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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역 신칸센 풍경

등록일 2015-12-03 02:01 게재일 2015-12-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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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도쿄역에서 신칸센 열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섰던 청소부들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은 마치 군대의 병사들처럼 청소도구를 들고 차렷 자세로 서 있다가 문이 열리고 손님들이 내리자마자 차량안으로 쇄도하듯 밀려 들어갔다. 그들은 마치 전투를 치르듯 승객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를 걷어내고 탁자를 올리고 팔걸이를 닦고 곧이어 뛰듯이 다음 좌석으로 옮겨가곤 했다.

일분 일초라도 과업을 빨리 완수해야 할 피할 수 없는 사정이라도 있는 듯 그들의 얼굴에는 초조한 빛이 역력했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큰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서둘러대는 그들에게서 일하는 이의 자부심이나 단순한 노동이 주는 평화로움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도 다음 출발 시각에 맞추어 일해야 하고 승객들이 탈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분명 그들의 행동에는 어떤 외부로부터 오는 강제적인 힘의 작용이 느껴졌다. 그것은 인사고과에 반영된다고 선언된 숫자 같은 것일 수도 있고, 그들마다 하나씩 달려 있는 리시버 같은 것으로 시시각각 전달되는 진짜 명령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그것은 혹시 차량 바깥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승객들을 의식한 분주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들은 결코 시민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차라리 현대판 노예라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무엇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이상의 단편소설 `날개`에 등장하는 끈적끈적한 끈에 얽매여 꼭두각시처럼 일해야 하는 노예 같은 느낌을 주는 바가 있었다.

신칸센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일본은 어디나 그런 진지하고도 초조한 표정을 가진, 일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기차 안에서 커피나 과자 등을 파는 직원은 이쪽 차량에서 저쪽 차량으로 건너갈 때마다 인사를 하고 무엇무엇을 파는지를 똑같은 방식으로 알려주며 나아간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점원은 돈을 받을 때 얼마를 받았는지 손님에게 꼭 알려주고 거스름돈을 줄 때도 얼마를 주고 있는지 알려주며 비닐 봉지는 검은 봉지를 쓰고 싶은지 흰 봉지를 쓰고 싶은지 묻는다. 서점에서도 이것은 똑같다. 돈을 주고 받을 때 모든 것을 알려주고 책을 포장할 것인지 그냥 가져갈 것인지를 묻는 그들의 변함없는 방법을 보다 보면 이들은 어쩌면 규율과 복종에 익숙할 수밖에 없는 인종들은 아닌지 생각될 때가 있다. 음식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문이 열릴 때마다 “이라샤이마세(어서 오세요)”를 끝없이 반복해도 질릴 줄 모르고 커피점에서 주문을 받고 음료를 내주는 사람도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호텔 프론트에서 일하는 사람도 똑같은 말을 묻고 답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왜 `호텔 일본어` 같은 책이 나올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오차없이, 그리고 친절하게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는 것, 그것이 일본의 서비스 노동의 일반적 복무 규율이다.

그들은 과연 현대판 노예들인 것일까? 아마 이렇게 표현하는 것을 알면 그분들 모두 크게 화를 낼지 모른다. 그리고 그분들 또한 입장을 바꾸어 소비하는 시민으로 돌아가면,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의 일관되고도 극진한 서비스를 받는 자유 시민으로 서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 있다. 실제로 역에서든, 서점에서든, 커피 전문점에서든, 그 어디에나 자유시민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맘껏 시간과 공간의 자유를 누리며 손님으로서의 자격을 향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나의 눈에는 이 자유시민들조차도 `완전히` 자유롭게 보이지는 않는다. 아니 완전히, 라는 말은 적절치 않다. 그들은 적어도 충분히 자유롭지 못한 듯한 인상을 풍긴다. 대접을 받고 향유하는 것조차 특정한 매뉴얼을 따르고 있는 듯하다. 하기는 어느 사회에 자유방임형의 제멋대로 자유가 흔할까 보냐. 일본은 언제나 한국의 한발 앞선 미래처럼 이야기되곤 한다.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것도, 그래서 직업의 안정성이 떨어지고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져버린 것도 먼저 일본이었다. 과연 이 일본이 한국의 미래형이 되어야 하는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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