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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막도서관, 이효석 문학관

등록일 2015-09-10 02:01 게재일 2015-09-1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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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새벽, 용케 눈이 떠졌다. 아홉시까지 문막 읍사무소, 서둘러야 한다.

새벽길은 가을의 초입답게 서늘하다. 고속버스 터미널까지는 하는 수 없이 택시로. 조금이라도 빠른 시각 버스를 타고 가 한적하고 여유 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 여섯 시 십오 분 출발, 버스 안 승객은 많지 않다. 버스는 고속도로 진입로부터 서울 톨게이트까지는 막히는가 싶더니 금방 싱싱 달린다. 일찍 서두른 덕을 보는 것 같다.

원주 가는 고속버스는 문막 간이 정류장에 선다. 제 시간에 문막 톨게이트까지 잘 도착한 버스, 그런데 차단기 앞에 멈춰선 버스가 50㎝쯤 슬며시 후진, 그 순간 뒤꽁무니가 무엇엔가 부딪히는 느낌이다. 버스 기사가 일어나 뒷차에 부딪혔다고, 잠시 이야기를 하고 오겠다고 나간다. 십 분이 넘었다. 모처럼 여유 있게 나온 길이언만. 문막 읍사무소가 여기서 먼가?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다.`김기사`로 문막 읍사무소를 치니, 혹시나 한 게 1.1㎞ 밖에 안 된단다. 그 정도 거리면 정류소에 내려서 가는 것보다 빠를 것 같다.

가방 챙겨들고 `김기사`가 가라는 대로 가본다. 아마 `김기사`가 만난, 가장 느린 자동차일 것이다. 하지만 이 느린 걸음도 걸음은 걸음, 어느덧 나는 읍사무소 방향으로 꺽어지는 곳까지 왔다. 단정한 붉은 벽돌 건물이 맞은 편 모퉁이에 서 있다. 문막 성당이라고 써 있다.

사진 한 장 찍고, 읍사무소로 향하다 문득 사람들에게 사탕이라도 하나씩 나눠드리고 싶다. 사탕은 안 비쌌다. 한 봉지 2천원, 도합 6천원. 편의점에서 나오니 읍사무소 앞마당에 관광버스 한대가 들어온다. 오늘 우리 일행을 실어나를 주역이다. 버스에 오르니 이미 많은 이들이 와 있다. 9시 출발, 날씨도 좋고, 길은 한적하고, 산은 아름답다. 천천히 달려서도 겨우 한 시간만에 우리는 이효석 문학관에 당도했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 문막 교육도서관의 문학 프로그램 수강생 분들과 함께 문화제가 한창인 평창 이효석의 고장에 온 것이다.

이렇게 아늑했던가. 몇 번 와보기는 했지만 정작 이맘 때는 오지 못했던 곳. 이효석이`메밀꽃 필 무렵`에서 달밤에 소금을 뿌려놓은 것 같다고 써 놓았던 메밀밭 메밀꽃이 구릉을 타고 부드럽게 피어 있는 곳, 산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어도 험하거나 답답해 보이지 않는 곳, 마음을 툭 하고 놓아버리게 된다.

나도 사람들을 따라 자연에 안긴 기쁨을 안고 메밀꽃밭 속으로 들어간다. 화요일에 이런 기쁨을 맛볼 수 있다니. 사람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우스개 소리들도 주고받는 틈에, 이게 무슨 냄새?

나는 메밀꽃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아본다. 과연, 시금털털한, 역하다고 할 만한 거름 냄새 꽃, 이 꽃송이가 수천 수만 송이가 모여 거름밭 냄새를 피워내고 있었다.

그렇다. 이효석 소설을 그렇게 여러번 읽고도 정작 메밀꽃 냄새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효석은 자신의 작품에 이 냄새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밤의 서정적인 분위기, 아쉬운 하룻밤 사랑의 이야기 속에 이런 냄새를 풀어놓기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탐미주의자다운 취사선택이다. 드디어 점심, 부드럽고 따뜻하신 도서관장님과, 실무 역할을 멋지게 해주시는 남녀 두분과 같이 메밀국수에 메밀전을 먹는다. 순하고 구수한 맛이 이 고장 바깥에서는 먹어볼 수 없는 일품이다. 가을에 이효석과 메밀꽃과 메밀국수와, 사랑과 열의를 함께 갖춘 사람들과, 또 자연의 순례길을 위해 하루낮을 기꺼이 할애하는 문막의 사람들.

이효석은 그 어려운 시대에 원두커피를 마시고 버터에 빵을 먹고 쇼팽을 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미래의 사람이었고, 이제 우리는 그의 미래를 현재에 산다.

좋은 하루다. 자연이, 문학이 내게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깊이 음미해 보는 날. 하늘은 더 없이 맑고 들은 싱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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