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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돕는다는 것

등록일 2016-04-07 02:01 게재일 2016-04-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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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때가 때이니만큼 누가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진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먼저 도움을 줄 만한 사람, 그러니까 `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도 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누가 `나`의 도움을 얻을 만한 사람일까? 다시 말해`내`가 도와도 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무엇보다 그 사람은`나`의 선의를 선의로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내`가 아무리 그를 도우려 해도 그는`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는 사람,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마음의 넉넉함과 상상력의 부족으로 말미암아`나`의 진의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도울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내`가 자기를 도왔다는 사실을 심지어는 알 수 없을 수도 있고 또 안다고 해봤자 뭔가 다른 불순한 의도가 있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치부하고 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그런 사람을 여러 번 겪었고 또 주위에서도 여러 번 보았는데, 그게 어디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작은 사회에서의 일뿐이랴. 사회가 크면 클수록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거기 쏠린 힘이 클수록 그런 사람은 더 많이 흘러넘칠 수 있다.

`내`가 도와줘도 되는 사람은 다음으로 도움 받은 일을 그대로 아는 데서 나아가, 잘 기억하기도 함으로써 그것을`나`에 대한 자신의 행동의 준거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다. 세상에는 자기를 도와준 사람을 상황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든지 외면하고 심지어는 해칠 뜻마저 품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가장 경계해 마땅하고 또 절대로 도와줘서는 안 되는 사람이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교언영색과 아부를 일삼기 때문에 속까지 꿰뚫어보기 어려운 법이다. 여기에 더 큰 어려움이 있다. 반대로 세상에는 또 자신이 받은 도움을 절대로 잊지 않고 언젠가는 그 십분지 일이라도 보답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도움 준 사람이 어려움에 처할 때면 그 어려움을 자신의 일로 여겨 발 벗고 나서는 사람도 많다. 그래야 세상이 순리대로 돌아갈 것이다.

또한,`내`가 도와줘도 되는 사람은 도움을 받기만 하는데서 나아가 자기도 남을 도우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다. 자기는 언제 어떤 상황 아래서도 도움을 받아야 하고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며, 자기를 돕는 그는 그렇게만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돕는 도의의 세계에서 그는 상호 원조의 아름다운 수레바퀴를 완성하는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을뿐더러 차라리 그것을 망가뜨리기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나 어떤 조직 같은 곳에서나 정치에서나 그런 사람은 세상이 자신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고 그래야 우주가 평온하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향해 동정심을 발할 때, 손을 뻗어 구조를 해줄 때, 그 뜻이 좋은 만큼이나 많은 생각, 깊은 생각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자신이 내미는 도움의 손길이 오히려 그 사람을 해치는 손길이 되어 돌아오는 비극도 많고, 그렇지 않다고는 해도 헛되이 돕는 일에 시간과 정열을 빼앗겨 정작 자신을 위한`사업`에서는 쌓은 것이 없는, 빈곤함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화제를 바꾸어 어떤 사람이 남을 도울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일까? 그것은 우선, 앞에서 말한 바대로 자신이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지혜롭게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이런 지혜가 없다면 자신이 내미는 원조가 헛되이 버려질 수 있고 오히려 자신을 해칠 수도 있다. 또한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그 원조가 또 다른 도움으로 되돌아오기를 바라지는 말아야 할 것 같다. 차라리`내`가 도움을 준 그가 `나`아닌 다른 이들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하자. 그러면`내`가 지금 건네는 이 손길이 훨씬 더 가볍고 투명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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