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 저도에서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이 5일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모진을 전격 개편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특히 청와대의 컨트롤 타워라 할 수 있는 비서실장에 김기춘(74) 전 법무장관을 임명해 논란이 한창이다.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은 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서 드물게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모두 지냈다. 또 15,16,17대 신한국당과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이회창 전 대통령후보의 특보단장,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 국회 법사위원장, 새누리당 상임고문 등의 이력을 쌓았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을 오랫동안 도와 온 원로그룹인 7인회 멤버로서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도가 깊고 인연이 남다르다는 점에서 발탁된 것으로 보인다.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모친인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따서 만든 `정수장학회`에서 장학금을 받은 졸업생 모임인 `상청회`의 회장을 지냈고, 검사 시절인 1974년에는 육영수 여사 살해범인 문세광 사건을 조사하기도 했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 말년에는 청와대 비서관을 지내 이번에 비서실장을 맡으면서 대를 이은 `부녀 대통령`을 모두 보좌하는 진기록까지 남기게 됐다.
이처럼 화려한 이력과 인연에도 불구하고 신임 비서실장을 둘러싼 숙덕공론이 끊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가 바로 유신헌법 초안을 마련한 인물이자 지난 199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부산 초원복국집 사건의 장본인이란 점 때문이다. 당시 12월11일 부산 초원복국집에서 당시 법무장관이던 김 신임 실장은 경찰청장과 안기부 지부장 등 부산지역 관계 기관장들과 모여 김영삼 당시 여당 후보의 선거대책회의를 열었는데, 이것이 야당 정주영 후보측 선거운동원들에 도청돼 공개되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우리가 남이가”란 건배사가 바로 그때 유행했던 말이다.
이번 청와대 참모진 개편에 대한 야당들의 반응은 비판일색이다.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등 진보 정당들은 일제히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가장 어울리는 비서실장일지 모르나 우리 국민에게는 가장 끔찍한 인선”이라고 비판했다. 홍성규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을 통해 신임 김 비서실장이 “정수장학회 1기 장학생이자 친박 원로그룹인 7인회 멤버로 1972년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하고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에 근무했다”고 지적했고, 이정미 정의당 대변인도 “지지부진한 국정조사에 대해 이제 대통령이 나서라는 야당들의 목소리를 이번 인사로 깔고 뭉개겠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박 대통령 역시 김기춘 비서실장을 임명하면서 이런 뒷담화가 필연적으로 뒤따를 것으로 내다봤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를 기용한 것은 그만큼 그를 신뢰한다는 이유 이외에 항상 가까이에서 해답을 찾는 박 대통령의 인사스타일 때문일 것이다.
로마 네로황제의 스승이자 유명한 철학자였던 세네카가 로마의 시인인 루시리우스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글이 실려있다. “손에 닿지 않는 것을 바라는 욕망을 버려야 합니다. 내 주변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을 통해 욕망을 해소하십시오. 소망을 이루게 하는 것들은 우리의 주변 아주 가까이에 있습니다.” 세네카 역시 행복을 뜻하는 파랑새는 우리 곁에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파랑새가 행복을 뜻하게 된 데는 벨기에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가 1906년에 발표한 아동극 `파랑새`에서 비롯된다. 작품속 주인공인 틸틸과 미틸은 파랑새를 찾기 위해 꿈속에서 여러 곳을 여행하며 실망과 공포를 경험한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고 꿈에서 깬 다음 그토록 찾아 헤맸던 파랑새를 바로 자신들의 집안에서 찾게된다는 내용이다.
국정원 댓글의혹 사건을 둘러싼 여야간 대치로 정국이 어지러운 이 때, 박 대통령이 등용한 `파랑새`가 어떤 꿈을 이뤄낼 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