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자중지란에 빠졌다. 4·13총선 참패이후 당을 수습하기 위해 출범키로 했던 비대위와 혁신위가 친박계의 조직적 반발로 무산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친박세력이 비대위와 혁신위의 출범을 가로막은 것은 비박 인사들이 주도하게 될 이들 기구가 자신들을 거세시킬 것이란 우려에서 비롯됐다. 총선이 민심의 심판이라면, 민심이 등을 돌린 상황인데도 친박계는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위해 이런저런 눈치를 보지않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그래서 비대위에 강성 비박계 의원이 포진한 데 대해 반발하면서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비박세력에게 당권을 넘겨주느니 차라리 자기들끼리 영남지역당이 되는 것도 감수하겠다는 태세다. 특히 친박계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 하나를 구심점으로 뭉쳐있는 정치세력이다. 이들은 박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을 돕기 위해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을 장악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에 빠져있는 듯하다. 그 과정에서 아무리 불편한 일이 있다해도 비박 세력이 당을 깨고 나가는 분당을 결행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판단도 한몫한다. 만에 하나 분당이 된다 해도 박 대통령을 따르는 영남지역당을 지키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새누리당이 전당대회를 통해 `도로 친박당`이 됐다고 가정할 때부터 생긴다. 국민들은 그런 새누리당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까. 아마 민심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런 집권 여당이 대선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친박이 주도하는 새누리당은 결국 대선 필패론에 직면하게 되고, 당의 분열은 불가피해질 것이다.
사실 여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데는 박 대통령이 `유승민이라는 특정인을 심판하기 위해서라면 총선 패배도 감수할 수 있다`는 비이성적 태도를 견지했기 때문이란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친박계가 `당권을 놓지 않기 위해 정권을 놓을 수 있다`는 비이성적 결기를 보인다해서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보수당인 새누리당의 앞날을 걱정하다보니 장수(長壽) 솔개 이야기가 떠올랐다. 솔개는 수명이 매우 길어서 자연 상태에서 약 25년을 산다. 그런데 아주 드물게 50년 가까이 생존하는 솔개가 있다. 그 희귀한 솔개의 생태를 연구한 조류학자들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솔개가 20년 이상 살면 몸이 노쇠하여 부리는 구부러지고, 발톱은 무뎌지고 날개 깃털도 헤어져 날기조차 힘든 볼품없는 모습이 된다. 죽음을 맞이해야하는 그 시기에 몇몇 특이한 솔개는 남다른 선택을 한다.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자각하고, 그냥 늙어 죽어가는 동료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 경이로운 솔개는 천적을 피해서 험준한 바위산으로 날아가 혼자 둥지를 튼다. 그리고 구부러진 부리로 단단한 바위를 마구 쪼아 늙은 부리를 깨트려 부순다. 고통스런 재생의 시간이 흐르면, 부리가 부서진 자리에서 매끈하고 튼튼한 새 부리가 자라난다. 그 다음에는 튼튼한 새 부리로 무뎌진 발톱을 뽑고, 낡고 추레한 깃털도 하나하나 뽑아낸다. 그런 인고의 시간을 참고 또 견디면 튼튼한 새 발톱과 날렵한 새 깃털이 돋아난다. 그렇게 솔개는 새 몸을 얻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 산고의 기간을 통해 튼튼한 부리와 발톱과 날개를 얻은 솔개는 깊은 지혜와 인내심을 겸비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 2라운드의 원숙한 생을 우아하게 시작한다. 장수 솔개처럼 스스로 자신의 부리와 발톱, 그리고 깃털마저 하나하나 뽑아내는 인고의 시간을 참고 견디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새누리당 역시 장수 솔개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여느 솔개처럼 하릴없이 역사속에 스러져 갈 것이다. 새누리당이 이제라도 자성과 인고의 시간을 거쳐 계파정치라는 구시대의 정치관행을 떨쳐내고, 국민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새로운 보수당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