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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보라

등록일 2014-03-18 02:01 게재일 2014-03-1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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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편집국장

지난 주말 북한산의 한 자락인 도봉산 자운봉을 올랐다. 봄을 맞은 산은 한 주동안 세파에 찌들었던 심신을 달래려는 수많은 산행객들로 붐볐다. 두어시간 남짓 산을 오르노라니 숨도 가빠오고,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듯 힘이 빠져 오르기가 힘들었다. 일행들을 앞서 보내놓고 천천히 호흡을 조절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산을 올랐다. 먼저 정상부근까지 올랐던 일행들이 정상밑에서 기다렸다가 `함께 정상에 오르자`며 반갑게 맞아준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산의 기쁨은 산 정상을 정복했을 때 가장 크다. 그러나 나의 가장 큰 기쁨은 험악한 산을 기어올라가는 순간에 있다.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가슴이 뛴다. 인생에 있어서 모든 고난이 자취를 감췄을 때를 생각해보라. 그 이상 삭막한 것이 없을 것이다.”

과연 그랬다. 산 그늘진 경사에 눈이 채 녹지않은 터라 정상인 자운봉으로 오르는 길은 험난했다. 암벽 틈사이로 이어진 로프를 타고, 바위로 이뤄진 능선과 계곡을 번갈아 기어올라가야 하는 험로의 연속이었다. 그처럼 산을 오르는 일은 힘겨웠지만 오르는 동안 느껴지는 풋풋한 풀내음은 싱그러웠고, 이제 막 물이 오르는 나뭇가지들에서 뻗쳐오르는 생명의 약동은 손에 잡힐 듯 힘차게 느껴졌다. 몇 번의 오르내림 끝에 마침내 고지 724m의 자운봉 정상에 올랐다. 하늘과 땅사이에 있는 바위에서 내려다 보니 인간의 사소한 시름과 번민은 대자연의 입김 한차례에 날아가버릴 듯한 장엄한 광경이었다.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앞에서/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이문재의 시 `농담` 전문에서 보듯 누구에게라도 마구 보여주고 싶은 풍경을 만날 때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살아가며, 사랑하며, 그런 마음을 가슴깊이 느끼니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내가 실재하는 삶이란 자각으로 깨어난다. 마음 흠뻑 감동으로 채워준 풍경에 취한 뒤 산이 끝나지 않은 산자락 어귀에서 일행들과 함께 마신 막걸리 한잔은 세파에 찌든 심사를 한꺼번에 씻어내리는 치유의 힘을 발휘했다.

산을 생각하노라면 성철스님이 종정 취임직후 일성으로 터뜨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한 법어가 먼저 떠오른다. 1980년대 불교계가 만연한 부패속에서 서로 주도권 싸움에 빠져있을 때, 던진 이 말은 한때 세간의 화제가 됐다. 당시 성철스님이 직면했던 불교계는 눈에 보이는 것인 돈과 권력과 명예 등과 같은 비본질적이고 본능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채 휘둘리는 상황이었으니 불교계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로 눈에 보이는 것을 뛰어넘는 태도를 추구함으로써 현실을 새롭게 정리하고 세워갈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을 담아낸 말로 이해된다.

성경에서도 산은 높고 숭고한 의미로 나타난다. 시편 121장 1절에서는 `눈을 들어 산을 보라`고 했다. 산을 보라는 것은 안을 보지 말고 밖을 보고, 뒤를 보지 말고 앞을 보라는 뜻이다. 특히 아래를 보지말고 위를 바라보라는 말이다. 눈을 들어 보아야 할 산은 만물 안에 있는 질서와 섭리, 절대자의 위대함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 자신에 집착하거나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세속적인 욕망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이 바라는 소망을 향해 나아가라는 메시지다.

6.4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TV와 라디오가 목청 큰 정치인들로 시끌시끌하다. 서로 앞다퉈 상대의 잘못을 헐뜯으며, 지지를 호소하는 그들에게 `산을 보라`는 말 한마디 꼭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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