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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 씨

등록일 2015-05-21 02:01 게재일 2015-05-2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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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강기훈 씨. 내 머릿 속에서 지울 수 없는 이름이다. 이번에 무죄 판결이 나고 신문을 보니 그는 83학번. 나보다 한 살 위다. 그가 김기설 씨 유서 대필 `조작` 사건에 연루된 때는 1991년 5월, 내 나이 27세 때 일, 그때 나는 대학원에 들어간지 2년째, 학교에 적을 붙이고 공부하는 인생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 길은 그렇게 빛나 보이지 않았다.

연속되는 분신자살 속에서, 나는 김지하 시인이 죽음의 굿판을 집어 치우라고 쓴 글을 읽지 않았다. 그런 글을 공표하듯 쓰는 일이 옳지만은 않게 느껴졌다. 한편으로, 릴레이처럼 번지는 자살 릴레이에도 위화감이 아주 컸다.

1970년 11월 13일 바보 전태일의 분신은 역사적으로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러나 1991년의 그때 나는 어두운 시대 현실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한편, 번져가는 죽음을 통한 저항에도 마음이 편치 못했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므로 죽음을 통한 저항이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선택으로 남겨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김기설 씨의 분신 자살 사건이 났고, 유서 대필 `조작`사건이 이어졌다. 나와 다름없이 어리고 어리숙해 보이는 청년 하나가 하루아침에 오랏줄에 묶여 잡혀갔다.

하루도 빠짐없이 가판대에서 몇 개의 신문을 사서 사건 관련 기사를 읽고 또 읽었다. 두 사람의 필체는 내가 봐도 명백히 다른데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전문가에 따르면 같다고 했다.

다른 것을 같다 하면서 그것은 자신의 필적이 아니라고 절규하는 청년을 법원은 신속한 재판 끝에 3년형 중죄인 선고를 내렸다. 그는 그렇게 신문지상에서 사라져 가야 했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사 드라마를 자주 보았고,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미스테리 장르를 즐겨 접했다. 그것들 속에서는 억울한 사람이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고, 심지어 사형을 당하기도 한다. 반대로 중죄를 저지른 자도 그 죄를 감추고 대낮의 환한 공기를 마음껏 향유하기도 한다. 영화 속 인물 앤디가 악명 높은 쇼생크 감옥을 탈출하는 과정을 가슴을 졸이며 지켜 보기도 했다.

그런 일은 강기훈 씨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내 두 눈으로 보기에 죄를 자행하지 않은 자가 3년을 꼬박 채우고 출옥하는 것이었다.

공식적으로는 그가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이가 없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정부나 국가는 얼마든지 그런 일을 벌일 수 있고, 그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힘은 세상에 없는 듯했다.

그러나 이윽고 진실은 눈 앞에 드러났다. 적어도 간암에 걸린 그가 생명의 호흡을 계속하고 있는 지금 새로운 판결이 그의 무죄를 추인해 주었다.

이 사건을 문자 그대로 유서대필 조작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무섭다고밖에 할 수 없다. 죄가 있느냐 없느냐는 법도 아니고 법을 집행하고 판결하는 사람이 만들어낸다. 죄가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세상 무섭다는 것이리라. 주먹을 쓰는 이들도 법을 쓰는 이들도 무섭다는 것이리라.

강기훈 씨가 빛을 잃고 어둠 속에서 진흙 투성이 오욕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나는 다행히 학위도 마치고 그 잘난 글도 쓰고 직업도 얻었다. 기쁨과 보람 같은 것도 몇 번은 있었을 것이다.

그와 나는 같은 세대, 나이는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고 그는 나보다 조금 더 세상을 바꾸는 일에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부모가 있는 자식이고, 그를 감옥에 보낸 국가의 힘의 실체들처럼, 부모들이 꼭같이 그를 걱정했을 것이다.

누가 이 사람에게 무어라고, 한 마디 말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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