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민호서울대 교수·국문학과생각해 보면 사람의 삶은 참 짧다. 십 년 전만 해도 그렇게 절감은 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확실히 느낀다.최근 들어 생각한 것, 나도 참 번잡하게 산다는 것이다. 평론 하고 논문 써서 직업을 얻었으니 직분의 논리에 충실해야 할 텐데, 만족 없이 시를 쓰고 소설을 쓴다. 조금 있으면 산문집도 낼테니, 이제 그만 넓히라는 핀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그러나 남의 비난을 의식하지는 않는다. 그러려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남이 아니라 나다. 나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가 무서운 것이다.연인 심청이라고 장편소설을 써놓고, 내심 그럴듯하게 여기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날 내 책을 내가 다시 읽어보는데, 이게 무슨 짓인가. 장자를 4서3경의 하나라고 써놓지 않았나. 두 눈으로 믿기지가 않았다. 논어, 맹자, 대학, 중용에 시경, 서경, 역경이라 하는 것을, 내가 무엇에 홀렸기에 이렇게 써놓았냐 말이다.처음에는 얼굴이 화끈거렸고, 시간이 조금 지나서는 몹시 초조해졌다. 빨리 책을 바로잡아야 하겠는데, 이 놈의 책이 팔려야 새 판을 찍지 않겠느냐 말이다.옛날에 어느 선생님이 장학사 승진 시험을 보는데, 사군자를 묻는 문제를 틀렸다더니, 마침 내가 그 꼴이다. 편집자에게 서둘러 전화를 걸어 새 판을 찍게 되면 그 문장을 꼭 삭제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해놓고, 책이 없어지기를 기다렸다.그리고 다행히 3판을 찍을 수 있는 날은 왔다.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남의 비웃음 같은 건 웃어넘기면 그만이지만, 정작 내 자신이 왜 문장을 그렇게 써놓았는지, 퇴고할 때도 그것을 발견치 못한 까닭은 무엇인지, 자꾸 생각을 곱씹게 됐다.그러다 겨우 만들어낸 이유가 있다. 현대문학을 한답시고, 또 소설을 쓴답시고, 고전 같은 건 멀리 한 지 오래, 그러니 자동으로 그게 아님을 직각할 수 있는 때를 이미 지나버린 것이 아니더냐, 이 말이다.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다른 것도 연결 지어 생각하게 된다. 조금 있으면 책이 하나 나오게 된다. 이상을 연구한 것인데, 미진한 점이 많다. 어떻게든 책을, 그것도 연구서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충분히 더 써야 할 부분을 겨우겨우 무마를 하듯 끝내버린 것이다. 옛날 식으로 말하면 막판에 가서 붓을 던져버린 꼴이랄까.문학이라는 것은 연구하는 것도, 쓰는 것도 걸치는 게 워낙 많다. 이상이라면 일제시대도 알아야 하고, 일본문학도, 아쿠타가와는 필수요, 서양 쪽으로는 도스토옙스키, 보들레르는 알아야 한다. 당나라 시인 최국보가 썼다는 `소년행`도 알아야 하고, 철학 쪽으로 뛰어 니체도 알고, 건축쪽으로 가면 바우하우스니, 나즐로 모홀리나기니 하는 유파며 인명도 알아야 한다.직접 쓰는 것도 역시마찬가지, 대전이나 포항을 배경 삼아 무슨 이야기를 쓴다치면, 알아두어야 할 것이며 고려해야 할 것이 어디 한둘인가.그러나 이는 잠시 한번 더 변명해 본 것뿐이다. 요즈음 하는 일이 번잡하다 보니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지 못해 왔다는 자책감을 감출 수는 없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지 않더냐고 이 자리를 빌려 나 자신에게 자문해 본다.다르게 생각할 때가 있었다. 어떤 일 하나를 하더라도 충실을 기하고 완벽을 기하자고 생각했었다. 왜 우리는 버젓이 기와집을 지어놓고도 그 기와 지붕 끄트머리에 왜 막새기와를 제대로 안쓰고 회칠이나 해놓느냐하는 것이 나의, 우리 체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었던 것을, 왜 벌써 굳은 마음을 잊고 시간에, 비평에 쫓겨 일을 서둘러 끝내버린단 말이냐.오늘 다시 생각한다. 더 깊은 세계 속으로 파고들어 가보자. 시간을, 나이를 잊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더 깊이 파고들자. 그것이 무엇이든 제대로 나아가자. 나머지는 후배들, 또 더 후배들에게 맡기고.
2015-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