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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4·13 관전평

등록일 2016-04-14 01:34 게재일 2016-04-1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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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4월 13일까지 공식적인 운동일은 2주가 채 안 되건만, 하루하루는 길고도 길었던 듯하다.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도 끝도 없으니, 국민의당이 더민주당에서 갈라져 나올 때부터 생각해 보기로 한다.

새로운 정치 실험을 표방하고 탈당, 창당을 했지만, 주요 구성원들이 현역의원들이었다. 새로운 인상을 주기에 미흡함이 있었다. 더민주당에서 새 사람들 영입을 하루걸이로 발표, 빠르게 사태를 수습하는 듯했다. 하지만 연로한 비례대표 다선 인사에 국보위 참여 경력을 가진 비상 대표는`정통`야당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왜 안철수씨를 내보내고 그를 들여오는지? 패권 유지 방편이라 생각하지 않고는 이해 불가였다. 국민의당 화면에서 어느새 다른 유력 정치인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안철수씨 혼자만 부각되자 지지세가 빠르게 회복되었다.

더민주당에서 비례대표 2번 파동에 영입인들의 낙천, 좋지 않은 지역구 배치 등이 이어지고 문재인씨가 비례대표 2번 인사를 만나 사태를 해결했다. 그러자 더민주당은 더 이상 아무 새로움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공천이 끝나고 본격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더민주당은 후보 단일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정의당에 의석을 할당해줄 생각도, 국민의당에 다수파다운 파격안을 제시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나의 당 안에서도 소수는 다수에 복종해야 하듯 여당에 대항하는 연합을 위해서도 소수는 다수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가?

민주주의는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만을 의미하는가? 소수에 대한 다수의 배려를 의미하지는 않는가? 여와 야 사이에서 양보와 타협이 필요하다. 야들끼리도 서로 그렇게 하지 않고 뭉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더민주당은 인터넷에 밝은 정당답게 국민의당과의 경쟁에서 팟캐스트와 트위터 등을 거의 완전히 장악하고 사이버 파워를 가진 이들로 하여금 무차별적인 비판을 가하도록 했다.

그즈음, 여당에서 이른바 옥새 파동이 일어났고, 여권 내부의 갈등이 표면화 되면서, 텔레비전 화면 앞에 모여 앉은 기성 세대의 시선을 자극했다. 힘의 행사가 합리적이거나 상식적으로만 보이지 않을 때, 본질상 스스로를 약자로 인식하는 보통 사람들은 정서적인 거부감을 가지기 쉽다. 이른바 보수 또한 소위 진보만큼이나 비정상적인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울타리에 균열이 생기고 무소속 후보군이 형성되면서 미약하게 보였던 백색바람이 강풍으로 변할 조짐이 나타났다. 이 바람에 동력을 제공한 것은 전통적인 야권뿐만 아니라 또다른 전통적 여권의 일부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강력한 여와 강한 야 사이에 과거보다는 비교적 넓은 중도파의 자리가 만들어졌다. 더민주당은 정의당 쪽으로 조금 밀쳐졌다. 무소속 후보군을 덜어낸 여권도 오른쪽으로 조금 더 치우친 것 같았다.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비례대표 정당지지율로 보면 세 당 사이에 2:1:1이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후보단일화라는 전략에 미련을 품던 더민주당은 차선책으로 전략적 교차투표를 해달라고 호소했다. 경제 난맥상에 대한 책임 문제로 고민하던 여당은 전통적인 북풍과 야권 심판론, 그리고 읍소 전략으로 지지자들의 투표 참여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이 글을 쓰는 시각은 오후 두 시. 앞으로 불과 몇 시간 후면 윤곽이 나타날 것이다. 야권 분열에 따른 여권의 어부지리인가? 수도권에까지 북상한 녹색바람의 현실화인가? 막판에 호남을 두 번 방문하여 존재감을 강조한 문재인씨가 안도하게 될 것인가?

오늘 나는 투표권이 생긴 후 처음으로 투표장에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가기는 갔고 지역구 후보도 선택했고 정당 명부에도 사람 인자 도장을 찍었다. 아무런 감동이 없었다. 긴 고통이 오늘로 일단은 정리될 것 같아서, 안도했다고나 할까. 정치가 이렇게 어둡게 보이는 사람은 비단 나 뿐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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