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보스포루스 해협, 지하교회, 올리브 나무

등록일 2015-09-24 02:01 게재일 2015-09-24 19면
스크랩버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가을이 시작되고 터키에 갔다. 한국과 터키, 경주와 이스탄불을 하나로 연결하는 교류 행사에 동행하게 된 것이다. 동리목월문학관의 후의를 입은 것으로, 대륙과 대륙을 잇는 나라를 참관하는 귀한 기회를 얻게 된 것이었다.

첫 도착지는 이스탄불,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있는 도시다. 인구는 2천만 명이나 되고 면적만 해도 서울의 9배나 되며, 기독교 중심지에서 이슬람 중심 도시로 변화해 온 유서 깊은 도시.

이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면 유럽이요, 이쪽은 아시아, 그래서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의 배경이 된 유럽 종착역이 있었지만 지금은 폐쇄됐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스탄불은 왠지 전혀 쇠퇴하지 않는 것 같다. 너무 넓고 복잡하고, 그러면서도 평화롭고 조용한 도시. 술을 마시지 않고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살기 때문일까. 이슬람 도시가 이토록 평화로운 것은 시리아 난민이 30만명이나 들어와 있다는 소식 때문에 더욱 놀랍게 느껴졌다. 적어도 이 나라는 난민을 30만명 정도는 아무 잡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나라인 것이다. 터키에 갈 때부터 난 무거운 등짐을 진 사람처럼 힘들어 했다. 남이 부과해준 과제가 아닌 스스로 짊어진 것이기에 남탓을 할 수도, 내려 놓을 수도 없는 등짐, 그것은 시인 백석의 말년에 관해 쓰겠다는 것이었다. 그간 취재도 하고 궁리도 했지만 결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많지 않은 경험의 결과로 내가 얻은 교훈 하나는 소설은 결말을 알아야 차착없이 전개시킬 수 있다는 것. 그러면 백석의 말년 이야기는 무엇으로 결말을 지어야 할까? 흔해빠진 엔딩도 아니어야 할 것이며, 그를 죽여서 끝내기는 이미 세상을 떠난 그를 위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인 까닭에, 결론은 잘 나지를 않았다. 한국·터키 학술행사를 마치고 사흘간 터키 이곳저곳을 찾아다니게 되었을 때다. 카파도키아에서 말로만 듣던 지하교회엘 가게 됐다. 지하 85m까지, 그러니까 지하 8층 깊이까지 터널을 뚫고 파내려간 사람들의 도시, 그곳은 로마 병정들로부터 종교적 신념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의지로 이룩된 성소였다. 그들은 박해자들이 오면 동굴 입구나 중간을 돌로 막고 암흑과 같은 어둠 속을 견뎠다. 때로 200년씩 지속된 은신 생활을 이어갈 때 그들의 평균 연령은 겨우 30세 정도. 여성들과 아이들은 땅 위로 올라가지도 못했다.

이것은 모두 사실일까? 그러나 내게 디테일 전부까지 사실이었는가는 중요치 않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인간이란 정신적 동물이며, 그런 한에서 신념을 쉽사리 억압할 만한 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곳에서 백석을 다시 만났다. 1959년에 양강도 삼수에 내려가 살게된 후 모든 공식적 글쓰기를 멈추고 완전한 침묵 속에서 생애를 마친 그는, 상상컨대, 거짓된 언어 대신 첩첩산중의 고독을 선택할 줄 알았던 의지의 인간이었다. 캄캄한 동굴 속 행렬을 따라 다니며 오로지 시인 백석만을 생각했다. 바깥으로 올라오자 햇살이 그렇게 눈부실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어둠 속에서 빛을 만날 때 눈이 멀지 말자고 생각했다. 버스는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를 달렸다.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지평선이 보이는 길을 달려 나무 한 그루 없는 산과 구릉이 잇닿은 곳을 끼고 달려가기도 했다. 그때 그 황야와 산기슭 같은 곳에 이따금씩 나무 한 그루가 홀로 서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물었다. 저것은 무슨 나무냐고. 올리브 나무라고 했다. 그 순간, 내 머리를 치는 것이 있었다. 백석은 세상 사람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어느 시에서,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말했었다. 바로 그 나무를 통해서 그는 지금 저 올리브 나무처럼 황야를 견디는 의지에 관해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터키에서 나는 백석을 다시 발견한 셈이다.

방민호칼럼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