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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재만 한인 또는 조선족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우리 세상에 이제 외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많다. 내가 경험해 본 사람만 해도 필리핀 사람, 중국 사람, 네팔 사람, 태국 사람, 일본 사람 등 다종다양으로 많다. 이중에 특히 우리 피를 나눠 가진 사람들도 있으니 그것이 북한에서 이탈해 온 사람들과 이른바 조선족이라고 불리는 교포들이다.이 조선족은 중국에서 한족을 제외한 소수민족들을 명명할 때 불리는 명칭일 텐데 이것이 그대로 한국 사람들도 사용하는 용어가 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 위화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아니, 이것은 우리 입장에서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조선족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에 걸쳐 한반도에서 만주로 이주해 간 우리 민족의 구성원들의 후예다. 그들은 가난과 굶주림을 피해, 또는 독립운동을 위해 이 땅을 떠나갔고 만주와 연해주 등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꾸리고자 했다. 조선족은 바로 이들의 후예이며 두 세대, 세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한국`사람들이다.중국에서는 이 사람들을 가리켜 조선족이라 불러왔고 소수 민족 50 중에 가장 우수한 민족으로 쳐주기도 하면서 중국이라는 `세계국가`의 일원으로, 중화 `대민족`의 구성 부분으로 부지런히 동화시켜 나가는 중이다.필자는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 같은 세계국가들이야말로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고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나라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가 이들 나라와 원만한 관계를 맺어 나가야 하는 문제와는 별도로 심각히 생각해야 할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에서는 왜 티벳이나 위구르 사람들을 독립시켜 주지 않는가? 미국은 왜 그렇게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을 일상적인 전쟁터로 만들고 있는가? 러시아는 소비에트 체제가 포기된 이후에도 왜 여전히 제국주의적 정책을 청산하지 못하는가?중국은 일종의 세계국가로서 자국 관할 아래 있는 모든 소수 및 주변 민족을 중국적 국가 질서 속에 편입시키려 하며 이를 제 민족 평등의 사회주의 국제주의의 이상으로 치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실현되고 있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중국 사회 안에서 작은 민족들이 얼마나 자기 삶의 연속성과 정체성을 지켜 나갈 수 있는가는 미지수다.지금 중국이 겪어 나가고 있는 거대한 사회경제적 변화 속에서 재만 한국인들, 그러니까 중국식으로 말해서 조선족들의 삶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는 듯하다. 교육과 경제에 밝은 경향이 이 위기를 더욱 부채질하는데, 만주라는 고유의 삶의 터전을 떠나 베이징이다, 상하이다 하는 대도시로 이주해 가면서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중국 `대가족`내 소수 구성원으로서의 의식이 일층 강화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중국이 자국의 입장에서 이 사람들을 조선족으로 명명하고 거대 중화국가 내부로 동화해 나가는 것은 그들의 논리에 따른 것이므로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대로 이 사람들이 한민족의 일부이며 만주가 이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우리의 역사의 깊이를 간직한 지역임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그리고 그 첫 출발점은 이들을 조선족이라 부르지 않고 재만 한인으로 부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한국 사람이라는 국적성을 뜻하는 재만 한국인이 아니라 민족적 유래를 의미하는 재만 한인이라 한다면 중국과의 마찰도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북한의 우리 동포들은 북한 사람들이고, 미국에 있는 한국인들은 재미 한인이고, 일본에 있는 한국인들은 재일 한국인이듯이 이제 만주의 우리 민족 구성원들은 재만 한인이라 불러보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들이 이 땅에 들어와 일을 할 때 제발 제값을 줄 수 있도록 하자. 그것이 우리 같이 역사와 피와 언어를 함께 나눈 사람들에 대한 우리들의 예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2016-05-12

윤동주 하숙집 터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윤동주가 영화로 나왔지만 아직 관람하지 못했다. 언젠가 꼭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그때가 되지 못한 것 같다. 심리적인 문제다. 영화로 윤동주를 볼 때 내 마음 속에 그리고 있는 뜨겁고도 순결한 젊은이의 모습과 어긋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운 마음이 있다. 대신에, 며칠 전에는 윤동주의 누상동 하숙집을 찾아갔다. 누상동이라면 서울의 종로구에 있는 동 이름의 하나, 그 밑에는 누하동이 있다. 종로구는 아마 동 수가 전국에서 제일 많은 구일지도 모르겠다. 웬 작디 작은 동네가 그렇게 많은지, 체부동, 통인동, 옥인동, 당주동, 묘동, 부암동, 필운동…. 처음 들어보면 낯설지만 유서 깊은 종로답게 다 유래가 있고 내력이 있는 동들이다.그 가운데 윤동주가 서울에서 연희전문 4학년 여름 한 철에 잠시 하숙했던 집이 누상동 9번지에 남아 있다. 터라도 남아 있는 게 어딘가? 모든 것이 세월에 쓸려가기 쉬운 이 나라 현대에 말이다.맘 먹고 윤동주의 흔적을 찾아가는 날, 실마리는 지하철 3호선 경복궁 역 1번 출구다. 여기서 지상으로 나와 나오는 방향으로 배화여대 가는 길로 가다 필운대로 쪽으로, 그러니까 오른쪽으로 꺽어든다.거기서부터 한동안 한길을 따라 곧장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중간에 시인 박미산씨가 운영하는 카페가 나온다. 길가 2층의 `백석, 흰 당나귀`라는 간판을 보고서야 내가 한 2, 3주전에 여기 왔던 길임을 그제야 깨닫는다. 그때는 카카오 택시를 타고 곧장 찾아가 몰랐는데 바로 이곳이었다.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마다 백석의 시로 낭송회를 연다는 곳이다. 들어가 보면 반가운 얼굴들이 있을 것 같지만 오늘은 그냥 지나친다.조금 가다 보니 청전 이상범 가옥이 보인다. 충청도 공주 태생인 그는 변관식과 함께 우리 근대 초기 한국화의 대가로서`동아일보`일장기 말소 사건에도 연루된 바 있고 신문 연재소설에 삽화도 많이 그려 문학과도 인연이 깊다.한길에서 작은 골목 안으로 들어가야 있는데 마음 바쁠 것 없으니 그냥 들어가 본다. 대문 열고 들어가니 한옥의 정취가 물씬 풍겨 나온다. 한국화가가 살던 곳은 역시 한옥이어야 할 것 같은 아름답고 고즈넉한 집안에 잠시 섰다 나온다. 마음이 한결 단정해진 것 같다.또 한길을 따라 가다 정자가 보이는 곳에서 왼쪽으로 꺽어 올라간다. 누하동이라는 동네 이름이 보였는데 이제부터는 누상동인가 보다. 그런데 눈이 휘둥그레진다. 서촌이 뜨고 있다기에 그 서촌이라면 저 밑에 체부동, 통인동 쪽 금촌시장이나 통인시장 있는 쪽인가 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다. 누하동, 누상동, 옥인동 쪽. 이 방향이 진짜 뜨고 있다는 서촌의 온상임을 이제야 깨닫는다.아기자기 어여쁘고 귀엽고 깨끗하고 정이 가는 건물들, 가게들이 많다. 이 동네가 뜨면 저 동네가 가라앉고 또 뜨는 동네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곤 하는 것은 현대 자본주의가 시키는 짓이겠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유서 깊은 동네가 다시 한 번 각광을 받고 사람들의 전통 의식을 자극받을 수 있게 함은 나쁘지만은 않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의 좋은 부산물이라고나 할까.드디어 가까이 온 것 같다. 한옥들이 어느새 원룸 신축 가옥들로 바뀌고, 물론 그것도 지금은 꽤 오래된 건물이 된 것 같지만, 잠시 후에 왼쪽 편에 태극기 마크도 단 윤동주 하숙집 터가 나타난다. 윤동주는 그때 후배 정병욱과 함께 소설가 김송의 집에 머물렀는데, 그로서는 가장 좋았던 한 시절이었다고 한다. 아침에는 인왕산 바로 아래 수성동 계곡에서 세수를 하고 산책을 하고 밤에는 전차를 타고 시내로 나와 적선동 거쳐 누상동 하숙집에 돌아와 책을 읽었다고 했다.그 동주의 집이다. 스물아홉 살 젊은 나이에 사라져 간 순결한 젊은이의 집 앞에서 나는 그가 남긴 문학의 순수함은 나이 때문이 아니라 그의 마음의 순결성 때문이었음을 다시 한 번 힘주어 생각해 본다.

2016-04-28

말과 정치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한나 아렌트는 사람이 하는 활동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노동, 또 하나는 작업, 마지막 하나는 일종의 정치다. 사람들은 먹고 살아가기 위해 노동하고, 남기고 기억하기 위해 학문과 예술활동 같은 작업을 하고, 어떻게 살 것이냐를 결정하기 위해 모여 토론하고 투표를 하고 결정을 짓는다. 이 마지막 정치는 어떻게 하느냐? 바로 말로 한다. 서로 나와서 연설하고 동의하고 반박하고 투표를 한다.이 말이 더 이상 효용을 발휘하지 못하는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 몸으로 벌이는 싸움이며, 살상무기를 서로에게 들이대는 전쟁이다. 그러니 말이 제 몫을 해내는 곳에 싸움과 전쟁이 있을 수 없을 테다.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우리 속담, 깊고도 큰 뜻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역시 언어적 동물이다. 모든 것을 말로 처리한다. 이번 4·13 선거를 통해서도 다시 한번 입증된 진리다.인상적인 세 가지 장면이 있었다. 첫째, 어떤 의원 분은 선거에 나갈 수 있는 시한이 겨우 한 시간이 남을 때까지 스스로 당을 나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먼저 말하지 않고 때가 와서 민심이 움직일 때까지 침묵할 줄 아는 것. 참을 때까지 참는 인내력을 가진다는 것. 간단치 않다.둘째, 또 다른 의원 분은 야권 연대가 무산되자 책임을 지고 이번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것은 무거운 책임감의 발로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야권연대가 안 되면 야당이 패배할 것이라는 판단은 속단이었다. 속단에 근거한 말은 세상을 움직이지 못했다.셋째, 한 유력한 대통령 후보는 호남에 가서 호남이 지지를 거둔다면 대권을 향한 도전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매우 결정적인 선언이었고 그만큼 중요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때는 선거를 며칠 앞둔 때였고, 야당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자마자 이 선언은 자승자박이 되었다. 이 줄을 풀어내기가 쉽지만은 않게 됐다.말은 무섭다. 말은 주먹도 아니고 발길질도 아니지만 상대를 쓰러뜨리기도 하고 스스로를 넘어지게 만들기도 한다.선거를 앞두고 이른바 막말을 둘러싼 논란이 거듭되었다. 전화로 막말을 한 것이 문제가 되기도 하고 상대를 향해 비난의 말을 던진 것이 거꾸로 자기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게 만들기도 했다. 국회에서 정당 공천을 받고 못 받고는 아주 중요한 문제 같은데, 바로 말이 그것을 좌우하게 되는 경우가 아주 여럿이었다.말은 단지 국회의원들에게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 댓글에서도, 트위터에서도, 팟캐스트에서도 말은 그 위험성을 드러냈다. 거친 말, 비아냥의 말, 조롱, 야유, 냉소에 찬 말은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낸다. 그러나 그런 말은 그런 말을 행하는 사람에게도 무서운 독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판단력이 흐리지만은 않다. 투명하지 못한 야유, 석연찮은 비난을 일삼다보면 어느새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그의 인격을 얕게 보게 되고 심지어는 그를 향해 역비판을 가하는 일이 생겨난다.우리 한국인의 정치에서 지금 가장 부족한 것이 아마도 말의 기술이 아닐까 한다.기술이라고 했지만 같은 뜻을 가진 말도 이렇게 하느냐 저렇게 하느냐에 따라 전혀 효과와 기능이 달라진다. 부드러운 유머, 정곡을 찌르는 위트, 에둘러 상황을 표현하는 여유 같은 것이 없이, 생각과 감정을 메마른 직설적 언어로만 전달하려 할 때 정치는 험해지고 타협과 양보의 여지는 사라진다.정치를 하는 분들이 스타일이 모두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분은 직설적인 어법을 중시하고 어떤 분은 부드러운 표현을 중시할 수 있다. 둘 다 장단이 있다. 그러나 극단은 금물이다. 직설이 극에 흐르면 대립과 반목의 주인이 되고, 유머가 지나치면 허언으로 빠진다.그러나 두 방향의 장단의 비중은 같지 않다. 허언은 그 자신만을 실없이 만들지만 직설적 극언은 남을 해칠 수 있다.

2016-04-21

서울의 4·13 관전평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4월 13일까지 공식적인 운동일은 2주가 채 안 되건만, 하루하루는 길고도 길었던 듯하다.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도 끝도 없으니, 국민의당이 더민주당에서 갈라져 나올 때부터 생각해 보기로 한다.새로운 정치 실험을 표방하고 탈당, 창당을 했지만, 주요 구성원들이 현역의원들이었다. 새로운 인상을 주기에 미흡함이 있었다. 더민주당에서 새 사람들 영입을 하루걸이로 발표, 빠르게 사태를 수습하는 듯했다. 하지만 연로한 비례대표 다선 인사에 국보위 참여 경력을 가진 비상 대표는`정통`야당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왜 안철수씨를 내보내고 그를 들여오는지? 패권 유지 방편이라 생각하지 않고는 이해 불가였다. 국민의당 화면에서 어느새 다른 유력 정치인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안철수씨 혼자만 부각되자 지지세가 빠르게 회복되었다.더민주당에서 비례대표 2번 파동에 영입인들의 낙천, 좋지 않은 지역구 배치 등이 이어지고 문재인씨가 비례대표 2번 인사를 만나 사태를 해결했다. 그러자 더민주당은 더 이상 아무 새로움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공천이 끝나고 본격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더민주당은 후보 단일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정의당에 의석을 할당해줄 생각도, 국민의당에 다수파다운 파격안을 제시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는 것처럼 보였다.하나의 당 안에서도 소수는 다수에 복종해야 하듯 여당에 대항하는 연합을 위해서도 소수는 다수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가?민주주의는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만을 의미하는가? 소수에 대한 다수의 배려를 의미하지는 않는가? 여와 야 사이에서 양보와 타협이 필요하다. 야들끼리도 서로 그렇게 하지 않고 뭉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더민주당은 인터넷에 밝은 정당답게 국민의당과의 경쟁에서 팟캐스트와 트위터 등을 거의 완전히 장악하고 사이버 파워를 가진 이들로 하여금 무차별적인 비판을 가하도록 했다.그즈음, 여당에서 이른바 옥새 파동이 일어났고, 여권 내부의 갈등이 표면화 되면서, 텔레비전 화면 앞에 모여 앉은 기성 세대의 시선을 자극했다. 힘의 행사가 합리적이거나 상식적으로만 보이지 않을 때, 본질상 스스로를 약자로 인식하는 보통 사람들은 정서적인 거부감을 가지기 쉽다. 이른바 보수 또한 소위 진보만큼이나 비정상적인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거대한 울타리에 균열이 생기고 무소속 후보군이 형성되면서 미약하게 보였던 백색바람이 강풍으로 변할 조짐이 나타났다. 이 바람에 동력을 제공한 것은 전통적인 야권뿐만 아니라 또다른 전통적 여권의 일부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강력한 여와 강한 야 사이에 과거보다는 비교적 넓은 중도파의 자리가 만들어졌다. 더민주당은 정의당 쪽으로 조금 밀쳐졌다. 무소속 후보군을 덜어낸 여권도 오른쪽으로 조금 더 치우친 것 같았다.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비례대표 정당지지율로 보면 세 당 사이에 2:1:1이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후보단일화라는 전략에 미련을 품던 더민주당은 차선책으로 전략적 교차투표를 해달라고 호소했다. 경제 난맥상에 대한 책임 문제로 고민하던 여당은 전통적인 북풍과 야권 심판론, 그리고 읍소 전략으로 지지자들의 투표 참여를 이끌어내고자 했다.이 글을 쓰는 시각은 오후 두 시. 앞으로 불과 몇 시간 후면 윤곽이 나타날 것이다. 야권 분열에 따른 여권의 어부지리인가? 수도권에까지 북상한 녹색바람의 현실화인가? 막판에 호남을 두 번 방문하여 존재감을 강조한 문재인씨가 안도하게 될 것인가?오늘 나는 투표권이 생긴 후 처음으로 투표장에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가기는 갔고 지역구 후보도 선택했고 정당 명부에도 사람 인자 도장을 찍었다. 아무런 감동이 없었다. 긴 고통이 오늘로 일단은 정리될 것 같아서, 안도했다고나 할까. 정치가 이렇게 어둡게 보이는 사람은 비단 나 뿐인 것일까?

2016-04-14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때가 때이니만큼 누가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진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먼저 도움을 줄 만한 사람, 그러니까 `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도 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누가 `나`의 도움을 얻을 만한 사람일까? 다시 말해`내`가 도와도 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무엇보다 그 사람은`나`의 선의를 선의로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내`가 아무리 그를 도우려 해도 그는`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는 사람,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마음의 넉넉함과 상상력의 부족으로 말미암아`나`의 진의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도울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내`가 자기를 도왔다는 사실을 심지어는 알 수 없을 수도 있고 또 안다고 해봤자 뭔가 다른 불순한 의도가 있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치부하고 말 수도 있기 때문이다.실제로 나는 그런 사람을 여러 번 겪었고 또 주위에서도 여러 번 보았는데, 그게 어디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작은 사회에서의 일뿐이랴. 사회가 크면 클수록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거기 쏠린 힘이 클수록 그런 사람은 더 많이 흘러넘칠 수 있다.`내`가 도와줘도 되는 사람은 다음으로 도움 받은 일을 그대로 아는 데서 나아가, 잘 기억하기도 함으로써 그것을`나`에 대한 자신의 행동의 준거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다. 세상에는 자기를 도와준 사람을 상황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든지 외면하고 심지어는 해칠 뜻마저 품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가장 경계해 마땅하고 또 절대로 도와줘서는 안 되는 사람이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교언영색과 아부를 일삼기 때문에 속까지 꿰뚫어보기 어려운 법이다. 여기에 더 큰 어려움이 있다. 반대로 세상에는 또 자신이 받은 도움을 절대로 잊지 않고 언젠가는 그 십분지 일이라도 보답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도움 준 사람이 어려움에 처할 때면 그 어려움을 자신의 일로 여겨 발 벗고 나서는 사람도 많다. 그래야 세상이 순리대로 돌아갈 것이다.또한,`내`가 도와줘도 되는 사람은 도움을 받기만 하는데서 나아가 자기도 남을 도우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다. 자기는 언제 어떤 상황 아래서도 도움을 받아야 하고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며, 자기를 돕는 그는 그렇게만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돕는 도의의 세계에서 그는 상호 원조의 아름다운 수레바퀴를 완성하는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을뿐더러 차라리 그것을 망가뜨리기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나 어떤 조직 같은 곳에서나 정치에서나 그런 사람은 세상이 자신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고 그래야 우주가 평온하다고 여긴다.그러므로 나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향해 동정심을 발할 때, 손을 뻗어 구조를 해줄 때, 그 뜻이 좋은 만큼이나 많은 생각, 깊은 생각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자신이 내미는 도움의 손길이 오히려 그 사람을 해치는 손길이 되어 돌아오는 비극도 많고, 그렇지 않다고는 해도 헛되이 돕는 일에 시간과 정열을 빼앗겨 정작 자신을 위한`사업`에서는 쌓은 것이 없는, 빈곤함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그렇다면 화제를 바꾸어 어떤 사람이 남을 도울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일까? 그것은 우선, 앞에서 말한 바대로 자신이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지혜롭게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이런 지혜가 없다면 자신이 내미는 원조가 헛되이 버려질 수 있고 오히려 자신을 해칠 수도 있다. 또한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그 원조가 또 다른 도움으로 되돌아오기를 바라지는 말아야 할 것 같다. 차라리`내`가 도움을 준 그가 `나`아닌 다른 이들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하자. 그러면`내`가 지금 건네는 이 손길이 훨씬 더 가볍고 투명해질 것이다.

2016-04-07

기댈 곳 없는 마음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사람이 술을 먹다 술이 사람을 먹는 단계에 이르면 조심해야 한다. 헛소리가 들리고 헛것이 보이기도 하니, 정신을 놓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소주 같은 독주는 가급적 삼가고 먹어도 막걸리나 맥주 같은 저알코올을 찾을 것이며, 음주운전 따위는 아예 멀리하도록 경계해야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둘로, 셋으로 보이지 않도록, 여기도 들리고 저기도 들리지 않도록 정신 차려야 한다. 옛날에 내 먼 친척 한 분은 겨울날 집앞에까지 다 오셔서 초인종을 못 누르고 그냥 눈을 맞아 돌아가셨다고 하며, 나만 해도 15년 전쯤 집 앞 골목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다짜고짜 맥주 캔을 집어 던지는 조폭 선생을 만난 적도 있다. 대리운전으로, 콜을 해서, 돌아올 때도 행여 운전하시는 분 비위를 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한밤에 집에 들어와 씻고 앉으니 하루의 피로가 고스란히 밀려온다. 오늘도 고단했다는 사실은 또렷한데, 무엇을 위해서 왜 그런 하루를 보냈는지 명확치 않다. 시류 따라 풍랑에 흔들리는 나룻배 같은 신세 면치 못한 하루였다. 세상은 혼란스럽고 옳은 것, 아름다운 것은 멀리 있다. 나 또한 이 속의 타락한 일부다.습관이 되어버린 팟 캐스트를 들으려고 휴대폰으로 팟빵을 클릭해서 검색을 하다말고 덮어버린다. 요즘 팟캐스트, 나는 진보요, 좌파요, 하고 이름 붙이면 바로 그것이 되는 줄 아는 듯한 목소리들이 너무 많다. 그 목소리들마다 논리가 있고 그들 자신이 믿는 양식이 있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겨울 이후 그 목소리들은 어쩐지 정치적 파당 논리에 함몰되어 버렸다. 진짜 정신을 잃고 무엇인가 곧 달성해야 할 목표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듯한 그 목소리들.그 목소리들을 찾고 그 목소리 속에서 위안을 얻던 시절은 갔다. 쓰디쓴 환멸과 기댈 곳 없는 공허가 이 밤의 심사를 더 외롭게 만든다.앞으로 이십여 일 남짓, 어떤 사람들은 저마다 다수가 되기 위해 몸부림칠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달라, 손을 내밀 것이다. 나라를 위해서, 공동체적 구성원을 위해서 그것이 아니면 안된다고 소리를 높일 것이다. 나 또한 그중의 한 그룹에 소속되려는 욕구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침대 머리맡에 책이 한 무더기 쌓아 올려져 있다.`숙향전, 숙영낭자전`합본이 있다. 오늘 밤같이 절박한 현실의식의 시간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다중`이라는 책도 있다. 다중은 민중과 같은 동일자가 아니며, 대중과 같은 획일자도 아니며, 노동계급과 같은 공장제 산업 프롤레타리아도 아니란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서로 다른 곳에 처하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고, 저마다 서로 다른 특이성을 지니되 공통성을 갖춘, 인류 사회의 새로운 미래 주체다. 오늘밤 이`다중`은 왜 그렇게 공허한 추상으로 보일까.아무래도 오늘밤은 책도 아닌 것 같다. 예전 같으면 무조건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의 말씀 앞에 엎드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말씀도 오늘밤은 내 앞에서 모조리 사라져 버린 것 같다. 내가 누구며 무엇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며 어떤 세상에 살고자 하는지 알 수 없다.이광수의 장편소설`흙`은 중학교 때부터 읽으며 좋아했던 소설이다. 또한, 내가 아직까지 충분히 조명하지 못한 그의 소설이기도 하다. 허숭은 서울에서 성공할 수도 있는 변호사인데, 자기 고향인 살여울로 가서 농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것을 가리켜 계몽 소설이라고들 논의하곤 한다.최근에 내가 얻은 이 작품에 관한 한 생각은, 소설 속 허숭은 자기 고향을 일깨우러 간 것이 아니요, 그 흙의 땅에 귀의하고자 함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는 고향에서야 안식을 얻을 수 있었으므로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오늘 같은 밤에 나는 귀의할 곳, 돌아가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한다. 내가 기댈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는 걸까. 그것을 힘이라는 말로 불러도 되는 걸까.

2016-03-31

개구리 이야기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김성한이라는 작가가 계셨다. 1919년에 세상에 나서 2010년에 세상을 뜨셨다. 언론인으로도 활동했던 그는 세상을 우화적으로 풍자하는 소설 작품을 여럿 남기셨다. 이 분 생전에 전화를 드린 적이 한 번 있다. 아마도 2010년 다 됐을 무렵일 것이다. 그때도 나는 일본으로 가 행방이 묘연하던 작가 손창섭에 관한 소식들을 얻고 싶어 했고 그게 이 분께 전화를 드리는 것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이때는 이 분께서도 몸이 아주 편찮으셔서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계셨으니, 몸이 안 좋아서 손 작가 일에 관해서 얘기해 줄 수가 없다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씀해 주시는 것이었다. 나중에 신문으로 이 분의 부고를 전해 듣고 어찌나 괴롭고 죄송스러운지 한동안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다.그러고는 한동안 이 분의 생각을 잊었는데 며칠 사이에 홀연히 이 분의 한 우화 단편 소설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라 이리저리 사라지지 않고 맴돈다. 그 작품이 바로 `개구리`라는 것이다.옛날 옛적에 산골짜기 잔잔한 연못에 개구리들이 살았다. 얼룩이, 초록이, 파랑이, 검둥이 등등 이 개구리들은 아무 위협도 위험도 없이 “제멋대로”들 살았다. 어느 날 허공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서 보니 독수리 한 마리가 날아내려 오는데, 큰 바위에 내려 앉은 독수리는 뭇새들을 향해 소리 지르고 엎드리게 하고 쏘아보고 고함도 질렀다. 앵무새도 공작새도 까투리도 꼼짝들을 못했다. 매가 까투리를 잡아다 독수리에게 바치니 공작이 까투리의 배를 갈라 독수리가 편안히 먹을 수 있게 했고, 독수리는 또 뭇새들을 정렬시켜 이렇게 저렇게 훈련도 시켰다.이런 장면에 비상한 관심을 갖게 된 게 얼룩이다. 이 얼룩이가 또 하루는 보니, 사자를 선두로 한 뭇짐승들이 질서정연하게 행렬을 지어 산을 넘어갔다. 얼룩이는 자기들 개구리 세상에도 독수리나 사자처럼 멋진 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자기 생각에 반대하는 초록이를 제외한 다른 개구리들을 설득해서 제우스 신에게 빌러 올림푸스 산으로 갔다.개구리 대표 얼룩이가 왕을 내려줄 것을 빌자 제우스는 “이 땅위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바로 개구리들이니 돌아가 뭇개구리에게 선포하고 어리석은 생각을 말 것을 당부”한다. 그러나 얼룩이가 이에 굴하지 않고 또 애걸을 하자 제우스 신은 통나무 하나를 연못에 떨어뜨려 주었다. 얼룩이는 이 통나무를 왕으로 모시려 하지만 초록이는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도가 아니라 편의라며”통나무 위에 올라가 쉬고 놀고 하며 얼룩이를 비웃었다.분통이 터진 얼룩이, 다시 한 번 올림푸스 산에 올라 제우스 신에게 더 강한 왕을 내려달라고 빈다. 이쯤해서는 제우스 신도 어지간히 화가 났던 모양이다. 황새를 한 마리 내려보내 준 것이다. 연못 속 개구리 세상이 어떻게 되었을까. 초록이는 황새의 날카로운 부리를 피해 간신히 연못 물밑으로 숨기는 하였지만 영영“왕국 최고의 역적으로 철저한 망명 생활을 하게”되고 황새는 포악한 부리로 온갖 개구리들을 넙죽넙죽 잡아먹기 바빴다. 황새는 개구리들에게 `새로운 윤리`를 선포해 준다. “제우스신이 파견한 황새를 위하여 희생되는 것은 신자의 당연한 의무이며 최고의 영예인 동시에 천국에의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믿고 물위로 머리를 내민 개구리들은 영낙 없이 황새의 먹잇감이 되었던 것은 물론일 것이다.사태가 이에 이르자 이제 초록이가 제우스 신에게 빌러 갔다. 황새를 도로 거두어 주시든지 통나무로 다시 바꾸어 달라 한 것이다. 제우스 신은 듣지 않는다. 한 번 있은 일이니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초록이 비통한 목소리로 그렇다면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는 방법이라도 알려달라 하니 제우스 신은 그런 것은 없고 오로지 관념의 조작일 뿐이고, 심지어는 제우스 자신조차 헛것일 뿐이라 한다.나는 이 얘기가 헛것 같지 않다. 개구리들이 황새들을 앉혀 놓고 이 목숨을 처분해 달라 하기 즐긴다. 생쥐들이 고양이들을 받들어 모시며 자기들을 잘 살려 주겠거니 한다.

2016-03-24

알파고 소동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알파고 소동이라고 하면 과장이 될까? 세상은 선거다 공천이다 해서 시끌벅적 소란하기만 한데 한편으로 이세돌 선생과 알파고 씨의 세기의 대결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텔레비전 뉴스를 안 봐서 모르지만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알파고 이야기가 아홉 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악했다고도 한다.알파고와 대결하기로 결정된 날이 닥치자 이세돌 선생은 자신이 한 번이라도 지면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호언장담은 언제나 금물이다. 알파고 씨가 세 판을 내리 이기는 동안 인간들은 `기계`와의 대결을 둘러싸고 유머러스한 이야기 만들기에 열을 올렸다. 당장 중학생을 둔 엄마들은 알파고가 도대체 어디 있는 학교냐고 물어들 댔단다. 또 노인 분들은 알파고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나 했더니 저렇게 생겼구만, 하고 대신 바둑 두는 아자황 씨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고도 한다.이세돌 선생이 초반의 불리한 전세를 딛고 절묘한 신의 한 수, 78수로 전세를 역전시킬 때 나 또한 이 대결을 손에 땀을 쥐고 쳐다보고 있었다. 앞의 세 판을 내리 져서 전체 게임의 승패는 이미 결정난 버린 상황, 나는 다른 모든 인간들과 같이 이세돌 선생이 단 한 판이라도 이겨 주기를, 그래서 인간의 자존심을 지켜 주기를 바라마지 않았다.나로 말하면 초등학교 때쯤부터 바둑을 두기 시작했으니 햇수로만 따지면 기력이 어마어마하지만 실제 바둑 솜씨는 그야말로 바둑이 수준이다. 그런 내 눈에도 그 78수는 기가 막힌 수였다. 그걸 어떻게 알아볼 수 있었느냐? 그날 해설하는 분들이 78수 자리를 미리 예측들 하는데 이세돌 선생이 놓은 자리에 대해서는 아예 아무런 언급도 없었기 때문이다.이 신의 한 수가 분명 세상을 바꾼 것이 분명했다. 알파고 씨는 그 총명한 두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한 번도 입력 받은 바 없는 경우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알파고 씨는 분명 사람처럼 당황해 하는 것 같았고 허둥지둥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괴로워하는 것 같았고 궁리 끝에 초라하기 그지없는 바보 같은 수를 겨우 생각해 내는 것 같았다. 물론 악수였고 거기에 또 악수를 거듭하는 것이었다.이거 버그 난 거 아닌가요?해설자 가운데 인공지능 쪽에 밝은 어느 한 분이 이렇게 반문했고 나중에 그것은 정말로 버그 수준의 착점들임이 밝혀졌다.세 판을 계속 지면서 이세돌 선생은 그 자신이 인류의 대표자임을 어지간히 자각한 때문인지 이 패배는 이세돌 자신의 패배이지 인류, 인간의 패배는 아니라는 명언으로 괴로운 사람들을 지혜롭게 다독거려 주었다. 그러자 네 판 째에 불의의 일격을 당한 알파고 씨도 이세돌 선생의 흉내를 냈다. 이 패배는 알파고의 패배지 인공지능의 패배는 아니다.바둑을 두는 내내 멋있고 재미있는 말들이 오갔지만 내 머리 속에 가장 깊이 박힌 말이 하나 있다. 비록 알파고 씨가 이겼다고 해도 그는 바둑의 아름다움을 모른다던 이세돌 선생의 소회의 말이다. “바둑의 아름다움, 인간의 아름다움을 컴퓨터가 이해하고 두는 게 아니므로 바둑의 가치는 계속될 것”이라고 하셨다던가.바둑의 아름다움. 좋다. 이 바둑의 자리에 우리 인간은 온갖 수많은 대체어를 가져다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축구의 아름다움, 인내의 아름다움, 양보의 아름다움, 희생의 아름다움, 웃음의 아름다움, 사랑의 아름다움 등등.이제 나는 알파고 씨의 새로운 업그레이드 버전은 더 인간답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실수를 했을 때 정말로 괴로워하면서 아자황 씨로 하여금 표정을 일그러뜨리도록 하게 말이다. 또는 패배한 상대방을 보면서 한없이 안쓰러운 감정을 품을 수 있도록 말이다. 아름다움과 연민과 포용을 아는 인간처럼 말이다.

2016-03-17

초소형 국가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인터넷을 뒤져 보면 초소형 국가라는 말이 나온다. 혹은 초미니 국가라고도 하는 이 나라들은 국민이 100명도 채 안 되는 나라들이지만 지구상에 약 400개나 존재한다고 한다. 국민, 영토, 주권이 국가의 3요소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이 초소형 국가들은 국민은 수십 명 수준이 대부분이고 무슨 시설 따위를 영토로 삼을 정도로 빈약하며 가장 큰 문제는 도대체 주권 국가로 아무데서도 공인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이제 텔레그래프 지가 소개하고 세계일보의 명민한 기자님이 추려낸 그 국가들의 이름을 나열해 보면, 카리브해의 레돈다 왕국, 영국 남바다의 시랜드 공국, 미국 플로리다 주의 콘치 공화국, 미국 네바다주 사막 지역의 몰로시아 공화국, 리투아니아 수도 빌니우스 외곽의 우주피스 공화국,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프리타운 크리스티아니아, 벨기에 사람이 남극에 세운 플란드렌시스 대공국, 호주 서부의 한 농장주가 자기 농장에 세운 헛리버 공화국, 캐나다의 노바스코샤주에 속한 한 섬의 맨 끄트머리 바위섬에 세운 아우터발도니아 공국, 영국의 코미디언이 자기 아파트에 세운 러블리 왕국 등이 그것이다.그밖에도 인터넷은 이 초소형 국가, 또는 초소형 국민체에 대한 재미 있는 여러 정보를 알려주는데, 인구 7명의 오스티네시아, 인구 46명의 투 체어스 왕국, 인구가 238명이나 되는 아에리카 제국, 인구 370명 가량의 세보르가 공국, 인구가 단 2명뿐이라는 아틀란티움 제국, 인구 4인의 몰로시아 공화국, 2006년 9월 29일에 수립했다는 인구 12명 이상 된다는 대한제국 같은 것들이 있다.재미있다. 이쯤 되면 나도 나라 한 번 만들어 보자고 다투어 나설 만도 하다. 왜들 이렇게 새 나라를 자꾸 만들고 싶은 것일까?이 나라들이 내세우는 이념이나 모토에 힌트가 있다. 예를 들어 우주피스 공화국 헌법에는`사람은 각자의 개성으로 살아갈 권리를 갖고 있다`고 쓰여 있다고 하며, 프리타운 크리스티아니아는 유럽 아나키즘과 히피운동의 본산으로, 덴마크 당국으로부터 자치권까지 인정 받았다고 한다.우리 한국 사람들은 나라라는 것을 빼놓고는 뭔가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국가주의적이기 때문에 아나키즘 같은 것도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 같다.1920년대에서 1930년대까지 한국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아주 활발하던 때에도 아나키즘은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등으로 연결되는 마르크시즘 사회주의 운동에 밀려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사회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국가라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없어져야 하지만 이 국가를 없애기 위해서는 국가 아닌 국가를 세워 그것을 없애는 과정을 밟아 나아가야 한다고. 그러면서 아나키들을 향해 비판을 퍼붓는다. 이들은 즉각 유토피아를 만들고 싶어 하지만 그럴 방책이 없노라고..하지만 나는, 도대체, 언제, 그 국가 아닌 국가라는 것이 국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느냐고 생각한다. 또 20세기 내내 실컷 지구상 이곳저곳 큰 면적을 차지한 곳에서 그 국가 아닌 국가라는 것을 실험해 보았지만 결국은 야만에 귀착되고 만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나는 한국이라는 이 나라를 지독히도 사랑하면서도 이 나라의 국가 체제라는 것이 자유와 인권 면에서 아직도 충분치만은 못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다. 때문에, 뭔가 더 좋은 나라가 되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오늘도 내가 발명할 초미니 국가를 상상해 보는 것이다.

2016-03-10

헌 책의 값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얼마 전 뉴스 기사를 보니 `혈의누` 초판이 경매에 나와 장장 칠천만원에 낙찰을 보았다고 한다. 또 작년 말에는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의 초판본이 일억삼천오백만원에 결정을 보았다고도 한다. `혈의누`를 쓴 이인직이라면 천하에 다 알려진 `친일파`인데, 그래도 `최초의 신소설`이라는 딱지 값은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김소월처럼 요절의 `영예`를 안은 이나 백석처럼 눈부시게 하얀 문학세계를 가진 시인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유감도 없다. 한 때 나도 헌책을 좋아해서 찾아다닌 적이 없지 않다. 그 덕에 지금 어디에 박혀 있는지는 잘 몰라도 분명히 내 소유권 안에 들어있는 일제 강점기 소설책 등속을 몇 권 가지고는 있다. 지금도 헌 책을 좋아하는 취미는 버리지 않았지만 값이 이렇게 천정을 모르고 솟아서야 어디 들여다 볼 엄두도 내지 못할 지경이다.도대체 헌책 값이 이렇게 뛰는 까닭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무엇보다 인식의 변화를 꼽지 않을 수 없다. 헌책이 그냥 헌책이 아니요 문화유산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조선시대니 고려시대니 하는 책들은 이미 그 인식이 확고해서 골동품 상에서나 볼 수 있으니 지금의 이야기는 이른바 근대유산으로서의 책들에 대한 것이다. 근대라 하면 또 규정을 둘러싼 말들이 많겠지만 일단 여기서는 근대적 활자 매체로 출판된 책이라고 해 두자. `혈의 누`같은 구활자본 신소설 책들을 비롯하여 1930년대의 디자인 감각 화려, 세련된 시집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해방 직후의 종이 사정을 반영하는 `똥종이` 인쇄본들에 이르기까지, 그 `옛날` 책들이 이제는 단순한 헌책이 아니요 문화적 가치를 높이 내장하고 있음이 의식되고 있다.앞의 이유와 관련하여, 우리 옛날 책들이 다른 나라의 비슷한 시기 책들보다 훨씬 희소하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책을 아주 높게 보는 풍습을 가지고 있지만 세 가지 아쉬운 점이 있으니, 그 하나는 국가가 책의 출판을 엄격하게 관장, 제한했던 것이며, 다른 하나는 책을 다량으로 찍을 만큼 경제사정이 좋은 적이 별로 없고, 나아가 있는 것들마저 전란과 재해 등으로 없어진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가 하면 이유는 또 있다. 뭣보다 국책 사업 등으로 한글박물관이 지어지고 한국문학관이 지금 문학진흥법 통과와 더불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는 등 문화적 가치가 있는 책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진 것이다. 수요가 공급을 부르고 그 가격을 결정짓는 경제법칙에 따라 자연히 옛날 책들의 가격이 솟아오르는데 솟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나는 중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오르는 때가 있으면 반드시 내려가는 때도 있으리라는 것이다.그러면 이렇게 무섭게 치솟아 오르는 헌 책 값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 하는 문제도 생각해 볼 필요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로서는 올라가면 오르는 대로 내려가면 내려가는 대로 시비 가리지 말고 지켜보는 게 좋다는 것이다. 왜냐. 그 하나는 지금 그런 희귀한 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인생의 오랜 시간을 들여 그것들에 바친 정성을 중히 여겨서다. 또 다른 하나는 내가 만약 그런 좋은 책을 우연히라도 가지고 있다 하면 그런 행운을 빌려서라도 오래된 책이란 좋은 물건임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옛날 것 좋아하시는 우리 어머니께서 잘못 하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집에서 오래된 것을 견디지 못하고 그때그때 버리다시피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집에 아버지가 수십 년 교원 생활 끝에 모아둔 국립공원, 산사의 관광 상품용 앨범들이 다 사라졌고, 어머니가 손수 만드신 오래된 종이 `바탱이`도 처분되고 말았다.오래된 것은 좋은 것이다. 오래된 책은 좋은 것이니, 그 가격이 높은 것쯤 참아줄 수도 있다. 절대로, 내가 알량한 책 몇 권 가지고 있다고 하는 말 아니다. 믿거나 말거나.

2016-03-03

서러운 어른이 될 줄 모르고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바라던 대로 서울 날씨가 며칠 사이에 다시 추워졌다. 외갓집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으니 날은 날대로 춥더라도 다행이다. 겨울이 오면 덕산 북문리 외갓집 동네에는 눈이 쌓인다. 어린 소년의 무릎까지 차도록 눈이 쌓이면 마당에도 눈, 대문 바깥에도 눈, 동구밖에서 저 너머 `읍내`로 통하는 고갯마루까지도 눈, 경운기나, 차나 한 대 겨우 다닐 만한 길 양쪽 옆 논두렁 밭두렁에도 눈. 눈천지 세상이 되면 아침부터 가래로 눈 치우는 소리가 난다. 외할아버지도, 외삼촌도, 외사촌형도 눈을 밀고 쓴다.매일같이 눈만 내리지는 않으니까 아이들은 다행이다. 겨울에 제일 신나는 건 썰매를 타는 일. 외갓집 동네에는 여름에 연꽃이 열리는 방죽도 있고 동네 바깥으로 물을 가둬 얼려둔 얼음판도 있다. 집집마다 나무판 밑에 철사를 댄 썰매를 만들어 나오게 마련인데, 보통은 양날 썰매지만 가끔 스키 타듯 중심을 잡고 타야 하는 외날도 있다. 꽁꽁 얼어붙은 얼음판 위에서 썰매를 달리는 맛도 좋지만 날이 풀리기 시작해서 언제 꺼질지 모르게 물이 밴 얼음판 위를 아슬아슬 달리는 재미도 좋다.그러던 어느 날 외갓집에 모인 외손자, 외손녀들이 덕산온천으로 목욕을 하러 가기로 한다. 외갓집 외손들은 다 합치면 열아홉명, 그 중에 외갓집 양식 축내러 그때 모인 여서일곱 외손자, 손녀를 싣고 외사촌형이 경운기를 몬다. 동구밖을 지나 고개를 넘어 면사무소, 양조장 앞을 지나쳐 수덕사 쪽으로 경운기가 달린다. 춥다. 하지만 몸이 뜨거운 아이들은 추운 줄을 모른다. 덕산온천까지 경운기로 얼마나 걸렸을까? 아마 삼사십 분은 족히 갔을 것이다.지금은 무슨 온천장, 호텔, 모텔이 그렇게 많이 생겼는지, 그때는 온천장이라고는 오로지 하나였다. 남탕도 있고, 여탕도 있고, 가족탕도 있었다. 언젠가 엄마, 아버지, 동생들하고 가족탕에 들었던 것도 기억난다. 하지만 외갓집 아이들끼리는 남녀가 유별하다. 사내아이들은 남탕으로, 계집애들은 여탕으로 들어가 한 시간 남짓 들어갔다 나오면 볼은 빨갛게 피어오르고 피로를 모르는 유쾌한 아이들은 장난들을 쳐댄다. 그러나 이제 돌아가야 한다. 모두들 경운기 짐칸에 다시 올라탄다. 헌데, 아뿔싸! 머리를 제대로 말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재미나고 신났지만 나중에는 머리가 시리고 귀가 시려온다. 춥다. 얼마나 더 가야 하나? 마침내 고갯길로 접어든다. 동구 앞 첫째집이 외갓집이다. 무섭게 몸이 추워져 경운기가 서자마자 대문간, 마당, 툇마루, 안방으로 달려든다. 외할머니 참빗으로 머리를 빗으니 얇은 얼음박이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린다. 아랫목 이불 속으로 기어들면 그제야 살 것 같다. 외할머니가 늘 버티고 계신 안방은 언제나 따뜻하다.저녁을 먹고 어느덧 밤이 오면 외숙모는 부엌에 나가 식혜를 떠오기도 하고, 찐고구마에 동치미를 내오기도 하고, 예산에서 나는 국광 사과 못 생긴 것들을 내와 깍아주기도 한다. 이모부들, 이모들은 제각기 패를 짓는다. 여자들은 외할머니와 같이 안방에서, 남자들은 외삼촌방에서, 아이들은 건넌방에서 제각기 논다. 여자들은 무슨 얘기들이 그리도 많은지, 남자들은 바둑 아니면 내기 화투놀이, 아이들은 만화책, 동화책도 보고 무서운 얘기도 하고 이불 밑에 들어가 서로 얽혀 시시덕거리기도 한다. 외할아버지만은 늘 혼자 어둡고 좁은 당신 방에 들어앉아 라디오를 들으신다.그방에는 늘 외할아버지가 피우시는 담배냄새가 나고 곰방대가 있고 질화로가 있고 시조 악보가 있고 오래된 책들이 있다.밤이 깊으면 이제 자야 한다. 안방쪽에서는 외할머니와 큰이모와 엄마와 막내이모가 서로 큰 소리를 내며 옛날 얘기들을 한다. 외할머니가, 당신이 다 잘못했다고 말하는 소리도 들린다.어른들은 사연이 많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무것도 없다. 나중에 자기들도 다 커서 서러운 사람들이 될 줄 모르고 키득키득거리다 잠에 떨어지고 만다.

2016-02-25

따뜻했던 나날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어제, 오늘 서울은 몹시 춥다. 며칠 포근하고 따뜻해서 이대로 계절이 바뀌어 봄이 오나 했는데. 역시 착각이다. 그렇게 쉽게 오는 봄이 아니다. 개구리가 튀어나왔다가 맹렬한 추위에 얼어죽을 지경이라는 소식까지 들린다. 오슬오슬 떨면서 왔다갔다 하다 보니 마음이 몹시 시달린다. 뭔가 따뜻했던 일을 떠올리려 해 보니, 갑자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무슨 일일까. 오래 잊고 지낸 분들인 것을. 외할머니나 외할아버지나 무척 부지런한 분들이셨다. 덕산 하고도 북문리, 면사무소, 덕산 국민학교 옆으로 난 샛길로 접어들어 야트막한 고갯길을 넘어들면 아늑한 북문리 동네가 눈에 든다. 얕기는 얕아도 여우가 나온다는 고개, 밤 늦어 뭐라도 사러 `읍내`로 들어갈 때면 귀밑이 쭈뼛해지는 고개. 그걸 넘어 내려가면 외갓집 세상이다. 외할아버지는 가운데 할아버지, 외조부 삼형제가 한 동네에 옆에, 뒤에 함께 사는 동네에 내가 들어서면 아버지 고향보다 더 내 고향 같은 곳이 바로 그 북문리다.외갓집에서 자면 새벽 댓바람부터 외할아버지께서 대빗자루로 토방을 싹싹 쓰시는 소리가 들린다. 중천에 해 떴는데 왜들 안 일어나고 방안에 뒹구느냐고, 우리들한테 직접 호통을 치지는 않으시고 마당에서 중얼중얼 하시는 말씀이 들린다. 그러면 열아홉이나 되는 외손자, 외손녀들 가운데 셋씩, 넷씩은 늘 와서 묵게 되어 있는 우리들은, 할아버지니까 무서워서, 고개가 움츠러들면서도 하는 수 없이 일어나 마당 우물로 세수를 하러 나가야 하는 것이다.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 힘에 밀리신 것인지, 늘 안방 아니라 건넌방 작은 골방 같은 곳, 그렇게 좁을 수가 없고, 그렇게 컴컴할 수가 없고, 할아버지 냄새 첩첩 쌓여 묘할 수가 없는 냄새가, 그것이 외할아버지의 영지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라디오가 한 대 있다. 모양은 지금 가물가물, 다만 내가 공주에서 들었는지, 북문리에서 들었는지 모르는 장소팔 고춘자의 만담이나 민요 같은 것이 흘러 나오는 라디오. 그 옆에는 외할아버지 베개가 하나 있고 벽장이 있는 새까만 골방을 외할아버지는 마치 당신의 영토처럼 지키고 계셨다.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외할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괴팍하고 깐깐하고 무섭다. 왜 볏짚가리 싸놓은 걸 위에 올라가고 구멍을 파고 들어앉고 해서 헤쳐놓느냐고 자디잔 외손들 행패를 어지간히 성가셔 하시고, 감나무 올라가지 마라, 소나무 올라가지 마라, 아침에 단 한 번 외할머니 계신 안방에 들어오셔서 딴상으로 아침밥을 드시면서, 반주 한 잔을 입 밑에 수염에 술방울이 맺히도록 드시면서, 마주 앉은 나는 무슨 소린지 들어먹을 수도 없는 말씀을 이 말씀, 저 말씀 하시면서,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식사가 끝나실 때까지 끝날 줄을 모르시던 그분.그런데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외할아버지는 제주 고씨 탐라 왕조 몇십 몇대 손이라시던가. 한번 역사 얘기가 나오면 폐비 윤씨 얘기에 묘청이 난을 일으키던 얘기에 우암 송시열이 사약 받던 얘기에, 무슨 무슨 얘기들이 혹부리 할아버지가 혹에 이야기 보따리를 감추신 것처럼 밤 깊어 내 입이 귀 밑까지 찢어지도록 하품을 할 때까지 그침이 없으셨다.어린애가 역사를 안다고, 똑똑하다고, 계몽사판 한국사이야기에 나오는 지식으로 어린 연산군이 어머니의 피묻은 한삼자락을 보고 한을 못 이겨 부왕의 귀인들을 때려 죽이는 대목까지 죽을 맞추면, 친손 아니라 외손인지라 그리 반가울 것도 없지만, 또 그리 싫을 것은 없으셔서 한 말씀 겨우 칭찬을 해주셨다.늘 표정이 굳고 불만이 있으신 것 같은데도 돌이켜 보면 어느 놈 붙잡고 호되게 혼내신 적은 한번도 없고, 하루는 내게 수수깡을 다듬어 아이들 노는 놀잇감을 만들어 주시기도 하고, 달밤에 대청마루에 나를 데리고 앉아 옛날 제주도 삼성혈 얘기까지 느릿느릿 회상조로 풀어주시기도 했다.하, 생각하면 까마득한 옛날, 따사롭고 따사로웠던 요람 같던 시절. 다음 주에도 몹시 춥기 바란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얘기가 무진무궁 끝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2016-02-18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한국에서는 새해 하면 뭐니뭐니 해도 설이다. 한때 신정이라 해서 양력설을 지냈지만 일제시대 유습일 뿐이요, 음력 설날을 대신할 순 없다. 양력이니 음력이니 하는 것은 단순한 과학의 문제가 아니요 농본주의 민족인 한국인들의 전통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 이상이 도쿄에서 1937년 초에 보낸 편지를 보면 `오늘은 음력으로 제야입니다. 떡이며 너비아니며 수정과며 그 모든 기갈의 향수가 못살게 굽니다` 하고 도쿄 이민족들 속에서 홀로 설을 맞이하는 외로움을 절절하게 피력했던 것이다.설 하면 뭐가 생각날까? 우선 떡국이요, 차례상이요, 식혜요, 쇠고기 산적 같은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술, 이 술 저 술 다 합쳐서 술일 것이다. 왜냐? 정든 식구들, 고향 친구들 만나면 술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술을 좋아하는지는 우리들 스스로 다 알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아랍의 알 자지라 방송이 악명 높은 한국의 술 문화를 장장 25분이나 방영을 했다던가? 또 아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술에 관해 최근에 얻어들은 유머 하나를 소개하면 실상이 이렇다. 이 유머에 이렇게 쓰여 있다.동문회란? 같은 학교 졸업자들이 모여서 술 먹는 모임이다. 산악회란? 산에 가서 술 먹거나 하산 후 술 먹는 모임이다. 조기축구회란? 아침에 공차고 저녁에 술 먹는 모임이다. 향우회란? 같은 고향 출신들이 모여서 술 먹는 모임이다. 수련회란? 무슨 훈련한다고 밤 새워 술 먹는 모임이다. 문상이란? 초상집에 가서 술 먹는 모임이다. 연수회란? 회사에서 몇 날을 괴롭히면서 술 먹여 주는 모임이다. 망년회란?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술 먹는 모임이고, 신년회란? 새해를 맞아 술 먹는 모임이다.그럼, 번개란? 갑자기 모여서 술 먹는 모임이다. 이렇게 놓고 보니 하나도 틀린 게 없다. 한국인들이 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 유머 하나만으로 가히 짐작하고 남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 술을 잘 마시는 것일까? 필자가 15년 전쯤에 겪은 일 하나를 소개한다. 그 무렵 필자는 인생을 비관하지는 않았어도 세상 일에 못마땅한 것도 많고 필자 자신에 대해서도 괴로운 것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비평하는 사람 `답게` 자신의 견해를 굽히지 않다 보니 선배들과도, 다른 문학인들과도 편치 않은 관계 투성이였다. 참을 인 자 세 번을 쓰면 살인도 면한다는데, 어디서든 욱 하는 마음이 도지면 다툼을 무릅쓰지 않곤 했고, 술을 마시면 이 좋지 않은 성정이 더 드러나곤 했다. 현실 속에서 괴로운 일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필자와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그 무렵에 서울 인사동에 `평화 만들기`라는 술집이 있었다. 문학하는 사람들이 행사 끝나면 단골로 가는 곳인데, 지금 생각하니 무료로 내주는 백김치 안주가 맛이 일품이었다. 거기서 보통 때나 다름 없이 나도 사람들 사이에 끼어 술을 마시는데, 어른들 앉아 있는 자리에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보니, 평론가 구중서 선생을 비롯하여 여러분이 앉아 계시는데 그렇게 화기애애할 수 없다. 그날 따라 마음이 변할 때가 돼서 그랬는지 필자가 선생들 계신 곳으로 갔다. 그리고 여쭈었다. 여러번 보기를 술을 드시면서도 한 번도 다투는 모습을 보이신 적 없으니 어떻게 해서 그러실 수 있는지요? 그러자 그중에 한 분인지 구중서 선생인지 말씀하셨다. 술을 마실수록 유쾌해지고 화창해져야 한다, 그렇지 못할 거라면 술 마실 필요가 없다.듣는 순간, 크게 마음에 와닿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술을 마시며 사람들과 다투지 않으리라. 정신 놓도록 마시고 싸우는 일 없도록 해야겠다.정말 그렇게 되었던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날 이후로 술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 술은 갈등을 녹여 사람들을 잇고 화해하게 하고 평화롭게 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 신이 우리 사람에게 준 것 중에 그중 신묘한 것이 술이다. 그 술로 독을 만들지 않고 꿀을 삼는 지혜가 필요하리라. 특히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2016-02-11

웃음은 왕처럼 행동한다네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읽고 있는 책에서 좋은 구절을 찾아내는 기쁨,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안다. 그러면 또 그 구절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하는 마음에 대해서도 알 것이다. 다음에 인용하는 문장들은 내가 최근에 읽고 있는 소설에서 밑줄을 그은 것이다. 인용이 길다고 나무라시지나 않았으면. “웃음은 왕처럼 행동한다네. 자기가 원할 때,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온다네. 아무에게도 묻지 않고, 적절한 때를 골라서 오지도 않네. 그는 그저 `나 여기 있다`라고 말할 뿐이네. (중략) 이상하고 슬픈 일들이 많은 세상일세. 불행과 번민과 고통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네. 그러나 웃음의 왕이 오면 그가 연주하는 곡조에 맞춰 그 모든 것들이 춤을 춘다네. 피 흘리는 심장들도 공동묘지의 말라빠진 뼈들도, 뺨을 타고 내리는 뜨거운 눈물들도 말일세. 미소를 지을 줄 모르는 웃음의 왕이 음악을 켜면, 그것에 맞추어 모두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춘다네. 웃음의 왕이 오는 건 좋은 일이네. 고마운 일이지. 우리 인간들은 팽팽하게 당겨진 밧줄과도 같네. 이러저러한 이유로 우리를 잡아당기는 피곤한 일들 때문에 팽팽해져 있지. 그때 눈물이 찾아오네. 밧줄에 빗물이 내리는 것처럼 말일세. 눈물은 우리를 더 팽팽하게 만든다네. 긴장이 지나치면 우리는 끊어지고 말겠지. 그러나 웃음의 왕이 햇살처럼 우리를 찾아온다네. 그가 다시 긴장을 풀어주지.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수고로운 우리의 삶을 버텨 나가는 것이지.”웃음은 확실히 묘약이다. 그것은 우리의 고통을, 적어도 그 웃는 순간만큼은 확실히 경감시켜 주며, 지속적인 효과를 맛보게 하기도 한다. 웃음은 고통을 떨쳐낼 수 있게 해주고 우리가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도 한다. 내친 김에 이 믿음과 관련하여 쓴, 이 책의 또 한 부분을 인용해 본다.“세상에는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네. 오래된 것도 새로운 것도 있네. (중략) 자네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어달란 말이지. 말하자면 이런 거지. 어떤 미국인이 믿음이라는 것을 이렇게 정의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네. 즉, `믿음이란, 우리가 사실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 것을 믿게 하는 능력`이라고 말야. 우선, 그 사람의 가르침을 따르게. 그 사람 얘기는, 우리가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 작은 바위 덩어리가 철도의 화차를 막는 것처럼, 진실의 작은 조각이 커다란 진실이 나아가는 것을 막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일세. 알아들었나? 좋아. 그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도록 하세. 그러나 동시에, 그로 하여금 이 세계에 있는 모든 진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해야 하네.”믿음이란 우리가 사실이라고 이미 알고 있는 것만을 믿는 능력이 아니라, 사실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 것까지도 믿을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귀에 들리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고, 내 마음에 믿기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마치 기독교에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듯이, 천도교 동학에서 천지만물이 저 한울이라는 근원에서 가지 쳐 나온 분신들임을 믿듯이, 눈앞의 사실을 넘어선 세계를 믿을 수 있는 능력이 믿음이라는 것이다.이런 글귀들을 페이지들 안에 숨겨두고 있는 책의 이름은, 바로, `드라큘라`, 브램 스토커라는, 우리에게 아주 낯선 작가가 쓴, 너무나 잘 알려진 소설이다. 우리들은 하지만 이 `드라큘라` 소설보다는 영화로 더 많이 안다. 하지만 소설 `드라큘라`는 영화보다 자세하고 철학적이다. 적어도 두 시간 정도 들여서는 소화시킬 수 없을 만큼. 인용된 두 부분을 합해서 하나의 `명제`를 만들어 본다. 나는 웃음이 우리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을 믿는다, 라고.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것 같다. 내 삶조차도 내가 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웃는다. 언젠가, 어떤 방법으로든 새로운 차원이 펼쳐지리라고. 믿음은 우리를 견디게 한다.

2016-02-04

톨스토이를 읽는 겨울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날은 춥고 눈은 내리고 봄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게 하는 때다.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을 한겨울에 읽으니 좋다. 톨스토이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먹히던 해에 세상을 떠났고, 그보다 한 십 년 전에 이 `부활`을 썼다. 그는 이 소설을 십 년 정도에 걸쳐 여러 번 고쳐 썼고, 그래서 깊은 그의 생각이 작품에 나타난다.창녀인 스물일곱 살 카튜샤는 어떤 상인을 독살한 누명을 쓰고 시베리아 유형을 가게 된다. 이를 그녀의 첫사랑이었던 네흘류도프 공작이 알게 된다. 그녀를 구원하기 위한 그의 기나긴 노력이 펼쳐진다.톨스토이는 이 소설 속에서 무엇을 말했나. 그것은 사람이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느냐다. 무슨 권리로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그런 질문을 우문으로 여긴다. 그는 이 어리석은 질문이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우리에게 알린다. 사람이 사람을 구제하는 길은 처벌이 아니라고, 사랑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음을 말한다.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를 그는 누명을 쓴 여인과 이 여인의 불행 앞에서 회심한 귀족 청년의 모습을 통해 집요하게 펼쳐낸다. 귀족 청년이 자신의 사치와 여유의 원천인 토지를 버린다. 자신이 속한 귀족 사회의 영화를 버린다. 유형지로 떠나는 창녀를 따라 머나먼 길을 떠난다. 감옥에 갇힌 사람들과 함께 인생의 의미를 캐묻는다. 추운 겨울 날씨는 `부활`의 메시지를 음미하기 좋게 만들어 준다.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한다.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한국 경제가 어렵다는 것까지는 누구나 의견이 같다. 입을 모아 똑같이 얘기들 한다. 그 다음부터는 완전히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세계경제 탓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대기업, 재벌 탓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정부 여당 탓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귀족 노동자들 때문이라고 한다.원인에 대한 판단이 다르니 해법도 다르다. 그럼 나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여러 개 입장들 가운데 어떤 것을 내것으로 해야 하나? 여기서 어떤 입장을 선택하는 순간 나는 현실적 정치의 일부로 변한다.또 한 가지 사례가 있다. 대개 현실 비판적인 독립방송의 속성상 지난 한두해 동안 온갖 시사 팟캐스트들은 세월호 참사 같은 문제들에 관해 동정과 연민과 공감을 함께 표명해 왔다. 그런 문제 앞에서 많은 팟캐스트 방송들은 하나였다. 하지만 겨울이 오고, 야당이 둘로, 셋으로 나뉘고, 다시 합쳐지는 과정 속에서 팟캐스트들은 나뉘었다. 그중에 어디를 지지하고 어디를 비판하는 식으로 날카롭게 갈래를 치며 내달렸다. 어디를 지지하고 어디를 비판할 것인가? 내가 만약 이 가운데 어딘가를 택하거나 배척한다면 그때부터 나는 현실 정치의 일부가 된다. 이제 나는 문제를 던지고 답을 구하는 방법을 현실 정치에서 구해내자고 생각한다. 그 일부가 되지 말고, 톨스토이 식으로, 우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도대체 왜 우리는 경제라는 것을 생각해야 하나? 사람에게 경제란 무엇이며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나? 이런 질문들은 우리 정치가 지금 제출하고 있는 답변들의 근거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할 것이다.톨스토이는 말년에 자기 작품의 저작권을 모조리 포기하려 해서 생각이 다른 아내와 죽을 때까지 불화를 겪었다. 그는 또 교회가 필요없다고 써서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파면을 받고, 정치범들을 잡아 가둘 필요가 없다는 듯이 써서 짜르 체제의 혹독한 검열을 통과해야 했다. 이번에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샌더스라는 또다른 민주당 돌풍이 나타나 대학을 등록금 없이 다닐 수 있게 하겠다고 한다. 동영상 파일로 본 그의 연설은, “우리는 ~을 할 수 있다”면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 바깥에 머무르고 있는 유권자들을 설득하고 있다.우리는 왜 정치라는 제도를 갖고 있는 걸까. 우리는 왜 경제라는 메커니즘을 운영하는 걸까. 톨스토이식 질문과 답변이 그립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

2016-01-28

포항에서 좋았던 것들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대마도에 놀러가자고 몇 사람이 굳게 약속을 했던 것이 무산되고 말았다. 그랬더니 이번에 시인들끼리 포항 구룡포에 원박투데이(1박2일)로 단체여행을 하는 김에 하루 더 놀다오자고 했다. 객지에서 노는데 웬만하면 하루면 됐지 무슨 이틀씩이나 하면서도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고 그러자고 했다. 세월이 빠르다보니 금방 날짜가 닥쳐 여행 때가 되었다.서울에서 포항까지 직접 가는 케이티엑스가 생긴 게 엊그저께니 그걸 타도 좋겠다. 하지만 시각이 여의치 않다. 신경주역에서 내려 구룡포 가는 마이크로 버스를 탔다. 25인승 차가 경주포항 간 국도를 달려 처음 당도한 곳이 구룡포 항구다. 바다, 하고 말하면 마음은 벌써 바닷빛이 된다. 그곳에서 옛날 일본 신사와 적산가옥들이 늘어선 골목을 둘러보고 추억의 물품들을 파는 곳에서 새총을 샀다. 어렸을 때 생각이 난 것이다.바다로 난 방파제를 사람들과 함께 걸으니 저녁빛의 운치가 있다. 이것저것 얘기도 하고 바다와 방파제를 배경 삼아 사진도 찍는다. 먹을 것이 많아 그런지 갈매기가 잔뜩 떼를 짓기도 한다. 방파제가 끝나는 곳까지 갔다오다 어디 잔돌멩이가 없나 찾아보았다. 갈매기를 새총으로 맞춰보자는 심사다. 마침 적당한, 동그란 잔돌이 있어 새총에 끼워넣고 고무줄을 당겨 저쪽 허공에 나는 갈매기를 향해 날렸다. 새가 내 활시위를 비웃기라도 하듯 방향도 바꾸지 않고 유유히 날아간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시라. 처음부터 새를 맞추려는 노림이 아니었으니. 아마 제대로 겨냥했으면 한 마리쯤은 거뜬히 떨어뜨렸을 거라 해두자.포항 명물은 역시 물회에 과메기다. 항구 근처 물횟집에 들어가 싱싱, 새콤, 달콤한 물회에 비린내 하나 없는 과메기 쌈에 저녁을 먹는다. 배도 든든, 멀리 2층 창가로 보이는 저녁 바다도 둥둥, 하루 해거름이 즐거움에 찬다.우리 일행은 이제 구룡포청소년회관에 들어 여장을 풀고 시낭송 경연을 마치고는 서둘러 뒤풀이에 들어간다. 시인들 답사여행은 시낭송 마치고 술먹는 모임이니까다. 이쪽 시인 최해춘 선생이 이것저것 신경을 써주는 바람에 우리는 분에 넘치게도 대게에 광어를 먹는다. 대게 같은 것은 먹어본 사람이나 잘 먹는 거지만 역시 포항 어물의 싱싱함은 제주 바다 그것에 비길 만큼 좋다. 그러니 이곳 사람들이 서울 와서 회를 먹지 못한다.다음날 비가 내렸다. 이육사 청포도 시비도 보려 했지만 비가 웬수다. 차가운 겨울비에 호미곶 카페 2층에서 바다 풍경을 맛보는 것으로 서운함을 대신한다. 이제 나는 권성훈이라는 시인과 단둘이 남아 서울과 대구에서 오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포항 죽도시장 고래고기집으로 간다. 기왕 온김에 포항이 주는 것은 다 먹어보자는 것이다. 진미식당이라 하는데 밍크고래란다. 고래는 법적으로는 잡을 수 없다 한다. 하지만 그물에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먹는단다. 원래 포유류인데 바다에서 사니 그 맛이 돼지고기같기도, 쇠고기같기도, 무슨 물고기같기도 하다. 부위마다 빛깔과 맛이 다르니 먹는 재미가 있다. 까탈을 부린다고 부려 포항 막걸리를 따로 사다 놓고 마신다. 노는 날의 하루는 짧기만 하다. 시시껄렁한 농담에, 서로 트집잡고 비난하기에, 없는 호 지어주는 사이에 또 저녁이다. 우리는 또 자리를 옮겨 대게집으로 간다. 박달대게 국산은 얼마인가 보니 큰 거 한 마리가 15만원이나 하고, 그보다 작은 건지 종류가 다른 건지 수입산인지는 8만원을 한다.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또 물어보니 한 마리에 2만원 짜리도 있고 홍게는 더 싸게 팔기도 한다. 일행 중 누가 호기를 부려 중치로 두 마리를 사니 홍게 두 마리는 서비스로 준단다.마지막으로 우리는 살아있는 문어를 삶아 먹기까지 했다. 지치게 먹으며 나는 생각했다. 좋은 날이라고. 서울로 올라오는 밤늦은 기차 안 식당칸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다. 몹시 피곤한데도 괴롭지 않다고 느꼈다. 인생이 이런 여행 같았으면 했다.

2016-01-21

신경림 시를 읽는 날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대학은 겨울방학이다. 방학 때도 하는 수업이 있는데 계절학기 강의라고 한다. 이번 겨울에는 오랜만에 이 계절학기 강의라는 것을 맡았는데, 과목 이름은 `창작의 세계`다. 대학의 교과목에는 교양 과목과 전공 과목이 있음은 많이들 아는 일일 것이다. 이 강의는 교양 과목이고, 창작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 스무 명 남짓 수강한다. 처음에는 스물다섯 명이 넘었지만 도중에 수강신청 취소라는 것을 다섯 명 정도가 하고 나니 스무 명이 조금 넘는 정도다. 적당한 숫자인 것 같다. 그보다 많으면 창작물을 읽고 같이 토론하고 또 자기 작품도 써보는 수업의 취지에 어울릴 것 같지 않다. 실제로 시나 소설을 써보는 것이 주된 수업 목표인 때문이다.본격적인 수업 첫날부터 작품을 놓고 토론을 하자고 하니 학생들은 적지않이 당황해 하는 것 같았지만 하루걸러 수업이 누 차례 거듭되자 대부분 공부할 작품을 미리 읽어 오고 토론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이 많아졌으며 작품을 쓴다는 행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듯했다.자, 오늘의 수업은 신경림 시를 읽고 토론해 보는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시를 구상해 보는 것이다. 지난 시간에는 젊은 시인으로 각광 받는 진은영 시인의 시집을 놓고 했고 이번 시간에는 신경림 시인의 비교적 최근 시집`사진관집 이층`이다. 사회자를 미리 정해서 시집 중의 시 몇 편을 공부하는 자료실에 올려놓도록 하는데 그중에 `다시 느티나무가`라는 시가 있었다.“고향집 앞 느티나무가터무니없이 작아 보이기 시작한 때가 있다.그때까지는 보이거나 들리던 것들이문득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나는 잠시 의아해하기는 했으나내가 다 커서거니 여기면서,이게 다 세상 사는 이치라고 생각했다.오랜 세월이 지나 고향엘 갔더니,고향집 앞 느티나무가 옛날처럼 커져 있다.내가 늙고 병들었구나 이내 깨달았지만,내 눈이 이미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진 것을,나는 서러워하지 않았다.다시 느티나무가 커진 눈에세상이 너무 아름다웠다.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져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이 더 아름다웠다.”여기서 학생들은 보이거나 들리던 것들이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게 무엇이냐를 두고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았고 또 이 시가 말하고자 한 바를 두고 좋다는 의견부터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견까지 다양한 반응이 있었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좋다는 것이었다.이 시를 이 글의 독자 분들도 다시 한 번 봐주셨으면 좋겠다. 내 개인적으로는 학생들이 토론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세상살이의 고통과 부조리를 상대하는 시인의 태도에 새삼스럽게 감명을 받았다. 유소년 시대를 지나 청춘과 숙성의 시기에 접어들면 사람들은 어릴 적의 삶에 대한 경탄을 잊고 악을 비난하고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데 시간과 열정을 소비한다. 노년이 되면 어떤가? 이 시를 읽으며 나 또한 이 시인처럼 세상의 모든 것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미래를 맞이하고 싶어졌다. 욕망과 분노와 비판을 내려놓고 살아있다는 것이 더할 수 없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그런 관대한, 따뜻한 노인이 어서 되고 싶어졌다. 시는 삶을, 또 그것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를 되돌아 보게 한다.

2016-01-14

근대화는 선인가?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국문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큰 논란 거리 가운데 하나는 근대화를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것이다. 사실, 근대화라는 말은 지금의 시점에서는 고색창연하게 들리기 때문에 용어를 현대화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둘다 영어로 모더나이제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에서도 고전문학이 있고 근대문학 또는 현대문학이 있으니, 고전에서 현대로 나아온 과정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는 문제도 될 수 있다.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 나아가는 시기에는 사회혁명을 꿈꾸는 사람도 많았다. 소련 등 현실 사회주의권이 무너진 이후 진보주의라는 것에도 오명이 씌어졌기 때문에, 지금 진보를 말하는 것은 욕 먹을 각오쯤은 되어 있다고 선언하는 셈이기도 하다. 1980년대에는 그렇지 않은 면이 존재했다. 현실 사회주의의 추악한 면을 직접 확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진보주의자들은 막연한 꿈을 꾸기도 했다. 사회주의는 곧 진보요, 진보는 선이라는 것이다.그때 민족문제에 관한 복잡한 질문이 주어졌다. 마르크스가 제국에 의한 식민지 지배는 식민지의 전근대적 사회를 해체하고 새로운 근대사회를 이식했기 때문에 무조건 진보적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제국에 의한 식민 지배는 진보적이라는 인식이 폭넓게 작동되기 시작했다. 기존의 지식계가 제국의 식민지배에 대한 강렬한 반감에 기초한 저항 민족주의 형태를 띠었다면, 이제 제국주의는 식민지에 진보를 가져온다는 논법이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과거에 반제국주의 노선을 가졌던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바로 제국주의의 진보적 측면에 드디어 `눈뜬` 경우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여기서 하나의 질문이 생략된 채 비약이 이루어져 있다. 진보라면 다 선인가 하는 것이다. 과연 진보는 다 선인가? 예를 들어 서당을 없애고 공립학교를 세운 것은 다 선인가? 구불구불한 길을 직선으로 펴고 철도를 놓아서 사람들이 빠르게 다닐 수 있도록 한 것은 다 선인가? 그럴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서 나는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했던 말을 떠올린다. 모든 진보는 상실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깊이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시간을 칼로 두부를 자르듯이 쓸 수 있게 되었다고 근대의 시간관을 예찬하고 또 그것을 일본이 가져다 주었다고 예찬한다. 이들이 간과한 것은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가치는 없었는가 하는 것이다. 철로를 놓아서, 서당을 없애서 잃어버린 것은 없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일본이 근대화를 가져다 주었다고 치자. 그러나 이때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없었는가?있다. 우리는 그로써 민족적, 인간적 가치와 존엄과 권리를 잃어버리고 그들 앞에 노예처럼 무릎을 꿇고 남의 말을 우리 말이라 배우고 일상적으로 두들겨 맞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가 생사의 장을 넘나들어야 했다. 그로써 숨진 사람, 무릇 기해던가?그런데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더 놓치고 있는 것은 일본이 가져다 주었다는 근대라는 것은 우리가 그 근대를 위해 싸웠던 수십 년간의 자체적 노력과 계획을 무참히 짓밟은 뒤 그 위에 덧씌운 근대였다는 점이다. 1876년 개항을 전후로 한 시대부터 1905년과 1910년의 국권상실, 그리고 그 뒤의 숱한 저항을 총칼로, 피로써 진압하면서야 그들은 이땅에 자신들의 근대를 `이식`할 수 있었다. 그것이 선이었던가? 근대는 진보이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는 선했던가?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근대, 근대화라는 말로 모든 폭력과 부조리를 정당화 하기 전에 무슨 근대인가, 어떤 근대화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요즘 이른바 위안부 협상 문제로 복잡하다. 어떤 협상인가? 우리의 과거, 일제의 과거를 어떻게 보자는 협상이어야 하는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 때다.

2016-01-07

마지막 날에 생각되는 것들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서울은 지금 눈이 내린다. 오후에 비가 내렸는데 저녁으로 바뀌면서 눈송이가 맺혔다. 하루가 몹시 짧아진데다 날이 찌푸리다 보니 여느 때보다 더 빨리, 더 깊게 어두워졌다. 이제 한 해가 곧 저물게 되니, 세상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파리 테러다.`이슬람 국가`에 소속된 테러리스트들이 공연장 같은 곳에서 보통 사람들을 수백 명씩 살상을 했다. 기독교 대 이슬람이라는 대결 사상은 기독교에도, 이슬람교에도 깊이 스며들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복수의식이 세계를 지배하는 듯하다. 파리의 울부짖음은 그러나 그곳만의, 유럽만의 것이 아니요, 언제라도 우리들 자신의 것이 될지 모르는 두려움을 갖게 한다. 우리가 국가의 이름으로 이 대결의 한축임을 표방한다면 증오와 살상은 우리를 향한 것이 될 수도 있다.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도 있다. 이른바 일본군 위안부, 일제가 벌이는 전쟁에 동원되어 성노예가 되어야 했던 할머니들이 지금 한국과 일본 정부에 의해 이루어진 협상안을 향해 그것은 아니라고, 안된다고, 거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의 할머니들이`명자`요, `아키코`가 되어야 했던 슬픈 역사가 해방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으로 우리들의 역사의식을 시험하고 있다. 오늘 신문을 보니, 아베 신조는 한국이 다시 이 문제를 거론한다면 국제사회의 힐난을 사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다. 돈 10억엔이라면 `겨우` 100억원이다. 옛날에 한·일 국교 정상화 협상 때도 그랬지만, 인색해도 그렇게 인색할 수 없는 자들이 마치 자기들 덕분에 한국인들이 살 수 있게 된 양 역사를 왜곡하는 데는 당해낼 도리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 국우주의자들, 제국주의 사관의 소유자들만이 아니다. 한국 안에도 이들의 역사인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은 세련된 세계주의자들인 듯 분장을 하고 있다. 얼마전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이 문제가 되자 이른바 지식인들이 표현의 자유, 학문의 지유를 걸고 성명을 냈다고 한다. 이들이 다 같은 사고의 소유자들은 아니고, 정부의 처사도 처사지만, 종군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과 그 책이 주장한 바를 생각하면, 성명이 맞는 방법이었는지 심각한 의문을 갖게 된다.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헬 조선`이라는 말이 젊은이들 사이에 일대 유행어가 되었다는 점이다. 풀이를 해보면 지옥 같은 한국이라는 뜻이 될 텐데,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절망감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나는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또 가급적 바르고 고운 말을 쓰자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여기저기서 아무렇지도 않게 발설되는 이 구호에는 마음이 편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 청년들의 현실상황은 인내하라든가 힘을 내라든가 하는 말로는 위로가 될 수 없다. 한국의 젊은이들의 자살률은 매우 높고 이를 해소할 수 있는 특별한 방책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이런저런 상황들을 일별해 보면서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한 여성작가가 쓴`물속 골리앗`이라는 작품이다. 작중에 비가 엄청나게 퍼붓는다. 재개발 지대 아파트가 물에 잠길 정도라 할까. 이 넘치는 물은 성경에 나오는 대홍수를 떠올리게 한다. 곧 뗏목이 필요한 상황이다. 모든 것이 물에 잠길 것이고, 물이 목까지 차오르게 될 것이다.저물어 가는 한 해를 바라보는 내 눈에 비친 현실이 꼭 그처럼 보이는 것은 나의 과장벽 때문일까, 또는 비관주의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12월 31일의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모든 절망과 비관은 뒤로 물러나고 새로운, 밝아오는 한 해를 서로 축복해 주는 함성 소리가 서울 종로에 메아리칠 것이다.그러나, 나는 그렇게 기쁠 것 같지 않다. 그러기에는 우리에게는 너무 많은 고통과 절망과 어려움이 놓여 있다. 그것이 내 일부처럼 느껴지는 한 나는 새로운 한 해를 기뻐할 수만은 없다. 가장 불행하고 가장 낮은 사람들과 함께, 가장 슬픈 이들과 함께 삶을 나눌 수 있는 때를 기다릴 것이다.

2015-12-31

내가 너를 그려도 좋겠니?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유미리라는 재일 한국인 작가를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고 대담한 성품의 소유자인 것 같고 자신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타개해 나가는 과정 자체를 문학으로 승화시켜 왔다. 그녀의 처녀작은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라는 것인데, 이 자전적인 소설이 출판되자 소설 속 등장인물의 실제 모델로 추정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이 작품을 사생활 침해와 명예 훼손으로 문제를 삼았다고 했다. 작가의 자유가 선행하는 것일까, 작가가 모델로 삼은 사람의 인권이 선행하는 것일까? 나는 처음부터 작가의 자유 쪽을 선택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작품이 실제 세계를 향해 열려 있다면 작가는 작품의 모델을 그릴 때 간단히, 부주의하게 처리할 수 없다. 이 재판은 꽤나 유명한 사례를 제공했고, 8년이나 끈 재판 끝에 유미리는 작품을 고쳐 쓰고서야 작품을 재출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요즘 내가 고민하는 것 중 하나는 무엇을 어떻게 쓸까 하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내게 주어진 시간이란 많지 않음을 깨닫는다. 무슨 중병에 걸려서 그런 것이 아니요, 인생 자체가 어차피 시한부인 까닭이다. 먼저 시간을 아끼고 마음을 아껴서 무엇을 쓸 것인지,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글을 써도 다 허공중에 흩어져 먼지더미가 되리라.그림을 그리고 시도 쓰는 누군가 송년회 자리에서 자기는 그림을 그릴 때 그리고자 하는 대상에게 말을 걸어본다고 했다. 내가 너를 그려도 좋겠니? 하고 물어본다는 것이다. 원래 나무하고도 말을 한다는 사람이니 그런 것이려니 하다 문득 깨닫는 게 있었다. 대상을 향해 물어본다는 것, 내가 그리고 내게 그려지는 그것을 향해 내가 너를 그려도 좋겠느냐고 물어본다는 것은 내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그리는 행위의 한갓 객체가 아니라 또 하나의 대화의 주체로서 받아들인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 순간, 나는 이 물어보는 행위 속에 담긴 뜻을 깊이 인식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시도 쓰고 소설도 쓰지만 시적 표현이나 소설적 표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나 사물을 향해 너를 그려도 되겠느냐고 물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 물어보는 순간에, 또 그렇게 물어보기 위해 준비하는 동안에, 나는 그 대상의 입장에 서서, 그 대상과 더불어, 많은 대화를, 생각을 나눌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럴 것 같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힘을 가진 자로서 대상을 규정짓기 전에 그림에 나타날 그 대상이 가진 권리와 가치를 먼저 생각하고 그것이 자신이 어떻게 그려지기를 원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멋진 창작방법이 될 것이다.생각을 연장해 보면, 나는, 그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살아 있는 관계를, 아니 나와 나 아닌 살아있는 존재들의 세상 사이의 진정한 관계를 수립할 수 있게 해줄 것 같다. 옛날 사람들은 세상 만물에 다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고 하며 그것을 원시적 신앙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정말 그것이 원시적인 인식에 그칠 뿐이지 되물어 봐야 할 때가 되었다. 저 나무에 혼이 있는지 없는지,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는 과학적 관찰과 현미경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게 아닐까. 살아 있는 것들, 또 살아 있지 않다고 믿어지는 것들에도 사실은 우리가 모르는 혼의 형태로 그의 생명과 사유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 아닌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절대로 무시하거나 부정할 수 없고 그들 또한 이 세계의, 나와 다름없는 권리를 가진 존재로 인정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너를 그려도 좋겠니? 확실히, 이 물음에는 문학을 한갓 자기 욕망의 실현 도구로 삼는데서 벗어나 타자와 함께 하는 삶을 향한 배려가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문학만이 아니라 이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공유해야 할 원리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너를 이렇게 대해도 좋겠니? 내가 너에게 이렇게 말해도 좋겠니? 내가 너에게 이렇게 주어도 좋겠니? 이 물음은 무한히 다양한 형태로 변주, 변형되면서 이 세계를 타자에 대한 공동체적 배려가 살아 숨 쉬는 곳으로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2015-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