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가 아름다운 이유는 내가 몇년전에 몸싸움·패싸움하던 국회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빈자리를 보면 아직 멀었구나 싶긴 하지만 발언 내용은 차라리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민주진보적인 가치를 민주진보적인 `언어`로 민주진보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전달할 때 사람들은 민주진보세력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나아가 지지할 생각을 해보게 되죠. 이것이 프레임 이론의 핵심이고, 현재 필리버스터가 그 좋은 예입니다.”
25일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기드문 진풍경인 `필리버스터(Filibuster)`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이다.
야당이 필리버스터라는 새로운 법안통과 저지방안을 실행하고 있는 데 대해 이처럼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는 시민들이 많다. 그래선지 야당은 사흘째 `필리버스터`를 이어가고 있고,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날 오전부터 본회의장 밖에서 야당에 의한 국회 마비를 규탄하는 `피켓시위`에 나섰다.
필리버스터란 미국 연방상원에서 소수파(때로는 1인의 상원의원)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사용하는 의회 전술인 데, 다수파가 양보를 하거나 법률안을 철회할 정도로 오랫동안 연설함으로써 의회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국회선진화법이라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도입됐다.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찬성하면 최장 100일까지 무제한 토론을 할 수 있으며, 발언은 의원 한 명당 1회씩 주어진다. 단 한국의 경우 미국과 달리 의제와 관련이 없는 발언은 금지된다. 또 본인이 발언을 멈추거나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중단 결의가 있으면 토론은 중단된다. 발언하는 동안 음식물을 먹는 것이 금지되고, 단상에 기대거나 앉아도 안되며, 중간에 연설을 잠깐 멈추거나 자리를 비우는 것도 안된다.
과거에도 제헌국회 때부터 `의원의 질의나 토론 등에 대해 발언 시간을 제한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어 필리버스터로 활용할 수 있었다. 1964년에는 김대중 의원이 김준연 의원의 구속동의안 통과를 막기 위해 5시간 19분 동안 연설을 진행한 바 있다. 1969년에는 박한상 신민당 의원이 법제사법위원회에서 3선 개헌안 저지를 위해 10시간 15분 동안 무제한 토론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3년 의원의 발언 시간을 제한하는 조항이 만들어지면서 무제한 토론은 불가능해졌다. 그러다가 지난 2012년 국회법 개정 이후 처음으로 지난 23일부터 야당 주도로 테러방지법 처리를 저지하기 위한 필리버스터(의사방해연설)가 진행되고 있다. 그 와중에 더민주당 은수미 의원이 10시간 18분 토론으로 박한상 의원의 최장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40여년간 우리 국회에서는 한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필리버스터였지만 막상 불이 붙자 야당은 기록경쟁하듯 서로 발언대 위로 올라가려는 모양새다. SNS에서도 한때 검색순위 1위를 차지할 만큼 분위기가 뜨거웠다. 그러나 26일 선거구획정안을 포함한 공직선거법 처리를 앞두고 있어 더이상 필리버스터를 끌고가기에는 야당도 부담스럽다. 반면에 울화통이 터진 새누리당의 반응은 자못 격렬하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이날 야당 의원들의 `무제한 토론`에 대해 “지금 국회 본회의장이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들의 `얼굴알리기 총선 이벤트장`으로 전락했다”면서 “국민 목숨을 볼모로 한 희대의 선거운동”이라고 비난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끝내기 위해서는 국회법상 재적의원(293석) 5분의 3이상인 176석의 동의가 필요하다. 새누리당은 157석에 불과한 만큼 남은 방법은 야당과 협상하는 길 밖에 없다.
쟁점법안 처리를 두고 사사건건 치킨게임을 벌여온 여야다. 그랬던 것이 필리버스터란 새로운 방식의 의회운영형태 덕분에 협상의 외통수로 몰리고 있으니 지켜보는 국민들은 자못 흥미로울 뿐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회가 서로 비난하고 물어뜯기보다 건강한 비판과 토론으로 운영되길 바라는 게 나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