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 났다 싶었다. 거절 못하는 이 천하의 악습을 언제 끊어낼 수 있나. 인문학 강연을 하라는 것도 한다 하고 도서관에서 `심청전`가지고 말해 달라 한 것도 한다 하고 작가론 써달라 한 것도 한다 하니, 이 모든 게 지난 주에 집중해서 밀려들었다.
네덜란드 소년 손으로, 팔로 바닷물을 막아내는 재주를 부릴 수도 없고, 인정 사정 없이 밀려드는 일감들, 이게 다 원고를 써야 하는 것들인데, 이미 지칠 대로지친 심신으로 막아낼 수 없을 것 같다.
글빚처럼 세상에 무서운 것도 없다. 일들이 밀려와 목밑까지 물이 차오른 것처럼 숨이 막히는데, 이번만큼은 무슨 잔재주를 부려도 파탄을 면치 못할 것 같은 절박감에 빠졌다.
구효서론이 이 위기감의 절정이다. 오죽 많이 쓴 작가고 오죽 세심한 작가인가. 문장 설겅설겅 넘어갈 수도 없는데, 하나 읽으면 이것도 있고, 그걸 읽으면 저것도 있다. 죽을 힘을 다해 작가론 원고를 신통치도 못하게 써보내고 나니, 다른 일들은 새로 시작할 엄두를 못내겠다.
메르스라니. 인터넷에서 메르스, 메르스 하는데, 그게 뭔지 신경도 쓰지 못했다.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니, 아무리 첫 화면에 떠도 실시간 뉴스 상위에 오르지 못하면 뉴스로는 가치가 없는 것이나 같다. 원고 더미에 묻혀 그것만 생각하는데, 대체 메르스가 뭐란 말인가.
헌데, 그 낯선 메르스가 조화를 부렸다. 원고 기한에 쫓긴 나를, 천하의 고약한 메르스 씨가 구해준 것이다. 작가론 겨우 쓰고 쉬어지지도 않는 숨을 억지로 고르며 다음 일을 `비극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내게 이게 무슨 가뭄 끝의 단비 같은 소식이냐. 강연이 당분간 연기 됐다는 것이다. 아, 살다 보면 이런 일도 다 보는구나. 뜻하지 않은 낭보에 희희낙락하고 있는 이 못난 중생 앞에 메르스 씨, 또 한번의 단비를 내리신다. 도서관 강연조차 연기라는 것이다. 살았다.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방역이 늦었느니, 정부가, 시장이, 병원이 어떻다고 갑론을박 해도 나는 어찌 됐든 메르스 때문에 살았다고, 씨라는 존칭까지 붙이면서 좋아하긴 했건만 긴장이 풀리니 디스크가 심각한 상태까지 나를 밀어넣는다. 병원비 비싸다는 푸념은 지난 주에 했거니와 방법은 운동, 산에 가는 수밖에 없다고, 북한산에 간 게 더 미련한 짓이었다. 산에 갔다온 다음날 밤에 집에를 가려는데 이 상태로 귀가했다가는 통증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을 지경, 겨우겨우 걸어 집앞 미니 종합병원을 찾아갔다. 응급실이라도 가보자는 것이다. 진통제라도 주사를 맞자는 것이다.
병원 현관문을 밀고 들어갔는데, 아뿔싸, 그제서야 나는 늦게 깨달을 수 있었으니. 평소 같으면 밤에도 어찌나 붐비고 시끄러운 병원인가.
텅 비었다. 아무도 없다. 원무과 접수직원 두 사람이 하품만 할 지경이다. 아, 여기서 돌아가야 하나. 허나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다. 접수 직원 앞에 가서 하나마나한 질문을 던진다.
“여기는 메르스 병원 아니지요?”
“그럼요. 이미 공개 됐잖아요. 저흰 아니예요.”
다행이다. 응급실에 가서 통증 하소연을 하고 주사 맞고 약처방 받고 약국에 가서 약까지 제조 받고, 집에 가서 씻고 닦고 비타민에 마늘까지.
그리고 며칠 지난 바로 어제다. 저녁에 지인들과 술자리가 있었는데 드셔도 과하게 드신 우리 친구 하나. 자리에서 쓰러진 것 까지도 좋았는데 의자 모서리에 눈자위를 찧었다. 눈동자 안 다친 것은 천만다행, 그런데 눈 자위가 퉁퉁 부어 오른다. 피 흐르는 상처는 없고, 앞도 다 보인다지만 아무래도 병원에 데려가야 안심할 것 같다. 가까운 야간병원에 차를 잡아타고 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아, 메르스. 메르스 씨.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들어가기는 가야 하겠는데, 들어갔다 메르스 감염이면 배보다 더 큰 배꼽. 그렇잖아도 아까 메르스 씨가 바로 인근까지 왔다는 소식들이 술안주감이었다.
우리는 눈을 질끈 감고 돌아섰다. 하는 수 없다. 가까운 해장국집 가서 날계란이나 하나 얻어 계란 찜질이나 잔뜩 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