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이 넘은 필자가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을 읽으며,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는 일이 많아졌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새로 읽는 손자병법의 정신에 들어맞는 지 어떤 지 가늠해 보는 게 제법 흥미롭기 때문이다. 최근 포항시립승마장 건립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도 그랬다.
양덕동 주민들이 새누리당 서울당사 상경 시위와 야간 촛불집회를 할 때까지만 해도 포항시는 강경모드였다. 7월 완공을 앞두고 55억여원을 들인 승마장을 폐쇄하라니 말이나 될 법한 일이냐며 말이다. 그러다가 주민들이 초등학교 자녀들의 등교거부로 맞서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1천500여명의 학생 가운데 1천여명의 학생이 등교거부를 했으니 지역사회 여론도 들끓기 시작했다.
불도저라 할만한 추진력을 가진 박승호 포항시장인들 별수 있을 리 없다. 박 시장은 결국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을 갖고 마무리공사가 한창인 승마장 공사를 잠정중단한다고 밝힌 뒤 뒤늦게 주민설득 작업에 나섰다. 지난 28일에는 포항MBC 시사토론회에 참석했고, 승마장 건립 반대 주민 시위 현장도 직접 찾아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아군의 전력이 열세일 때 손자는 고민하지 말고 도망가라고 했다. 병법 36계 최후의 계책인 주위상(走爲上), 즉 도망가는 게 상책이라 했다. 꼬리 내려야 마땅한 상황에서 남의 눈을 두려워 하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것도 용기다. 박 시장의 36계가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시가 주도하는 사업과 관련한 민원을 대화로 해결하려는 자세는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된다. 박 시장은 “승마공원은 혐오시설이 아니라 국민체육시설이고, 친환경적으로 건설하기 때문에 주민들이 걱정하는 악취 등 환경오염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며 “타지역 승마시설 견학 등 지역 주민의 이해를 돕기 위한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설득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포항시의회는 포항시 행정감사에서 시의 행태를 질타하고 나섰다. 특히 시의회가 승마장 건립안을 동의하면서 반드시 충분한 주민설명회 절차를 거쳐 주민 동의를 얻고 난 뒤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단서도 붙였지만, 집행부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실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 의회로서는 당연한 지적이지만 의회가 진작 집행부의 독주를 견제했다면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은 어쩔 것인가. 시 의회도 때늦은 남탓일 뿐, 그리 잘한 것은 없는 셈이다.
박승호 시장은 재선시장으로서 의욕적으로 공약사업을 추진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포항운하 프로젝트이고, 2020년까지 완공될 포항-영덕-삼척, 포항-울산-부산간 고속도로와 동해남부선(울산-포항)과 동해중부선(포항-삼척), 영일만항 인입철도 등 환동해권 철도건설사업, 그리고 영일만대교 건설사업 등이다. 2014년말에 개통될 포항~서울을 잇는 KTX 직결선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강한 추진력은 자칫 소통 부재나 독선으로 비춰지기 쉽다. 그래선지 포항시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 가운데 주민이나 관계자들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는 게 적지않다. 승마장 외에도 동빈내항 크루즈선 사업이나 효자동 빗물펌프장 등도 논란이 되고 있다.
진퇴양난에 빠진 포항시를 보면서 “가장 좋은 승리는 좋게 타일러서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란 말이 와 닿았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걸 최고라 하지 않는다.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을 최고라 한다`는 것이다. 구경꾼 입장에서는 싱거운 싸움일 수 있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가장 실속있다. 어떤 일이든 서로 뜻대로 안되기 때문에 싸우게 마련이다. 과연 싸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피를 보아야 하나 피해야 하나. 해법은 상대와 나를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게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손자병법의 정신이다. 서로를 더 잘 헤아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안을 찾아 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