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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소동

등록일 2016-03-17 02:01 게재일 2016-03-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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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알파고 소동이라고 하면 과장이 될까? 세상은 선거다 공천이다 해서 시끌벅적 소란하기만 한데 한편으로 이세돌 선생과 알파고 씨의 세기의 대결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텔레비전 뉴스를 안 봐서 모르지만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알파고 이야기가 아홉 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악했다고도 한다.

알파고와 대결하기로 결정된 날이 닥치자 이세돌 선생은 자신이 한 번이라도 지면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호언장담은 언제나 금물이다. 알파고 씨가 세 판을 내리 이기는 동안 인간들은 `기계`와의 대결을 둘러싸고 유머러스한 이야기 만들기에 열을 올렸다. 당장 중학생을 둔 엄마들은 알파고가 도대체 어디 있는 학교냐고 물어들 댔단다. 또 노인 분들은 알파고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나 했더니 저렇게 생겼구만, 하고 대신 바둑 두는 아자황 씨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고도 한다.

이세돌 선생이 초반의 불리한 전세를 딛고 절묘한 신의 한 수, 78수로 전세를 역전시킬 때 나 또한 이 대결을 손에 땀을 쥐고 쳐다보고 있었다. 앞의 세 판을 내리 져서 전체 게임의 승패는 이미 결정난 버린 상황, 나는 다른 모든 인간들과 같이 이세돌 선생이 단 한 판이라도 이겨 주기를, 그래서 인간의 자존심을 지켜 주기를 바라마지 않았다.

나로 말하면 초등학교 때쯤부터 바둑을 두기 시작했으니 햇수로만 따지면 기력이 어마어마하지만 실제 바둑 솜씨는 그야말로 바둑이 수준이다. 그런 내 눈에도 그 78수는 기가 막힌 수였다. 그걸 어떻게 알아볼 수 있었느냐? 그날 해설하는 분들이 78수 자리를 미리 예측들 하는데 이세돌 선생이 놓은 자리에 대해서는 아예 아무런 언급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신의 한 수가 분명 세상을 바꾼 것이 분명했다. 알파고 씨는 그 총명한 두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한 번도 입력 받은 바 없는 경우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알파고 씨는 분명 사람처럼 당황해 하는 것 같았고 허둥지둥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괴로워하는 것 같았고 궁리 끝에 초라하기 그지없는 바보 같은 수를 겨우 생각해 내는 것 같았다. 물론 악수였고 거기에 또 악수를 거듭하는 것이었다.

이거 버그 난 거 아닌가요?

해설자 가운데 인공지능 쪽에 밝은 어느 한 분이 이렇게 반문했고 나중에 그것은 정말로 버그 수준의 착점들임이 밝혀졌다.

세 판을 계속 지면서 이세돌 선생은 그 자신이 인류의 대표자임을 어지간히 자각한 때문인지 이 패배는 이세돌 자신의 패배이지 인류, 인간의 패배는 아니라는 명언으로 괴로운 사람들을 지혜롭게 다독거려 주었다. 그러자 네 판 째에 불의의 일격을 당한 알파고 씨도 이세돌 선생의 흉내를 냈다. 이 패배는 알파고의 패배지 인공지능의 패배는 아니다.

바둑을 두는 내내 멋있고 재미있는 말들이 오갔지만 내 머리 속에 가장 깊이 박힌 말이 하나 있다. 비록 알파고 씨가 이겼다고 해도 그는 바둑의 아름다움을 모른다던 이세돌 선생의 소회의 말이다. “바둑의 아름다움, 인간의 아름다움을 컴퓨터가 이해하고 두는 게 아니므로 바둑의 가치는 계속될 것”이라고 하셨다던가.

바둑의 아름다움. 좋다. 이 바둑의 자리에 우리 인간은 온갖 수많은 대체어를 가져다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축구의 아름다움, 인내의 아름다움, 양보의 아름다움, 희생의 아름다움, 웃음의 아름다움, 사랑의 아름다움 등등.

이제 나는 알파고 씨의 새로운 업그레이드 버전은 더 인간답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실수를 했을 때 정말로 괴로워하면서 아자황 씨로 하여금 표정을 일그러뜨리도록 하게 말이다. 또는 패배한 상대방을 보면서 한없이 안쓰러운 감정을 품을 수 있도록 말이다. 아름다움과 연민과 포용을 아는 인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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