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톨스토이를 읽는 겨울

등록일 2016-01-28 02:01 게재일 2016-01-28 19면
스크랩버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날은 춥고 눈은 내리고 봄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게 하는 때다.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을 한겨울에 읽으니 좋다. 톨스토이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먹히던 해에 세상을 떠났고, 그보다 한 십 년 전에 이 `부활`을 썼다. 그는 이 소설을 십 년 정도에 걸쳐 여러 번 고쳐 썼고, 그래서 깊은 그의 생각이 작품에 나타난다.

창녀인 스물일곱 살 카튜샤는 어떤 상인을 독살한 누명을 쓰고 시베리아 유형을 가게 된다. 이를 그녀의 첫사랑이었던 네흘류도프 공작이 알게 된다. 그녀를 구원하기 위한 그의 기나긴 노력이 펼쳐진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 속에서 무엇을 말했나. 그것은 사람이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느냐다. 무슨 권리로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그런 질문을 우문으로 여긴다. 그는 이 어리석은 질문이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우리에게 알린다. 사람이 사람을 구제하는 길은 처벌이 아니라고, 사랑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음을 말한다.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를 그는 누명을 쓴 여인과 이 여인의 불행 앞에서 회심한 귀족 청년의 모습을 통해 집요하게 펼쳐낸다. 귀족 청년이 자신의 사치와 여유의 원천인 토지를 버린다. 자신이 속한 귀족 사회의 영화를 버린다. 유형지로 떠나는 창녀를 따라 머나먼 길을 떠난다. 감옥에 갇힌 사람들과 함께 인생의 의미를 캐묻는다. 추운 겨울 날씨는 `부활`의 메시지를 음미하기 좋게 만들어 준다.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한국 경제가 어렵다는 것까지는 누구나 의견이 같다. 입을 모아 똑같이 얘기들 한다. 그 다음부터는 완전히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세계경제 탓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대기업, 재벌 탓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정부 여당 탓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귀족 노동자들 때문이라고 한다.

원인에 대한 판단이 다르니 해법도 다르다. 그럼 나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여러 개 입장들 가운데 어떤 것을 내것으로 해야 하나? 여기서 어떤 입장을 선택하는 순간 나는 현실적 정치의 일부로 변한다.

또 한 가지 사례가 있다. 대개 현실 비판적인 독립방송의 속성상 지난 한두해 동안 온갖 시사 팟캐스트들은 세월호 참사 같은 문제들에 관해 동정과 연민과 공감을 함께 표명해 왔다. 그런 문제 앞에서 많은 팟캐스트 방송들은 하나였다. 하지만 겨울이 오고, 야당이 둘로, 셋으로 나뉘고, 다시 합쳐지는 과정 속에서 팟캐스트들은 나뉘었다. 그중에 어디를 지지하고 어디를 비판하는 식으로 날카롭게 갈래를 치며 내달렸다. 어디를 지지하고 어디를 비판할 것인가? 내가 만약 이 가운데 어딘가를 택하거나 배척한다면 그때부터 나는 현실 정치의 일부가 된다. 이제 나는 문제를 던지고 답을 구하는 방법을 현실 정치에서 구해내자고 생각한다. 그 일부가 되지 말고, 톨스토이 식으로, 우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도대체 왜 우리는 경제라는 것을 생각해야 하나? 사람에게 경제란 무엇이며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나? 이런 질문들은 우리 정치가 지금 제출하고 있는 답변들의 근거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할 것이다.

톨스토이는 말년에 자기 작품의 저작권을 모조리 포기하려 해서 생각이 다른 아내와 죽을 때까지 불화를 겪었다. 그는 또 교회가 필요없다고 써서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파면을 받고, 정치범들을 잡아 가둘 필요가 없다는 듯이 써서 짜르 체제의 혹독한 검열을 통과해야 했다. 이번에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샌더스라는 또다른 민주당 돌풍이 나타나 대학을 등록금 없이 다닐 수 있게 하겠다고 한다. 동영상 파일로 본 그의 연설은, “우리는 ~을 할 수 있다”면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 바깥에 머무르고 있는 유권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우리는 왜 정치라는 제도를 갖고 있는 걸까. 우리는 왜 경제라는 메커니즘을 운영하는 걸까. 톨스토이식 질문과 답변이 그립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

방민호칼럼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