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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를 읽는 날

등록일 2016-01-14 02:01 게재일 2016-01-1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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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br /><br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대학은 겨울방학이다. 방학 때도 하는 수업이 있는데 계절학기 강의라고 한다. 이번 겨울에는 오랜만에 이 계절학기 강의라는 것을 맡았는데, 과목 이름은 `창작의 세계`다. 대학의 교과목에는 교양 과목과 전공 과목이 있음은 많이들 아는 일일 것이다. 이 강의는 교양 과목이고, 창작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 스무 명 남짓 수강한다.

처음에는 스물다섯 명이 넘었지만 도중에 수강신청 취소라는 것을 다섯 명 정도가 하고 나니 스무 명이 조금 넘는 정도다. 적당한 숫자인 것 같다. 그보다 많으면 창작물을 읽고 같이 토론하고 또 자기 작품도 써보는 수업의 취지에 어울릴 것 같지 않다. 실제로 시나 소설을 써보는 것이 주된 수업 목표인 때문이다.

본격적인 수업 첫날부터 작품을 놓고 토론을 하자고 하니 학생들은 적지않이 당황해 하는 것 같았지만 하루걸러 수업이 누 차례 거듭되자 대부분 공부할 작품을 미리 읽어 오고 토론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이 많아졌으며 작품을 쓴다는 행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듯했다.

자, 오늘의 수업은 신경림 시를 읽고 토론해 보는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시를 구상해 보는 것이다. 지난 시간에는 젊은 시인으로 각광 받는 진은영 시인의 시집을 놓고 했고 이번 시간에는 신경림 시인의 비교적 최근 시집`사진관집 이층`이다. 사회자를 미리 정해서 시집 중의 시 몇 편을 공부하는 자료실에 올려놓도록 하는데 그중에 `다시 느티나무가`라는 시가 있었다.

“고향집 앞 느티나무가

터무니없이 작아 보이기 시작한 때가 있다.

그때까지는 보이거나 들리던 것들이

문득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나는 잠시 의아해하기는 했으나

내가 다 커서거니 여기면서,

이게 다 세상 사는 이치라고 생각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 고향엘 갔더니,

고향집 앞 느티나무가 옛날처럼 커져 있다.

내가 늙고 병들었구나 이내 깨달았지만,

내 눈이 이미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진 것을,

나는 서러워하지 않았다.

다시 느티나무가 커진 눈에

세상이 너무 아름다웠다.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져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이 더 아름다웠다.”

여기서 학생들은 보이거나 들리던 것들이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게 무엇이냐를 두고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았고 또 이 시가 말하고자 한 바를 두고 좋다는 의견부터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견까지 다양한 반응이 있었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좋다는 것이었다.

이 시를 이 글의 독자 분들도 다시 한 번 봐주셨으면 좋겠다. 내 개인적으로는 학생들이 토론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세상살이의 고통과 부조리를 상대하는 시인의 태도에 새삼스럽게 감명을 받았다. 유소년 시대를 지나 청춘과 숙성의 시기에 접어들면 사람들은 어릴 적의 삶에 대한 경탄을 잊고 악을 비난하고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데 시간과 열정을 소비한다. 노년이 되면 어떤가? 이 시를 읽으며 나 또한 이 시인처럼 세상의 모든 것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미래를 맞이하고 싶어졌다. 욕망과 분노와 비판을 내려놓고 살아있다는 것이 더할 수 없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그런 관대한, 따뜻한 노인이 어서 되고 싶어졌다. 시는 삶을, 또 그것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를 되돌아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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