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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남탓인가

등록일 2016-04-29 02:01 게재일 2016-04-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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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대통령이 집무하는 청와대, 그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들이 일종의 환상을 갖고 있다. 모든 일들과 상황을 전지(全知)적으로 파악하고, 그에 걸맞게 판단하리라는 기대감이 그것이다.

그러나 청와대를 출입하며 오랫동안 취재활동을 해온 필자는 대통령이나 수석비서관을 비롯한 비서관, 이들을 보좌하는 각 정부부처에서 파견한 행정관 등에 대해 그런 환상을 버린 지 오래다.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대면해보면 대통령도 한 사람이자 국민의 선택을 받은 행정부의 수반이고, 대통령일 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고,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수석비서관 이하 참모들도 남다른 경력관리를 해온 공무원이거나 대통령과 같은 정치노선을 걸어온 사람들이란 점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왕조시대 백성들이 믿은 것처럼 왕의 머리 뒤에 훤하게 비치던 후광이나 전지전능한 능력이 대통령에게 없다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며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환상이 모조리 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서울지역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간담회에서 한 대통령의 발언내용이 가감없이 알려지면서부터다.

한 편집국장이 대통령에게 두가지 질문을 던졌다. 하나는 집권당의 선거 패배는 궁극적으로는 대통령의 국정운영방식에 대한 심판이라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그리고 이번 새누리당의 공천이 친박이라고 하는 특정 정파의 관점에 매몰되면서 지지층을 실망시키고 결국 등을 돌리게 했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물었다.

먼저 박 대통령은 “지난 시절을 보면 대통령 중심제라고는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면서 “특히 국회하고의 관계에서 보면 이건 꼭 좀 해야만 경제를 살릴 수 있겠다 호소도 하고, 국회를 찾아가기도 하고, 초청해서 말씀도 나눠보고, 그래도 뭔가 되는 게 없이 쭉 지내왔다”고 국정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을 국회 탓으로 돌렸다. 이어 박 대통령은 “국민들이 볼 적에 국회가 양당체제로 되어 있어 서로 밀고 당기면서 되는 것도 없고, 무슨 식물국회로 쭉 가다 보니까 국민들 입장에서는 변화와 개혁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한것 같다”면서 “그래서 양당체제에서 3당 체제를 민의가 만들어준 것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총선참패에 대한 책임론은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3당체제로 된 것 역시 대통령 잘못이 아니라 국회 잘못을 심판한 것이라는 뉘앙스의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새누리당 공천 실패에 대해서는 아예 동문서답이었다. 박 대통령은 “친박은 내가 만든 게 아니다. 친박이라는 말 자체가 특히 선거 때 자기의 선거 마케팅으로 자신들이 그냥 그렇게 만들어낸 것”이라면서 “친박이라고 그랬다가 탈박이라고 그랬다가 짤박이라고 그랬다가 별별 이야기를 다 만들어내는 데, 제가 거기에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새누리당의 잘못된 공천에 대해 발뺌하기 바빴다. 박 대통령은 이어 “예를 들면 지난 19대 국회 때 전혀 협조를 안 해 주고 계속 반대 목소리만 낸 사람도 대통령 사진을 마케팅을 하면서 다녔지만 제가 그걸 뭐 하라마라 그런 이야기도 안했다”면서 유승민 의원을 겨냥한 뒤 “친박이라는 자체가 다 자신의 정치를 위한 선거 마케팅에서 만들어낸 이야기이기 때문에 없애라 마라, 그런다고 될 일도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정치인들이 마케팅보다는 국민한테 약속하고 신뢰를 국민한테 지키면서 신념의 정치를 앞으로 해 나가야 한다”고 뜬금없이 약속과 신뢰를 통한 신념의 정치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박 대통령의 발언만 두고보면 1.국회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못했다→2.새누리당이 180석을 얻지 못해서 더 못하게 됐다→ 3.그래서 앞으로 일을 잘못해도 내 잘못이 아니라 국민들이 일을 못하게 만들었다는 순환논법이 성립될 지경이다. 그냥 `내탓이오` 한 마디만 했더라면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많은 국민들에게 `남탓이오`로 실망시킨 대통령의 상황인식이 안스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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