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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의 허와 실

등록일 2013-04-02 00:10 게재일 2013-04-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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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논설위원

고대중국의 병법서인 `손자병법`의 36계에는 `무중유생(無中有生)`이란 전술이 나온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뜻으로, 쉽게 말하면 `없으면서 있는 척 하기`이다. 이 전술이 실제 전쟁에서 쓰인 것은 불과 12척의 배로 130척의 왜군을 격파한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에서였다. 이순신은 좁은 물길인 명량에서 배 12척으로 길목을 막아 차례차례 들어오는 왜선을 하나씩 격파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조선군은 밀려드는 적과 싸우느라 지쳤고, 왜군은 아직도 피해를 입지않은 배가 너무 많았다. 다행히 이순신은 사전에 피난선 100여척을 12척의 전투선단 뒤에 배치해 짐짓 아군의 배가 많아 보이게 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왜군의 눈에는 전투 현장 너머로 보이는 피난선단이 조선군의 대기선단으로 보여 더 이상 공격을 할 수 없었다.

손자병법 이야기를 갑자기 꺼낸 것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창조경제론`이 바로 `무중유생`전술에 기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론`은 지난달 30일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열린 고위 당정청 워크숍에서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로부터 질타를 받으면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 마디로 `창조경제론의 실체가 무엇이냐`는 의문이 여당 내부에서 정면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창조적 발상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창조경제의 총론에는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의미가 모호하다며 청와대 참모들을 질책했다.

첫 발표자로 나선 유민봉 국정기획수석이 창조경제론을 중심으로 새정부의 국정철학을 보고하자, 소관 상임위인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한선교 위원장은 “너무 학구적이다. 도대체 창조경제가 무슨 말이냐”고 따져물었고, 유 수석이 “창조경제는 결국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것”이라며 교과서적 답변을 계속하자 한 위원장은 “됐습니다. 그만하세요”라고 말을 잘랐다. 이어 최순홍 미래전략수석이 `창조경제`를 부연설명했으나 한 위원장은 “그래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고 했고, 이군현 윤리특위 위원장은 “누가 어떤 산업을 어떻게 일으킬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지 우리도 국민을 설득하지 않겠느냐”고 꼬집었다.

청와대 측이 의원들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창조경제론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자 이한구 원내대표까지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당장 서류로 준비해서 제출하라”고 나무랐다.

여당 중진의원들과 청와대 참모간에 벌어진 논쟁을 보면서 `창조경제론`은 아직 개념조차 뚜렷하게 정립되지 않은 허장성세 전략의 부산물이란 혐의가 짙어보인다.

그래선지 새 정부의 경제정책에 따라 경영계획과 투자규모 등을 결정해야 할 기업들도 창조경제 개념을 파악하지 못해 갈팡질팡이다. 통일된 개념이 없다보니 `창조경제는 융합이다`(A기업), `동반성장과 상생이 바로 창조경제의 근간`(B기업), `창조경제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C기업) 등으로 해석이 제각각이다. 이러다보니 기업들은 창조경제의 개념이 확실히 드러날 때까지는 섣부르게 움직이기보다는 정부 움직임을 지켜보고 투자판단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애매모호한 창조경제론이 기업의 투자 마저 늦추고 있는 셈이다.

대선과정에서 창조경제론이 `약발`먹혔다고 해서 계속 같은 방식을 구사해선 안된다. 박근혜 정부는 더 이상 애매모호한 창조경제론을 탈피해 명확한 정책목표를 설정, 정치권과 재계의 혼란을 없애줘야 한다. 중국의 또 다른 병법서인 `사마법`에는 `무부선술(無先術)`, `앞서 써 먹었던 전술은 다시 쓰지 말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가 하루빨리 `창조경제론`의 뼈대와 살점들을 창조해 국민앞에 펼쳐 보여주고, 정치권과 재계의 혼란을 종식시켜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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