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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책의 값

등록일 2016-03-03 02:01 게재일 2016-03-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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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br /><br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얼마 전 뉴스 기사를 보니 `혈의누` 초판이 경매에 나와 장장 칠천만원에 낙찰을 보았다고 한다. 또 작년 말에는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의 초판본이 일억삼천오백만원에 결정을 보았다고도 한다. `혈의누`를 쓴 이인직이라면 천하에 다 알려진 `친일파`인데, 그래도 `최초의 신소설`이라는 딱지 값은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김소월처럼 요절의 `영예`를 안은 이나 백석처럼 눈부시게 하얀 문학세계를 가진 시인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유감도 없다.

한 때 나도 헌책을 좋아해서 찾아다닌 적이 없지 않다. 그 덕에 지금 어디에 박혀 있는지는 잘 몰라도 분명히 내 소유권 안에 들어있는 일제 강점기 소설책 등속을 몇 권 가지고는 있다. 지금도 헌 책을 좋아하는 취미는 버리지 않았지만 값이 이렇게 천정을 모르고 솟아서야 어디 들여다 볼 엄두도 내지 못할 지경이다.

도대체 헌책 값이 이렇게 뛰는 까닭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무엇보다 인식의 변화를 꼽지 않을 수 없다. 헌책이 그냥 헌책이 아니요 문화유산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조선시대니 고려시대니 하는 책들은 이미 그 인식이 확고해서 골동품 상에서나 볼 수 있으니 지금의 이야기는 이른바 근대유산으로서의 책들에 대한 것이다. 근대라 하면 또 규정을 둘러싼 말들이 많겠지만 일단 여기서는 근대적 활자 매체로 출판된 책이라고 해 두자. `혈의 누`같은 구활자본 신소설 책들을 비롯하여 1930년대의 디자인 감각 화려, 세련된 시집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해방 직후의 종이 사정을 반영하는 `똥종이` 인쇄본들에 이르기까지, 그 `옛날` 책들이 이제는 단순한 헌책이 아니요 문화적 가치를 높이 내장하고 있음이 의식되고 있다.

앞의 이유와 관련하여, 우리 옛날 책들이 다른 나라의 비슷한 시기 책들보다 훨씬 희소하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책을 아주 높게 보는 풍습을 가지고 있지만 세 가지 아쉬운 점이 있으니, 그 하나는 국가가 책의 출판을 엄격하게 관장, 제한했던 것이며, 다른 하나는 책을 다량으로 찍을 만큼 경제사정이 좋은 적이 별로 없고, 나아가 있는 것들마저 전란과 재해 등으로 없어진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가 하면 이유는 또 있다. 뭣보다 국책 사업 등으로 한글박물관이 지어지고 한국문학관이 지금 문학진흥법 통과와 더불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는 등 문화적 가치가 있는 책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진 것이다. 수요가 공급을 부르고 그 가격을 결정짓는 경제법칙에 따라 자연히 옛날 책들의 가격이 솟아오르는데 솟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나는 중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오르는 때가 있으면 반드시 내려가는 때도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무섭게 치솟아 오르는 헌 책 값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 하는 문제도 생각해 볼 필요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로서는 올라가면 오르는 대로 내려가면 내려가는 대로 시비 가리지 말고 지켜보는 게 좋다는 것이다. 왜냐. 그 하나는 지금 그런 희귀한 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인생의 오랜 시간을 들여 그것들에 바친 정성을 중히 여겨서다. 또 다른 하나는 내가 만약 그런 좋은 책을 우연히라도 가지고 있다 하면 그런 행운을 빌려서라도 오래된 책이란 좋은 물건임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옛날 것 좋아하시는 우리 어머니께서 잘못 하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집에서 오래된 것을 견디지 못하고 그때그때 버리다시피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집에 아버지가 수십 년 교원 생활 끝에 모아둔 국립공원, 산사의 관광 상품용 앨범들이 다 사라졌고, 어머니가 손수 만드신 오래된 종이 `바탱이`도 처분되고 말았다.

오래된 것은 좋은 것이다. 오래된 책은 좋은 것이니, 그 가격이 높은 것쯤 참아줄 수도 있다. 절대로, 내가 알량한 책 몇 권 가지고 있다고 하는 말 아니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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