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배달되어 오는 신문 중에 한국일보가 있다. 며칠 전 과사무실에서 이 신문 1면에서 놀랍다면 놀라운 기사를 접했다. 세월호를 인양해야 하는지를 묻는 설문에 국민의 77%가 인양해야 한다는 쪽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또한 60%에 가까운 국민들이 세월호 문제에 관심이 있다고 응답했다.
확실히, 나로서는 놀랍다면 놀라운 기사였다. 그만큼 기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실제로도 사람들은 그 일에 무심해진 듯 보였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왜 이렇게 차가울까? 나는 사람들이 그렇게 냉정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때문에 우리 사회의 앞길을 더 어둡게 읽어냈다. 그것이 지나간 세월호 참사 1년이었다.
한 해가 다 지나 나타난 여론은 달랐다. 사람들은 잊지 않고 있었고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식 잃은 부모들의 슬픔에 깊고 넓은 동정을 보내고 있었다.
며칠 전,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15인 작가들의 공동소설집이 발간되었다.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가 그 제목이었다. 우리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타인의 지극한 불행 속에서도? 국가가 국민을 불행의 나락 속에서 구해주지 못할 때도?
나는 이 소설집 제목이 적이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한다. 즉, 이제는 정말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볼 때가 된 것이다. 과연 우리는 이 세상에 무엇 때문에 왔는가. 인생의 목적은, 보람은 무언인가? 우리 각자는 남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나?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정말 이 질문을 던져볼 때가 된 것 같다.
이 추모소설집이 처음 작가들의 머리속에 떠오른 것은 작년 12월 초순이다. 나는 그냥은, 글 쓰는 사람들이라면, 지나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심상대, 이평재, 이명랑 같은 작가들과 이리저리 얘기를 나누자 서로들 몹시 괴로워하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일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12월 27일 저녁에 마음을 맞춘 열세 명의 작가들이 서울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첫 모임을 가질 수 있었다. 연초가 되자 이 숫자가 조금 더 늘어났다. 나중에 이 작가 모임의 최연장자가 원고를 100매 넘게 쓰다가 포기하는 진통까지 겪었지만 마침내 15인의 작가들 작품이 모아졌다. 모두들 원고료 없이 세월호를 추모하는 한마음 소설집을 만들게 된 것이다.
도중에 표지화를 그려주겠다는 화가를 만나는 행운도 따랐다. 그림은 표지화답게 단순한 구도였고 사람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충격을 잘 표현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어제 작가들이 처음 만났던 바로 그 자리에서 이 책의 출간을 기념하는 작가들 모임이 있었다. 강의가 있어서 오지 못한 작가, 다른 생업이 있는 작가를 제외한 열 명의 작가들이 제 시각에 모였다.
그런데, 다들 표정이 밝지 않다. 얼굴들에 기쁜 빛이 없고, 오히려 우울이 깊어진 표정들이었다. 그럴밖에. 이 책은 발간을`축하`한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책이기 때문일 것이었다.
도중에 노경실 작가가 한 말씀 했다. 우리 선배 작가들은 전쟁 같은, 이보다 더 참혹한 일을 겪고도 글을 썼으니, 우리 또한 써야 하고, 쓰는 일을 중단할 수 없다.
옳은 말씀이다. 이 공동소설집에서 작가들은 말했다. 기억할 것이다, 증언할 것이다, 남길 것이다, 라고. 이 시대에 사회는 문학을 향해 점점 더 허구의 탈을 벗으라고 요구해 온다. 그러나 언어는 작가들에게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쉽게 다다를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그럼에도 이 행위를 포기할 수 없음은 작가들은 오로지 이 언어를 통해서만 우리가 과연 행복할 수 있는가를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길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