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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후 한국문학과 내면성의 변질

등록일 2015-10-08 02:01 게재일 2015-10-0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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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1990년대가 되자 한국문학의 환경은 급격하게 변모했다. 여전히 계속되는 반체제적, 저항적 문학의 몫은 김영현에 의해 대변되었다. 그의 창작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가 세인들의 관심을 샀다. 다른 한편으로 놀라운 속도로 전개되는 자본주의 적 축적을 배경으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범주화 할 수 있는 작가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경마장 가는 길`의 하일지, `아담이 눈뜰 때`의 장정일, `영원한 제국`의 이인화 등이 그들이다.

이 두 문학적 경향은 모두 정치이념적, 사회경제적 배경에 비교적 직접적인 빚을 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했으며, 특히 김영현이나 하일지, 또는 장정일도 모두 내성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에서 같았다.

현대소설에서 이 내성 또는 내면성의 지위는 독보적이다. 잘 팔리는 소설도 주인공이 이 점을 결여하고 있을 때는 훌륭한 작가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불문율이 우리 문학에서는 통용되는 감이 있다. 내성 또는 내면성을 갖춘 인물은 외부세계와의 긴장과 갈등 속에서 자신이 품고 있는 가치에 관한 고민을 거듭하게 된다.

이 인물이 리얼하게 그려질 때 독자들도 함께 고민하게 된다. 한편 현대소설의 가치가 이 자기의식적 존재를 얼마나 잘 그려내는가 여부에 의해서 판정될 수 있다면, 이후의 한국 사회는 대체로 소설의 가치 구현을 위해서는 불리한 방향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자본의 힘과 문학 사이에 어떤 함수 관계를 설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시장과 교환가치 힘이 긍정될수록 작가들이 내면적 인물을 잘 그려내기는 쉽지 않아진다고 말할 수 있다. 현실에 그런 인물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작아지고, 작가 스스로도 외면적 가치를 추종하는 독자들의 압력을 쉽게 뿌리치기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일본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은 몇 년 전 쓴 글에서 현재를 내면성의 문학이 자기 역할을 다한 시대로 규정했다.

그는 이를 합리화 하기 위해 근대문학의 시대라 해서 내면성의 문학만 지배하는 것은 아니라며 일본문학을 예로 들면서, 사람들이 외면성에 치우치는 시대이고 따라서 내면성의 문학은 종언을 고하고 말았다고, 자못 비판적, 냉소적으로 진단했다. 그 글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의 말이 맞아서 지금 내면성의 문학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면, 나는 이 시대의 마지막을 장려하게 장식하며 그와 함께 나 또한 사라지리라.

그때 나는 이 시대에 새로운 시대를 먼저 맞이하려는 사람은 너무 많고 지나가는 시대와 함께 자기 삶을 마감하려는 사람은 너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가라타니 고진을 믿지 않았다. 내면성은 이 시대가 아무리 인간의 외모와 욕망에 점수를 준다 해도 그것대로 가치에 대한 인식을 이어갈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인간은 건망증이 심하고 귀한 것도 쉽게 내던지곤 한다. 그러나 또 문학은 인간이 발견한 가치들을 자못 끈기있게 보존해 왔다. 내면성도 그런 가치 가운데 하나라고, 나는 생각했다. 가라타니 고진이 주장한 내면성 문학의 종언은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한국문학사의 전개 상황에 비추어 보아도 어디까지는 통용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면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와 타자, 또는 자기를 둘러싼 사회와의 관계를 성숙하게 사유할 수 있는,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더 깊은 의식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자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던가?

이런 내면성의 원리에 비추어보면 지난 20년의 한국문학은, 적어도 표면상 주류문학을 중심으로 보면 내면성의 약화 또는 변질을 보여 왔다고도 말할 수 있다. 시대의 우울, 시대의 병리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유래하는 우울증을 앓는 개인은 문학에서 `무척` 사라지고 개인적 관계에 국한된 얇디얇은 깊은 슬픔이 우울증의 전부처럼 전면에 등장했다. 시대의 우울 따위는 가짜이며 진짜는 한 소녀가 안고 있는 깊은 슬픔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슬픔의 자리에 짜증, 냉소 같은 말을 넣어도 논리는 성립한다. 이러한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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