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한국신문협회 주최로 전국의 주요 일간신문사 직원 30여명과 함께 3박4일간 중국 서안을 둘러보고 돌아올 기회가 있었다. 모처럼의 외유인지라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을 접했다. 우리 일행의 반응이 특이했다. 거의 예외없이 “결국 사고 한번 크게 쳤네”였다. 일행 대부분이 언젠가 사고칠 줄 알고 있었다니 신기한 일이 아닌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칼럼니스트로서 특유의 독설과 극우편향적인 논평으로 언론의 우려를 사왔다. 특히 그는 포항 남·울릉 지역구의 무소속 김형태 의원의 새누리당 탈당과 관련, “요즘 대한민국 국민은 눈만 뜨면 성폭행, 성추행하는 `미친놈`들에 관한 뉴스 때문에 스트레스 정말 팍팍 받으며 살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썼다. 정말 많은 국민들이 스트레스 팍팍 받고있으니 탁월한 예언(?)이라고 해야 할까.
그나마 치솟아오르는 분기를 추스를 수 있었던 것은 첫 출근한 날, 책상위에 놓인 편지 한 통 덕분이었다. 지난 달말 평소 존경하는 선배님 모친이 돌아가셨을 때의 문상에 대한 답례인사가 한 통의 편지로 와 있었다.
“○○○ 아우님 덕분에 어머니 양지 바른 곳에 편안하게 잘 모시고 왔습니다.// 평소 늘 건강하셨던 어머니셨기에/ 앞으로도 다른 걱정없이 가까이 모시며/ 귀한 가르침 받들어 든든해 할 것으로 믿었는 데,/ 이제 그 자애롭던 목소리 더 들을 수 없고,/ 참 따뜻했던 어머니 손, 더 이상 느낄 수 없어/ 깊은 슬픔속에 이런 저런 후회가 쌓입니다.// 이렇듯 사랑하고 존경했던 어머니를 여의고,/ 어찌할 바 몰라 넋놓은 채 빈소를 지키고 있을 때/ 아우님께서 찾아주셔서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 고마움 두고 두고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배의 마음에 가득한, 어머님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손에 잡힐 듯 생생했다. 선배는 좀 더 곁에 계시지 않고 세상을 떠난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하게 짧은 글로 토해내며, 후배인 내게 깍듯이 인사를 전했다. 편지를 읽으며, 20여년 전 돌아가신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어머님께 효도 한번 제대로 못한 채 떠나보내야 했던 당시의 애통한 심정이 가슴을 쳤다.
옛말에 악수귀천(樂殊貴賤) 예별존비(禮別尊卑)라고 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예와 악이 꼭 필요하며, 관혼상제에 있어서 예는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임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 전통의 예법은 그대로 따라 지키기엔 너무 엄하고,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편에서 우리 전통 상례(喪禮)의 어려움을 이렇게 말한다. 그는 부친이 돌아갔을 때 외사촌형이 문상와 빈소에서 3분 가량 곡을 한 뒤 영정에 재배를 하고, 상주에게 큰 절을 한 연후 “얼마나 망극하십니까”하고 인사했을 때 무어라 답해야 할 지 몰랐다고 했다. 삼우제를 지낸 뒤 형님께 물었더니 문상때 인사말로 그 말외에 “당고(當故) 당한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하면 상주는 “제 말씀이 무슨 말씀이겠습니까”하고 답한다는 것이다. 알기 쉽게 풀이하면 “돌아가셨다는 말이 웬 말씀입니까”하면 “저는 죄인이라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라는 뜻이란다.
`대학`에서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했다. `마음이 바르게 된 후에 몸이 닦인다. 몸이 닦인 후에 집안이 바르게 된다. 집안이 바르게 된 후에 나라가 다스려진다. 나라가 다스려진 후에 천하가 태평해진다.`는 것이다. 예로써 자기 몸을 바르게 가다듬지 못한 자에게 주어진 분에 넘치는 관직은 자신은 물론 나라에도 큰 폐해를 끼칠 뿐이다. 많은 언론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윤 전 대변인을 중용한 박 대통령의 때늦은 사과가 되풀이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