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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의 매 사냥

등록일 2016-01-29 02:01 게재일 2016-01-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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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매 사냥과 관련된 여러 속담들이 있다. 우선 `꿩 잡는 게 매`란 말은 꿩 잡는 데 명수가 매란 뜻이다. 이 말은 방법이야 어떻든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최고란 의미로 쓰인다. `꿩 놓친 매`란 말은 애써 잡은 꿩을 놓쳐서 헐떡이며 분함을 빗대는 말이다. 또 `떼 꿩에 매 눈`이란 말이 있다. 여러 마리의 꿩이 동시에 날아 가면 매는 머뭇거리다가 모두 놓친다. 즉, 기회가 너무 좋으면 그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의미로 쓴다. `꿩 대신 닭`이란 말은 사냥을 나간 매가 꿩은 못 잡고 닭을 잡았다는 의미로 최선이 아닌 차선도 상책이 된다는 뜻으로 사용한다. 너무나 잘 알려진 `시치미 뗀다`란 말의 유래도 재미있다. 사냥 중 잃어버린 매를 다른 사람이 잡아 주인 이름이 새겨진 명패(시치미)를 떼어내고 자기의 매처럼 행세하는 행위를 말한다.

4·13총선을 앞두고 널리 인재를 구하는 여당과 야당의 움직임들을 관찰하노라면 매 사냥에서 비롯된 이같은 속담들이 품고 있는 뜻과 비유가 제격으로 어울리는 경우가 많아 흥미롭다.

가장 적극적으로 인재영입에 나서고 있는 더불어 민주당(약칭 더민주)의 사례를 들어보자. 더민주는 지난해 12월 안철수 의원 탈당과 올 1월 김한길·박지원 의원의 탈당으로 곤경에 빠졌다. 수 많은 호남권 인사들이 줄지어 당을 떠났고, DJ정권을 대표하는 정치원로인 권노갑 전 고문까지 등을 돌렸다. 실로 `꿩 놓친 매`꼴이 된 것이다. 이후 더민주는 탈당 러시에 맞서 새로운 인물들을 적극 영입해 이미지쇄신과 분위기 반전에 나섰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설계한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영입해 비대위원장으로 세운 것은 꽤나 충격적인 조치였다. `꿩 잡는 게 매`란 말에 걸맞는 파격이었다. 그 뒤를 이어 자수성가형 전문가 출신과 시민단체 출신, 지명도 있는 법조인 등을 줄줄이 영입하는 전략으로 더민주는 나름의 정치적 성과를 거뒀으니 야당의 매사냥은 나름 성공적인 셈이다.

그러나 여당인 새누리당의 인재영입 행보는 왠지 갈팡질팡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상향식 공천` 원칙을 고수하며 인재영입을 주장하는 친박계와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김무성 대표는 지난 11일 방송 시사 프로그램 출연으로 지명도가 있는 인물 6명을 소개하면서 “자발적으로 입당하겠다고 밝혀 왔기 때문에 기존의 인재 영입과는 다르다”면서 선을 그었다. 정치신인으로서 당 대표 소개로 정치판에 나섰는 데, 민주적 절차를 거쳐 공천하겠다니 이런 식이라면 `떼 꿩에 매 눈`이 될 것이란 뒷말들이 무성했다. 김 대표는 또 부산이 지역구였던 문대성 의원도 야당 현역 의원(더불어민주당 박남춘)이 버티고 있는 인천 남동갑에 경선 과정을 거쳐 출마토록 했다. 이는 `꿩 대신 닭`의 형세가 됐다. 당 대표 본인이 험지출마를 피하는 바람에 몇몇 인사들을 대상으로 추진한 험지출마론이 좌절되자 애꿎게 불출마를 선언한 문 의원을 끌어들여 수도권에 출마토록 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김 대표의 이같은 행보에 친박계 의원들이 볼멘 소리를 터뜨렸다.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 의원은 지난 23일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에 참석 직후 “인재영입에 대해 지도부가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야 총선에서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김무성 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 25일에는 TK지역 언론과의 간담회에서도 “총선 승리를 위해선 유망한 인재를 영입해야 하는데, 이들에게까지 경선을 하라고 하면 누가 오겠느냐”고 꼬집었다. 홍문종 의원 역시 최근 라디오 방송에 출연, 김 대표가 `상향식 공천에서는 인재영입 대신 인재등용이 적절하다`고 지적한 데 대해 “인재등용이 됐든, 인재영입이 됐든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라며 “누구를 위한 상향식 공천인지 잘 모르겠다”며 비판했다. 김 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 확보를 위해 뛰면서 `시치미를 떼지 말라`는 지적인 것이다. 정치판의 매사냥은 그저 험난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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