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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어도

등록일 2014-03-25 02:01 게재일 2014-03-2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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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편집국장

사랑하고 아끼는 친구가 기업을 창업해 운영하다가 선의로 한 경제행위로 인해 배임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아 1년여의 감옥살이를 치러야 했다. 그 정도에서 일이 끝났으면 좋으련만…. 전문직으로서 남부럽지않을 만큼 성공했고, 직업군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친구는 옥고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 후 친구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음해하고, 모략하고, 감시한다며 불안해 했다. 어제의 동료나 친구들이 적으로 변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세상이 무섭게 여겨질 법도 하다. 비오는 날이거나 기분이 우울할 때면 가끔 전화를 걸어 `술 마시자`는 친구의 불안한 목소리를 들을 때 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누를 길이 없었다. 그처럼 유능하고 전도창창한 사람이, 남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게 자기자신의 망상속으로 빠져들고 말았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돌리며 믿으려 하지 않았다. 친구로서 어떻게든 홀로 선 듯한 외로움과 좌절을 달래주려 애썼으나 별무 성과였다. 친구에게 `남들 의식하지 말고 소신대로 살자`는 한마디 전하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미 타인을 피해 자기자신 속으로 빠져든 그에게는 어떤 말도 가닿지 않는 듯 했다.

남들이 가고 싶어하는 대학에 진학해 학업을 마치고, 전문직 자격시험을 준비하던 지인의 아들이 자살시도를 했다는 소식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개인사이기에 자세한 내막은 알 길 없으나 자격시험 준비가 여의치 않자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일어난 일로 짐작됐다. 그깟 자격시험이 무엇이기에 하나뿐인 목숨을 버리려 했을까.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 화근이었겠지만 충격적이었다. 화목하고,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의 정신건강이 이토록 허약해서야 될 일인가. 온실속에서 고이 자란 내 아이들의 마음건강부터 잘 챙겨야겠다는 자각이 번쩍 들었다.

어쨌든 사회생활을 하는 이가 정신줄을 놓으면 사망에 이른 것이나 다를 바 없으니 살아있다 해도 허망하고, 전문직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사회지도층으로 진입할 전도양양한 젊은이가 다시 응시하면 될 시험때문에 목숨을 버리려 했다니 기가 찰 뿐이다. 이 나라의 교육은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걸까.

이런 황망한 일들을 생각하며 로저 로젠블라트의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 58`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났다. “당신은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불성실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당신이 열심히 해놓은 일을 폄하하기 위해, 당신을 해칠 계략을 꾸미기 위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당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자신만을 생각하고 있다. 바로 당신이 당신 자신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이 대목에 크게 공감했다. 친구에게, 지인의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얘기였기에 더욱 그랬을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돈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이 일은 내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많은가. 사실 그게 아니다. 휴가철에 일주일 이상 자리를 비웠다 돌아와 보면 내가 없어도 세상은 저절로 잘 굴러갔다는 걸 알게 되지않나.

샐러리맨 사회에 떠다니는 우스개 얘기 하나. “평직원들은 일주일 이상 느긋하게 휴가를 즐기다 오지만 임원들은 이틀이나 사흘 휴가뒤 부리나케 복귀하곤 한다. 이유는 뭘까?” 답은 “비싼 몸값의 임원이 자리를 비워도 회사가 별탈없이 잘 돌아간다는 것을 사장이 알아차릴까봐 두렵기 때문”이란다. 과연 사장은 `그 사람이 없어도 기업이 별 탈없이 돌아간다`는 비밀(?)을 모르고 있을까. 그가 없을 때 그의 역할을 대신할 사람이 있다는 얘기일 뿐이다.

그러니 그냥 우리가 생을 다한 후에도,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그러니 이제 남 눈이나 평판을 의식해 스트레스 받는 일도 사양하자. 도대체 내가 사는 데 남들이 무슨 상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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