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유승민 의원의 출사표

등록일 2016-03-25 02:01 게재일 2016-03-25 19면
스크랩버튼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저의 고민은 길고 깊었습니다. 저 개인의 생사에 대한 미련은 오래전에 접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제가 고민했던 건 저의 오래된 질문,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였습니다.”

새누리당 주류 친박계와 청와대로부터 불출마 압박을 받아온 유승민 의원이 후보등록을 하루 앞둔 23일 밤 11시에 심야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행보를 밝히는 순간이었다. 그는 공천이 이뤄지는 시간동안 스스로에게 `왜 정치를 하는가` 자문하고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새누리당 공천과정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공천에 대하여 당이 보여준 모습. 이건 정의가 아닙니다.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상식과 원칙이 아닙니다. 부끄럽고 시대착오적인 정치보복일 뿐입니다.” 이 대목에서 유 의원은 새누리당 공천과정에서 느꼈던 억울함, 아쉬웠던 마음, 분한 마음을 직설적으로 풀어냈다. 이어 당에 대한 애증의 마음도 가감없이 털어놨다.

“2000년 2월 입당하던 날부터 오늘까지 당은 저의 집이었습니다. 당을 사랑했기에 `당의 정체성에 맞지않는다`는 말에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는 2011년 전당대회의 출마선언, 작년 4월의 국회 대표연설을 다시 읽어봤습니다. 몇 번을 읽어봐도 당의 정강정책에 어긋난 내용은 없었습니다. 결국 정체성 시비는 개혁의 뜻을 저와 함께 한 죄밖에 없는 의원들을 쫓아내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습니다. 공천을 주도한 그들에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애당초 없었고, 진박·비박이라는 편가르기만 있었을 뿐입니다. 국민앞에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유 의원 자신은 아무리 생각해도 당의 정체성과 배치되는 것이 없고, 오히려 자신의 노선과 가치가 옳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새누리당 주류를 이루는 친박계가 자신의 노선과 가치를 폄하하고, 정체성 시비를 일으킨 것이 편가르기에 불과하다고 반발했다. 국민앞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힐난했다. 유 의원은 여기서 다시한번 헌법가치를 거론하고 나선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국민권력`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2항입니다. 어떤 권력도 국민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유 의원은 지난해 7월 논란의 국회법 통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원내대표직을 사퇴할 때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항을 언급하며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는 데, 이번에는 제2항을 들고 나온 것이다. 유 의원은 말을 이었다.

“오늘 저는 헌법에 의지한 채 저의 정든 집을 잠시 떠나려합니다. 그리고 정의를 위해 출마하겠습니다.” 현장에서 지지자들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공천과정 내내 침묵을 지켜온 유 의원이 마침내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며 출사표를 던진 순간이었다.

“권력이 저를 버려도, 저는 국민만 보고 나아가겠습니다. 제가 두려운 것은 오로지 국민뿐이고, 제가 믿는 것은 국민의 정의로운 마음뿐입니다. 오늘 저의 시작이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로 나아가는 새로운 걸음이 되길 바랍니다.”유 의원은 자신이 바라는 새 정치의 캐치 프레이즈를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친 유승민계 의원으로 분류돼 낙천한 동료의원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함께 털어놨다. “저와 뜻을 같이 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경선의 기회조차 박탈당한 동지들을 생각하면 제 가슴이 미어집니다. 제가 이 동지들과 함께 당으로 돌아와서 보수개혁의 꿈을 꼭 이룰 수 있도록 국민여러분의 뜨거운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회견문 낭독이 끝나자 지지자들은 “유승민!”을 연호하며 응원했고, 유 의원은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 대답없이 회견장을 떠났다. 중국 삼국시대 촉한 승상 제갈량이 후주(後主)인 황제 유선에게 올린 출사표는 빼어난 문장과 애국심, 그리고 죽은 선제 소열제 유비에 대한 애틋한 충성심이 담겨 있어 글을 읽고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유승민 의원, 그의 출사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렸을까 궁금하다.

김진호의 是是非非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