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이 참으로 무섭구나”
14일 새벽까지 20대 총선 개표방송을 지켜보면서 느낀 소회였다. 많은 국민들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은 것 같다. 이튿날 선거결과를 보도한 신문 지면에서 `민심``심판`이란 제목글자가 유독 눈에 띄게 다가온 것도 같은 맥락일게다. 그렇다. 올 들어 최대 정치행사인 20대 총선이 막을 내린 날, 민심이 새누리당에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는 기사를 쓰게 되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더구나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충격의 참패를 당하며 원내 제1당의 자리마저 더불어민주당에 내줬다니 정말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새누리당은 민심이 내린 `카운터 펀치` 한방에 지도부가 해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대 접전지인 수도권에서 전체 의석(122석)의 3분의 1도 확보하지 못했고, `전통적 텃밭`인 영남권에서도 총 65곳 가운데 무려 17곳에서 야당과 무소속 후보에게 패배했다.
근데 야당 지도부도 비슷한 소회를 내놨다. “민심의 무서움을 깨닫는다” 4·13총선에서 `절반의 승리`를 거둔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의 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123석을 확보해 1석 차이로 새누리당을 제치고, 17대 총선 이후 12년만에 원내 제1당을 차지했다. 잘 싸웠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야당의 심장부인 호남에서 28곳 가운데 단 3석만 건지는데 그치며 참패했으니 마냥 희희낙락할 수 없는 입장이다. 호남패배에 대해선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래도 수도권 압승을 기반으로 당초 목표의석인 107석을 훨씬 상회하는 의석을 확보해 원내 제1당으로 올랐으니 지금쯤 표정관리에 바쁠 법하다. 국민의당은 지역구 의석 25석에 비례대표 의석 13석을 얻어 모두 38석을 얻게 됐다. 예상보다 훨씬 뛰어넘는 의석수를 확보해 원내교섭단체 구성은 물론 앞으로 캐스팅보트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선에서 최대 승리자라 할 만하다.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는 “이번 선거는 정치인들의 승리가 아니라 위대한 국민들의 승리”라고 말했다. 민심의 승리라는 얘기다.
안 대표는 특히 정당투표 결과에 대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지지를 보내주셨고, 특히 대구와 경북에서 두번째로 높은 지지를 받았다”며 감격스러워 했다. 국민의당 이상돈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민심의 심판”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국민의당 역시 고민이 적지않다. 호남 석권을 통해 제3당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으나 호남지역에 당선자가 몰려있기 때문이다. 자칫 호남지역당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어지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지형 변화는 여야의 전통적인 텃밭이나 지역구도가 무너진 대목이다. 한국정치사에 기록될 만한 일대사건이요, 변화다. 새누리당은 전남 순천의 이정현, 전북 전주을의 정운천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을 연출했으며, 더민주는 대구 수성갑의 김부겸 후보를 비롯해 부산에서 5명, 경남에서 3명 등 영남권에서 무려 9명의 당선인을 배출했다. 이로써 한국정치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기분좋은 평가도 나왔다.
이리 되고보니 19대 국회내내 여당의 발목을 잡았던 국회선진화법 처리를 둘러싼 딜레마는 어찌될까 궁금해진다. 새누리당은 그동안 “국회선진화법은 다수결의 원칙을 무시한 악법”이라며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통해서라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제 국회선진화법(현행 국회법)을 무력화할 수 있는 180석을 노리던 새누리당은 사라지고 없다. 불과 122석으로 원내제2당의 처지에 놓인 새누리당이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3당을 합쳐 167석을 자랑하는 거대야당이 만약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하자고 나서면 어떻게 될까. 그때도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을 악법이라 주장할까. 민심의 심판을 지켜보다 불현듯 떠오른 궁금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