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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이야기

등록일 2016-03-24 02:01 게재일 2016-03-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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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br /><br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김성한이라는 작가가 계셨다. 1919년에 세상에 나서 2010년에 세상을 뜨셨다. 언론인으로도 활동했던 그는 세상을 우화적으로 풍자하는 소설 작품을 여럿 남기셨다.

이 분 생전에 전화를 드린 적이 한 번 있다. 아마도 2010년 다 됐을 무렵일 것이다. 그때도 나는 일본으로 가 행방이 묘연하던 작가 손창섭에 관한 소식들을 얻고 싶어 했고 그게 이 분께 전화를 드리는 것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이때는 이 분께서도 몸이 아주 편찮으셔서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계셨으니, 몸이 안 좋아서 손 작가 일에 관해서 얘기해 줄 수가 없다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씀해 주시는 것이었다. 나중에 신문으로 이 분의 부고를 전해 듣고 어찌나 괴롭고 죄송스러운지 한동안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그러고는 한동안 이 분의 생각을 잊었는데 며칠 사이에 홀연히 이 분의 한 우화 단편 소설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라 이리저리 사라지지 않고 맴돈다. 그 작품이 바로 `개구리`라는 것이다.

옛날 옛적에 산골짜기 잔잔한 연못에 개구리들이 살았다. 얼룩이, 초록이, 파랑이, 검둥이 등등 이 개구리들은 아무 위협도 위험도 없이 “제멋대로”들 살았다. 어느 날 허공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서 보니 독수리 한 마리가 날아내려 오는데, 큰 바위에 내려 앉은 독수리는 뭇새들을 향해 소리 지르고 엎드리게 하고 쏘아보고 고함도 질렀다. 앵무새도 공작새도 까투리도 꼼짝들을 못했다. 매가 까투리를 잡아다 독수리에게 바치니 공작이 까투리의 배를 갈라 독수리가 편안히 먹을 수 있게 했고, 독수리는 또 뭇새들을 정렬시켜 이렇게 저렇게 훈련도 시켰다.

이런 장면에 비상한 관심을 갖게 된 게 얼룩이다. 이 얼룩이가 또 하루는 보니, 사자를 선두로 한 뭇짐승들이 질서정연하게 행렬을 지어 산을 넘어갔다. 얼룩이는 자기들 개구리 세상에도 독수리나 사자처럼 멋진 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자기 생각에 반대하는 초록이를 제외한 다른 개구리들을 설득해서 제우스 신에게 빌러 올림푸스 산으로 갔다.

개구리 대표 얼룩이가 왕을 내려줄 것을 빌자 제우스는 “이 땅위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바로 개구리들이니 돌아가 뭇개구리에게 선포하고 어리석은 생각을 말 것을 당부”한다. 그러나 얼룩이가 이에 굴하지 않고 또 애걸을 하자 제우스 신은 통나무 하나를 연못에 떨어뜨려 주었다. 얼룩이는 이 통나무를 왕으로 모시려 하지만 초록이는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도가 아니라 편의라며”통나무 위에 올라가 쉬고 놀고 하며 얼룩이를 비웃었다.

분통이 터진 얼룩이, 다시 한 번 올림푸스 산에 올라 제우스 신에게 더 강한 왕을 내려달라고 빈다. 이쯤해서는 제우스 신도 어지간히 화가 났던 모양이다. 황새를 한 마리 내려보내 준 것이다. 연못 속 개구리 세상이 어떻게 되었을까. 초록이는 황새의 날카로운 부리를 피해 간신히 연못 물밑으로 숨기는 하였지만 영영“왕국 최고의 역적으로 철저한 망명 생활을 하게”되고 황새는 포악한 부리로 온갖 개구리들을 넙죽넙죽 잡아먹기 바빴다. 황새는 개구리들에게 `새로운 윤리`를 선포해 준다. “제우스신이 파견한 황새를 위하여 희생되는 것은 신자의 당연한 의무이며 최고의 영예인 동시에 천국에의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믿고 물위로 머리를 내민 개구리들은 영낙 없이 황새의 먹잇감이 되었던 것은 물론일 것이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이제 초록이가 제우스 신에게 빌러 갔다. 황새를 도로 거두어 주시든지 통나무로 다시 바꾸어 달라 한 것이다. 제우스 신은 듣지 않는다. 한 번 있은 일이니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초록이 비통한 목소리로 그렇다면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는 방법이라도 알려달라 하니 제우스 신은 그런 것은 없고 오로지 관념의 조작일 뿐이고, 심지어는 제우스 자신조차 헛것일 뿐이라 한다.

나는 이 얘기가 헛것 같지 않다. 개구리들이 황새들을 앉혀 놓고 이 목숨을 처분해 달라 하기 즐긴다. 생쥐들이 고양이들을 받들어 모시며 자기들을 잘 살려 주겠거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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