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철밥통` 공무원 vs 프레드

등록일 2015-06-19 02:01 게재일 2015-06-19 19면
스크랩버튼
▲ 김진호 편집국장

공무원은 국가와 국민에 헌신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공무원이란 말에는 `철밥통`이나 `부정부패`라는 부끄러운 접두사가 달렸다.

전국적으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비상이 걸린 가운데 대구에서 메르스 첫 확진환자로 판정된 대구 남구청 공무원 K씨는 철밥통 공무원의 개념없는 행보로 국민에게 충격을 던져주었다. K씨는 지난달 27일 어머니 허리 때문에 진료차 서울삼성병원 제2응급실을 다녀갔고, 이튿날 현대아산병원에 들렀다가 같은 날 오후 KTX를 이용해 대구로 귀가했다. 그 후 K씨와 같이 병원을 다녀온 누나는 지난 2일 발열 현상으로 격리된 이후 지난 10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아 대전의 한 병원에 격리됐다. 이쯤되면 자신이 메르스에 걸렸을 것으로 짐작할 만한 상황인 만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위해서라도 스스로 신고하고 자가격리조치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K씨는 신고도 제대로 않고, 이후 열흘남짓 동안 경로당과 식당, 목욕탕과 노래방 등을 섭렵하고 다녔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처신이다.

K씨 한사람만 그런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K씨가 메르스 확진환자로 판명난 당일인 지난 15일 낮 K씨가 근무하던 대구 남구 대명3동주민센터의 센터장과 사무장 등 직원 3명은 대명3동 발전협의회 소속 주민 30여명과 함께 팔공산에 있는 한 식당에서 회식을 했다. 특히 동장인 센터장은 K씨가 이날 오전 남구보건소에 들러 메르스 검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도 아랑곳않고 지역 주민들과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고 한다. 이쯤되면 질병본부의 메르스 메뉴얼이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하다는 개탄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센터장과 사무장, 동료공무원을 비롯한 14명의 공무원 모두는 K씨의 확진 판정 이후 자가격리자로 분류됐고, 주민센터는 폐쇄됐다. 개념없는 공무원들이 왜 이리 많은 지 모르겠다.

이들이 공직자로서 개념없다는 비판을 받을 만큼 업무를 건성으로 처리하는 이유는 뭘까. 조금이라도 자신의 일을 가치있고, 소중한 일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일하려 했다면 절대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을텐데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라. 그래야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며 잘 해낼 수 있다. 그런 일을 찾으라.” 그래서 우리는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은 던져두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찾아내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차라리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새로운 가치를 찾는 것이 더 쉬울 수 있다.

미국의 우체부 프레드의 사례를 보자. 그는 푸른 유니폼과 커다란 가방을 하나 메고 다니면서도 자신의 일이 단지 우편물의 위치를 이동시키는 단순노동이 아니라고 믿었다. 그는 고객이 오랫동안 집을 비우면 우편물이 쌓여 도둑들의 표적이 된다는 것을 알고, 그들의 우편물을 자신이 보관했다가 전해 주었다. 그들에게 우편물만 건네는 것이 아니라 안부를 챙기고 그들을 기억함으로써 사람사이의 `관계`를 만들 줄 알았고, 자신의 일이 결코 단순노동이 되지 않도록 했다. 마침내 보잘것없는 일상에서 위대한 가치를 발견한 그를 기념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프레드상`까지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모 방송사에서는 지난 3월부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공무원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으로 `철밥통은 가라`를 방영하고 있다. 공무원에게는 자긍심을, 시청자에게는 공무원에 대한 신뢰와 긍정의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이런 프로그램의 주인공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철밥통은 가고, 더 많은 프레드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김진호의 是是非非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