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면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여러가지 해답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 즉 자존(自尊)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존을 지키는 삶은 당당하다. 기업컨설팅으로 이름이 난 작가가 10여년전 어느 전자회사의 AS기사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자신을 ○○전자 AS기사말고 다른 말로 뭐라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어봤더니 한 사원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저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합니다. 제가 냉장고를 고치면 사람들은 시원한 음료수를 기분좋게 마시고 신선한 요리를 먹게 됩니다. 제가 텔레비전을 고쳐주면 그들의 저녁시간이 즐거워집니다. 제가 하는 일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입니다.”그는 자신의 삶이 전자제품 서비스기사로 허비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올곧은 자존의 자세다.
현재 삶에 만족하고 즐기는 모습 역시 자존에서 우러나온다. 대구시내 유원지 한 귀퉁이에서 만난 어느 포장마차집 사장님의 표정은 언제나 싱글거리는 표정이었다. 손님이 많든 적든 늘 한결같이 손님을 맞는 첫 마디부터 “어서 오세요!”하며 활기가 넘쳐 흘렀다. 새벽영업이 어찌 그리 즐겁기만 했으랴. 그래도 그는 그저 즐거운 표정으로 손님을 맞아 참으로 만족하고 행복해 하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하는, 자존감이 충만해보였다.
자존을 이야기하면서 웬 포장마차집 사장님이나 AS기사 이야기냐고 의아하게 생각할 필요없다. 중요한 것은 자존을 지키는 사람은 포장마차를 해도, 전자제품 서비스기사를 해도 행복하고 당당하지만, 자존이 없는 사람은 수백억원의 재산이 있어도 제풀에 힘들어하고, 심지어 자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흔히 삼류 정치란 말로 비하되는 우리 정치판에서 당당하게 자존을 지킨 유승민 의원이 화제다. 지난 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장본인으로 지목당한 후 2주일 가까이 사퇴를 거부해온 그는 8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라는 가치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당 원내대표가 청와대 요구에 따라 사퇴하는 것은 민주공화국의 가치에 어긋난다는 의미로 박 대통령과 친박계의 사퇴 요구를 비판하는 말로 해석됐다. 회견에서 밝힌 그의 정치철학도 자못 감동적이었다. 그는 “지난 16년간 매일 스스로에게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라고 물었다”며 “진흙에서 연꽃을 피우듯, 아무리 욕을 먹어도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라는 신념 하나로 정치를 해왔다”고 했다.
고집과 소신있는 사퇴의 변이었다. 그래서일까. 유 전 원내대표는 사퇴 당일 실시한 JTBC와 리얼미터의 여권의 차기대선후보 긴급 여론조사에서 16.8%의 지지를 받아 19.1%인 김무성 대표와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인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일약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한 것이다.
어쨌든 앞으로 유 의원이 어떤 정치적 역정을 겪게될지 지금으로선 예단하기 어렵다. 한때 친박으로 분류됐던 그가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비박`을 넘어 `반박`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사태로 정치적 선명성과 인지도를 높인 것이 성과라면 성과지만 그로 인해 겪을 역경과 고난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쩔것인가.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열정적으로 사랑하며 살아갈밖에. 그의 자존을 지키는 험난한 길위에 가로놓인 금언은 바로 `아모르 파티(Amor Fati:네 운명을 사랑하라)`란 한 구절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