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나 자신의 생각은 아니지만 받아들였으므로 이제 나의 생각이기도 한 것이 되었다. 옛날 1926년경에 어느 사상가가 잡지에 이렇게 썼다. 우리나라 사람이고 누군지 다 알만 한 사람이다.
세상에는 정이 있는 사회와 정이 없는 사회가 있다. 서양 나라들은 정이 있는 사회요, 우리나라는 정이 없는 사회다. 그가 그렇게 말했다.
유정한 사회는 그러면 어떤 사회냐? 그것은 태양빛을 받고 비와 이슬을 받는 것 같다. 꽃밭에 사는 것과 같아서 그 사회에는 고통이 없을 뿐 아니라 모든 일이 잘 되어 나간다. 사람들이 삶에 흥미를 붙이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 일을 하고 편안함과 즐거움을 주는 일들이 넘쳐난다.
무정한 사회는 그 반대편에 선다. 그것은 가시밭과 같다. 사방에 괴로움이 가득 차 있어 사람은 자기가 사는 사회를 미워하게 된다. 또 비유하면 그것은 차갑디 차가운 바람과 같다. 공포와 우울이 그 사회를 뒤덮고 사람들은 매사에 흥미를 잃고 위축된 삶을 살아간다.
두 사회가 이와 같을진대 우리는 우리 세상을 유정한 사회, 정이 흘러넘치는 사회로 응당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런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나?
그 분이 주장한 몇 가지 행동 강령을 이 자리에 소개해 본다. 첫째, 남의 일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남의 허물을 적발하기를 조심하고 각자 스스로의 허물을 살펴 그것을 고치기에 힘써야 한다. 물론 이 말은 사회악을 방관하자는 뜻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남의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기 위한 명분을 삼는 행태를 경계함일 것이다.
둘째, 남의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 그는 모진 돌이나 둥근 돌이나 다 그것이 소용되는 장처가 있을 것이라 한다. 다른 사람의 성격이 나와 같지 않음은 당연하며, 그것을 나무라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은 지금 우리에게도 무척이나 절실한 덕목이라고 생각된다.
셋째, 남의 자유를 침범치 말아야 한다. 아무리 같은 뜻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그의 의지를 내 의지대로 결정하고 바꾸려 하지 말아야 한다. 늘 무엇무엇을 할 의향이 있느냐고 묻는 서양 사람의 어법처럼 우리 또한 남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
넷째, 남에게 물질적으로 의뢰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사이좋은 친구들도 돈 문제로 의가 상하는 일이 많음을 지적한다. 돈을 빌려 달라 해서 뜻대로 안 되면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섯 째, 정이 깊고 얕음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 형제들 사이에도 왜 부모가 형만을 사랑하느냐, 동생만을 사랑하느냐 탓하는 일이 많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왜 저 친구는 아무개만 아끼느냐, 아무개만 찾느냐 하고 비난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화내고 괴로워 할 일이 되지 못한다. 좋은 말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얼마나 많던가.
여섯 째, 신의를 지켜야 한다. 서로 간에 약속한 일이 있으면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지킬 수 있을 때 서로 간의 정이 깊어질 수 있으며 지키지 않음으로써 멀리하는 마음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참 힘든 말이다. 약속처럼 하기 쉽고 지키기 어려운 것이 없다.
일곱 째, 예절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의범절을 잘 지키다가도 가까워지면 그때부터 무너진다고 한다. 그 때문에 친애하던 사람들이 멀어진다고 한다. 동창들끼리, 직장에서들 특히 그런 일이 많다.
우리 사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유정한 사회를 향하여 가나, 무정한 사회를 향하여 가나? 지금 우리는 어느 사회에 살고 있나? 그가 꿈꾸던 서양 같은 사회인가, 그가 비난하던 우리나라 같은 나라인가? 우리 스스로를 탓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나 상태는 정확히 진단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