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하면 생각 나는 것은 백석, 시인. 그 다음엔 박경리, 작가. 또 그 다음엔 윤이상, 독일에 살아야 했던 작곡가,`심청`을 썼던.
하지만 통영, 하면 생각나는 것은 따뜻한 남쪽나라. 덥지도 춥지도 않고 바람 차지도, 매섭지도 않은, 낮은 산과 언덕, 나오고 들어가는 만과 곶, 자그마한 섬들의, 호수 같은 바다의 땅.
밀린 원고를 버스 안에서 메우며 버스를 타고 먼 남쪽 땅으로 간다.
엄살이다. 멀기는 뭐가 먼가. 한반도 반쪽은 너무 좁아 버스 타고 여섯 시간 넘게 걸리는 곳은 없다. 그래도 남쪽은 멀고, 머나먼 느낌, 그 남쪽 끝에 통영이 자리잡고 있다.
통영 하면 생각나는 음식은 중앙시장 근처 충무김밥집 골목 어디선가 먹어보는 충무 할머니 김밥. 맨밥에 김 말아 놓고 오징어 무침이나 무 무침 정도가 고작인 이 김밥이 뭐가 그리 탐난다고? 그건 진짜를 못 먹어본 분들 얘기다. 맛이라는 것은 예리한 감각적 경험이기 때문에 맛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할 수 없다.
겨울이면 단연 굴밥 같은 것을 먹어야겠지만 지금은 벌써 5월, 굴보다는 멍게, 그것도 거짐 끝물이다. 멍게 비빔밥이 좋다. 이 멍게 비빔밥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다. 생멍게를 넣는 방법과 숙성한 멍게를 넣는 방법. 이렇게 쓰다보니 벌써 멍게 향긋한 내음이 입안에 싸르륵 퍼지는 것 같다.
술이라면 또 뭐가 있나? 막걸리는 도산, 산양, 광도 막걸리 등 줄잡아 요 정도가 있다. 제일 흔하게 살 수 있는 건 응응 막걸리고, 내 입에 가장 잘 맞는 건 거시기 막걸리, 조금 시다 싶은 건 또 바로 그 막걸리다. 다 가르쳐 주면 재미 없다.
그런 것 말고, 또 특색 있는 건 술집의`양식`이다. 술집에 양식이라니? 그러나 있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양식이 있다. 통영에서 그건 `다찌`니 `실비`니 하는 속명으로 통한다. 아쉽게도 이번에는 헛물만 켰다. 배가 아파서 기분을 내지 못하게 한 것이다.
아쉽게 다만 상상해 보노니, 그것은 마치 마산의 통술집 같은 것이다. 해물 등 안주는 술에 붙어 계속해서 나온다. 일인당 얼마니, 소주 한 병에 얼마니 해서 내면, 싫도록 먹을 수 있는 술집 양식. 서울이나 충청도에 그런집은 없다.
아침에 동피랑에 올랐다. 동쪽 비탈이라는 뜻이란다. 벌써 20년째 철거대상으로 존속해 오고 있는 언덕 길을 벽그림들을 따라 올라간다. 그림들은 동화적이고 또 공상적이다. 요즘 내가 생각하고 있는 소설을 쓰는데 좋겠다.
그러니까 소설 제목은 `물고기 두 마리`나 그와 비슷한 이름으로 짓고 싶다. 옛날에 일제시대에 소설가 김남천이 있었는데, 그가 쓴 장편소설 이름이 `사랑의 수족관`, 잘 지었다. 수족관에 사는 젊은이들이라는 설정은 얼마나 멋진가.
대전 옛날 중구청 거리를 걷다보면`쌍리`라는 간판 달린 커피숍이 나오는데, 들어가 보면 몹시 고전적이다. 이 쌍리를 우리 말로 쉽게 풀면 바로 물고기 두 마리.
동피랑을 걸어올라가며 나는 따뜻한 어항 속에 든 물고기가 된 것 같다. 발 아래 보이는 통영은 호수 같은 바닷물이 아니라도 도시 전체가 물 속에 든 것 같다. 바로 어제만 해도 비 내렸다는데 날이 왜 이렇게 좋은지?
날이 좋으니까 더 슬프고 우울하다.
사실, 나는 요즘 우울증에 걸려 있다. 아니, 신경쇠약인지도 알 수 없다. 병원에 가서 알프라졸람 성분이 든 약을 처방 받으면 좀 나아질까? 이 두통도? 목디스크도?
통영은 나쁘다. 잘못 왔다. 이렇게 세상이 험한데, 이런 남국의 아름다움, 따뜻함, 기쁨이라니. 하지만 통영은 여전히 통영이다. 맛이 있고 멋이 있는. `가슴이 있는 사람에게는 잊혀지기 힘든`.
나는 이 글을 지금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옆 `커피티처`라는 곳에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