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정국을 전후해 정치평론가들 사이에 `터널시야` 증후군이 화제가 되고 있다. `터널시야` 또는 `터널비전(tunnel vision)`이란 말은 터널 속으로 들어갔을 때 터널 안만 보이고 터널 밖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주변을 보지 못한 채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는 현상을 뜻한다. 터널시야 증후군을 처음 거론한 곳은 필리버스터 정국을 좌우한 야권 지도부의 행동을 설명하는 정치평론가들이었다. 47년만에 국회에 재등장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처음 제안하고 지휘한 더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가 지난 2일 밤 국회 본회의장에서 마지막 토론자로 나서 눈물의 연설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7시1분 38번째 주자로 단상에 올라 오후 7시32분까지 12시간31분간 발언함으로써 최장기록을 경신했다. 이 원내대표는 필리버스터 중단 결정을 두고 빚어진 혼선에 대해 사과하는 것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의원들의 열정과 국민의 열망을 제 판단으로 날려버렸다”며 “죽을 죄를 지었다”면서 거듭 허리를 숙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그동안 참여한 의원들의 이름을 수차례 열거하면서 “필리버스터의 영웅”이라고 추켜세우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에 앞서 더민주당 비대위원인 박영선 의원 역시 지난 1일 테러방지법 통과를 막기 위해 33번째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서서 당내 일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필리버스터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전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박 의원은 “필리버스터 중단은 총선에서 이기기 위한 결정”이라며 “모든 분노의 화살은 저에게 쏴 달라. 제가 다 맞겠다”며 “4월 13일 야당을 찍어주셔야 한다. 야당에게 과반의석을 주셔야 한다. 더민주당에 힘을 주시고 야당을 키워주셔야 한다”고 호소했다.
박 비대위원과 이 원내대표의 눈물을 본 상당수 국민들은 어리둥절한 반응이었다. 야당이 필리버스터라는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테러방지법 통과를 막아선 데 대해 국민들은 일정부분 공감했고, 테러방지법에 대해서도 여러 문제점이 있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야당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성과도 거뒀다. 필리버스터 정국하에 야당이 나름의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런데도 이 원내대표가 필리버스터 참여의원들을 민주투사처럼 영웅시하며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린 것이나 자신에게 분노의 화살을 쏘라며 울먹인 박 비대위원의 행동은 다소 이상하게 보였다는 얘기가 많았다. 국민들이 느낀 이같은 생경한 감정에 대해 정치평론가들이 내놓은 설명이 바로 터널시야 증후군이었다.
다른 모든 면에선 대단히 합리적이고 공정한 사람일지라도 일단 싸움에 휘말려들어 몰입하게 되면 전혀 딴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먼저 역지사지(易地思之) 능력을 잃는다. 상대편의 언행은 무조건 악의적으로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 토론에서 A가 B의 말을 왜곡했다고 가정해보자. B가 그 왜곡에 몰입해 비판하기 시작하면 토론은 진도를 나가기 어렵게 된다. 시청자는 B의 항변이 타당하다고 인정할 망정 B가 느끼는 분노에까지 공감하진 않는다. 시청자가 원하는 건 좋은 내용의 토론이지 토론자들의 인격에 대한 품평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B가 토론 내내 A의 왜곡을 질타하면서 분노하는 모습만 보인다면 시청자는 짜증을 낼 가능성이 높다. 시청자들이 B가 분노의 와중에서 내놓은 발언의 품질을 공정하게 평가하면 좋겠지만, 그건 기대하기 어렵다. B가 A에 대한 공격에 몰입해 책임지기 어렵거나 설득력이 떨어지는 발언들을 남발했을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어떤 싸움이 치열할수록 몰입은 `자기 성찰`을 원천봉쇄한다. 상대편의 허물은 크게 보고 자신의 허물은 사소하게 여기는 심리를 낳는다. 이처럼 갈등 상황에서 몰입은 곧바로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도 당연시하게 되는 터널 시야 증후군을 불러온다. 여야가 대립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우리 정치판이 이처럼 혼탁한 것도 터널시야 증후군이 만연된 때문은 아닌가 되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