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어떻게 할까 망설이다 이번에도 결국 하자고 생각했다. 고등학교에 가서 시 짓고 산문 쓰는 것을 도와준다는 일이, 내 처지에 바람직한가 생각하면서도 겨울에 본 아이들 얼굴이 눈에 밟혀 안 갈 수 없다고, 체념한 것이다. 말이 체념이지, 정작 길을 떠나자 기분이 상쾌해졌다. 서울에서 장수, 몇 킬로나 되던가? 새벽 여섯 시에 출발해서 두 곳에 들러 함께 일할 사람들을 태우고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일곱시다.그런데, 계산에 넣지 못한 휴가철 차량 행렬. 보통 경부고속도로는 오산 정도까지 막히고, 좀 심하면 안성 정도인데, 천안 지나 대전 다 갈 때까지 차량 행렬이 거북이보다 빠른 정도. 결국 한 시가 넘어서야 장수에 당도했고, 아침, 점심밥이라고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핫바와 찐 감자가 고작, 시간을 아끼느라 허덕거린 때문이다.하지만 눈망울 또렷한 아이들을 보니 피로는 싹 가시고 의욕이 솟는다. 나이가 들수록 나태와 타락에 가까워지고, 젊을수록 순수에 가까우니, 역시 젊음은 노쇠를 가르친다. 잘 가꾼 운동장, 잔디밭, 육상 트랙, 교정 건너편에 늘어선 미류나무, 조회대 옆에 포도 넝쿨을 드리우고 있는 포도나무.좋다. 마음이 가뿐해지고 비워지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글이란 뭔지 얘기를 하고 시간 나는 사이에 교실 밖으로 나와 현관에 걸려 있는 것들을 무심코 구경하는데, 학교를 소개하는 간단한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느림보, 깔끔이, 겁쟁이, 다 함께 자라는 장수고! 잠시 이 표어에 시선을 고정시켜 본다. 멋진 표어다.지난 해 여름에도 나는 2, 3일씩 이 학교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장수는 중심도로가 하나뿐인 작은 도시이고, 군청 같은 기관들이 있는 곳도 차량이 뜸하다. 잠시 시간이 비는 사이에 시내 구경을 하는데, 남자애와 여자애가 서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것이었다. 한눈에도 아이들은 학교에 잘 적응 못한 비적응, 비등교 학생들 같았다. 마치 어른들과는 어떤 교섭도 없이 자기들만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아이들.그런데, 저녁에 학교 선생님이 저녁 식사를 사주신다고 해서 따라나섰다 또 그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아주 스스럼없이 선생님 앞으로 와 인사를 하고 말을 붙였다. 선생님을 아주 살갑게 대하는, 머리에 물들인 아이들은 어쩐지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나는 깊은 자애 비슷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밥집에서도 나는 이 학교 아이를 하나 만날 수 있었는데, 바로 그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과 아이가 즐겁게 인사를 주고받는 것을, 나는 속으로 신기하게 여겼다. 서울 같은 곳에서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를 학교 선생님이 만날 기회는 별로 없을 것이다. 이 학교의 비결이 바로 이 표어에 담겨 있는 것 같다. 느림보, 깔끔이, 겁쟁이. 다들 학교에서 왕따 되기 쉽고 겉돌기 쉬운 유형의 아이들이다. 그런데, 다 함께 자라난다는 것이다.나는 새삼스럽게 이 표어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는 현관 벽들에 붙여 놓은 노란 페이퍼들을 돌아본다. 학교 백일장에 출품한 듯한 아이들의 작품들로 시도 있고, 산문도 있다. 이번에 나와 함께 글을 공부하는 아이들의 것도 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짚어보고 사진도 찍는다. 슬픈 사건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정녕 어른들보다 깊다.나는 다시 교실로 돌아가 뒤 게시판에 붙여놓은 아이들의 생일 달력이며, 운동복 셔츠 널어놓은 것이며, 이것저것 버려놓은 쓰레기통이며 비뚤비뚤한 책상들을 본다. 그리고 지금 공강일 강사의 재미난 이야기에 귀를 쫑긋거리고 있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본다.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간다. 하지만 다 같이 흘러가는 것 같다.
2015-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