듯 우리 삶도 편안하게 나이들 때에 그 삶에 평화로움이 깃들게 된다고 믿는다.

삶을 가을철 단풍처럼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물들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려고 아등바등 몸부림치지 말아야한다. 나이 들어가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나이 들면 드는 대로, 늙으면 늙은 대로, 병이 나면 병나는 대로, 머리가 희어지면 희어지는 대로, 주름살이 생기면 주름살이 생기는 대로, 아파서 걷는 일이 불편하면 `많이 부려먹었으니 고장날 때도 됐지`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의 현재를 군말없이 받아들인 사람의 얼굴은 편안하다. 다른 사람들도 `저분은 나이 들어도 참 편안하고 당당하게 사는구나`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런 편안한 모습이 잘 물든 단풍처럼 구차스럽거나 초라하지 않게 나이드는 비결이다.

또 하나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을 지표로 삼아 무슨 일이든 지나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과식을 해서는 안되고, 과음을 해서도 안된다. 과로도 금물이다. 젊을 때는 많이 먹어도, 많이 마셔도, 밤을 새워 일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지만 나이들면 이런 일들은 몸을 상하게 한다. 이것저것 자꾸 일을 벌리는 것을 피하고,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평화적으로 설득하고 점잖게 타이르는 것이 좋다. 이제 잔가지들은 정리하고 인생의 열매를 맺어가는 과정에 있는 처지에 목소리 높여 내 주장만 앞세워서야 되겠나. 철마다 드는 단풍처럼 한해한해 물들어가는 나를 차분하게 관조하며 받아들이는 여유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끝으로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어느 것 하나 그대로 사라져버리는 것이 없으니 힘 닿는대로 좋은 인연을 많이 짓기를 권한다. 불경 가운데 자설경(自說經)에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저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이 말씀은 인간의 모든 일들은 연기(緣起)의 법에 따라 일어나고, 인간의 모든 일들은 인(因)과 연(緣)이 서로 의존하고 관계하여 결과를 이룬다는 불교의 핵심적인 진리다. 어설픈 나쁜 말 한마디도 그대로 사라지는 법 없이 어디론가 날아가 씨앗으로 떨어져 나쁜 결과를 맺게 되고, 좋은 인연도 허망하게 사라지는 법 없이 어디엔가 씨앗으로 떨어져 좋은 열매를 맺고야 만다는 것이다.

단풍 얘기를 하다보니 아이들이 어릴 적 살던 단독주택 넓은 마당에 섰던 키 큰 감나무와 중키의 무화과 나무가 생각난다. 겨울이 다가오면 잎을 모조리 털어버린 나무들은 겨우내 앙상한 가지로만 버텨야 했다. 그러다 봄이 오면 감나무는 감나무대로, 무화과 나무는 무화과 나무대로 앙상한 가지에 커다란 이파리들을 빼곡히 피워 올렸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이 짙푸른 이파리들을 비추고, 두어 계절 동안 때맞춰 내리는 빗물이 나뭇잎과 뿌리를 촉촉하게 적셔주노라면 어느덧 빨갛고 노란 열매가 나뭇가지마다 주렁주렁 맺히곤 했다.

그 나무들은 자연의 섭리속에 묵묵히 서 있었다. 흙 한 줌속에서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어나고, 풀이 우거진다. 흙 한 줌속에서 감이 열리고, 대추가 매달리고, 달콤한 무화과 열매가 향기를 내뿜는다. 모든 나무가 흙 한줌에서 출발하듯 우리의 육체도 흙 한 줌에서 태어나 다시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단풍처럼 아름답게 물드는 삶을 꿈꾸며 이 늦은 가을의 밤을 지새운다.

김진호의 是是非非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