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각 6시 24분. 재보궐선거 투표 시간은 저녁 8시까지니까 두 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수도권과 호남의 4개 선거구에서 치러지는 이번 선거에 왜들 이렇게 관심을 갖는 걸까.
세월호 참사 1주기에 무슨 리스트라고 해서 대형 스캔들이 나서 민심이 더욱 날카로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4개 선거구 중 하나가 관악을, 바로 서울대학교가 자리잡은 곳이다. 이 대학이 있는 동네의`옛`지명은 신림9동, 워낙 넓은 신림동이라 그걸 여러 개 동으로 숫자를 붙여가며 나눴는데, 지금은 그 각각이 새로운 동 이름을 가졌다. 바로 옆 봉천동과 함께 달동네로 이름이 너무 높아 이미지 나쁘다고 바꿔 버렸다는 풍문을 들었다. 그래서 지금 신림9동의 이름은 대학동, 참 멋없이도 지은 것 같아 기분 씁쓸하다.
하지만 시간이 좀더 흐르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모든 게 그러니까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이름이야 어디갔든 그곳은 내게 몸의 피부 같이 떨어질 수 없는 곳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대전에서 대학 간다고 서울로 올라와 처음에는 기숙사에 들어가는 행운을 누렸다.`다동 119호`, 가나다라로 이름을 붙인 기숙사의 화재신고 번호방이 나의`룸`이었다.
하지만 2학년부터는 규정에 따라 모두 기숙사를 나가야 했다. 그때부터 자취, 하숙 생활의 연속, 참 안 살아본 집 없이 다 살아봤다. 그런데 그게 다 신림동, 봉천동 산동네에서였다. 반지하방이라는 것을 서울에서 그때 처음으로 겪었다. 말 그대로 반만 지하인데, 이게 몸에 물먹은 솜을 씌워놓은 것 같다. 습기차고 어두워서 들어가고 싶지 않다. 산동네 자취방도 들어가서 살았다. 그때 보증금 50만원, 100만원에 월세 5만원, 10만원짜리 방이 넘쳐났다. 잠만 자는 방, 세면시설이 다 합쳐 하나인 방, 낮에는 못 쓰고 밤에만 쓰는 방, 불 못 때는 냉골방, 대문옆에 푸세식 변소가 있고 그 옆으로 담벼락을 타고 돌아 재래식 연탄아궁이 옆에 문이 달린 방, 공동 수도, 펌프에 변소도 하나인 집이 숱하게 많았고, 그 다닥다닥한 집들이 산언덕을 밀고 올라가 첩첩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이게 지금 관악을이다. 한쪽에는 서울대학교라는 버젓한 학교가 있지만, 도림천이라는 내를 따라 행상들, 시장통 같은 거리, 골목이 이어지고 양 옆으로 양옥집들이 얼마간 있고 그 위로는 남루한 집들이 빼곡한 동네, 지난 30년 동안 변해 보려고 무척 애를 썼고 또 좋아지기도 했지만, 지금도 서울에서 가장 덜 변했고, 가장 옛날식인 동네가 바로 그 관악을 선거구인 것이다.
이번에 이곳에 정동영 전의원이 출마했다. 투표시간이 아직 남았고 변수도 많았지만 여론 추이를 보니 만만찮은 득표를 할 것 같다. 원래 이곳이 헌법재판소에서 해산 판결을 받은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이 있던 지역구였다. 그는 이번에 중도 사퇴했다. 야당에서도 후보를 냈으니 호남 인구가 40퍼센트나 된다는 이곳에서 여당도 승산이 아예 없지는 않다고들 한다. 과연 어떻게 될까? 오늘밤 10시쯤이면 당락의 윤곽이 드러난다고 하니 내일 이 글이 실릴 즈음에는 어떻게든 결판이 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보내며 생각한 게 하나 있다. 어떤 피치 못할 이유로 인해 배가 비록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손 치더라도 누군가 있었다면, 해양경찰의 명령 계통 중에, 해군중에, 선원들 중에 정신 바르고, 양심과 양식에 따라 자기 행위를 결정지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분만 있었어도 우리는 이런 결과를 안 만날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 바로 이것이다.
선거를 또 치르니 나라가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다. 관악을은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 그러나 애써 시선을 접어둔다. 누군가 이 험하고 혼탁한 세상을 건져올려줄 사람이 있었으면 싶다. 과연 선거로 이런 분을 찾을 수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