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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 풍속 읽기

등록일 2015-04-02 02:01 게재일 2015-04-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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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대학교 캠퍼스에는 몇년 전부터 눈에 띄는 만우절 풍속이 생겼다.

-오늘은 왜 이렇게 고등학생이 많지요? -글쎄요. 요즘 대학교에 견학 오는 학생들이 많아졌지요. -그래도, 설마, 이 학생들이 다 고등학생들일라구요.

-가만 있자. 오늘 만우절 아닌가요?

-그러면요? -그러고 보니 요즘 재학생들이 만우절이면 고등학교 때 교복을 입고 학교에 등교하더라구요.-그래요?

-정말예요. 어디 한 번 물어볼까요?

교수 일행 중 만우절 설을 주장한 사람이 마침 지나쳐가는 남녀 학생들에게 다가간다.

-실례지만 고등학생이시든가요?

-저희요? 아뇨.그중 여학생이 손을 살레살레 저으며 웃음을 짓는다. -거봐요.

용감한 선생이 일행을 돌아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어, 저는 옛날부터 만우절이 싫었어요. -그래요?

우리는 자못 놀란 눈으로 외국인 교수를 쳐다본다. 이 만우절은 에이프럴 풀스 데이, 즉 서양에서 들어온 풍습이 아니던가?

-구비문학을 전공하고, 그 중에서도 트릭으로 논문을 썼어도 저는 진지해요.

한국말을 너무나 잘 하는 미국에서 온 한국 고전 구비문학 전공 교수!

일행은 다들 웃는다. 트릭으로 논문을 쓴, 원조 만우절 사회에서 온 한국 구비문학 교수라.

일행 중 지나가는 `고딩` `필` 나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진, 용감했던 교수는 속으로 이 신풍속에 대해 생각한다.

몇 년 전부터 뚜렷해진 이 고딩복 입기는 학교 교육에 대한 조롱과, 자신은 거기서 성공적으로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대학교도 그렇게 멋진 곳은 되지 못한다는 냉소 같은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젊은이 풍속이 아닐까 하고.

만우절에 대학생이 된 그들은 온몸으로 거짓말을 한다. 우린 아직 고등학생예요. 우린 아직 대학생이 아니예요. 우리는 지금은, 천만다행히도, 고딩이 아니예요. 우린 오늘만은 대학생 아니라 고딩이고 싶어요.

언제부터,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대학에 들어와도 여유가 없다. 고시를 해야 하나, 대기업에 들어가나, 공기업을 택하나? 언론사는 또 어떨까? 현재가 결핍된 채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생활이 또 시작된다.

작은, 애교 섞인 반항. 성난 얼굴로 돌아보기엔 너무 무서운 기성 사회, 기성 세대를 향해 그들은 일 년에 한번 고등학교 교복을 입는다.

옛날에 겨울 졸업식 때 어떤 학생들은 교복을 찢었다. 칼로 찢다 등에 심한 상처가 났다는 믿어야 할 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소문이 돌기조차 했다.

이제 그런 풍속은 사라지고 만우절이 되면 곱게 넣어 두었던 교복을 빨아 입고 캠퍼스로 등교한다.

이것도 어딘지 모르게 무섭다. 과연 정말 고등학교 교복을 버리지 않고 두었나? 후배에게, 동생에게 물려주기 위해 버리지 않은 게 아니라 오로지 한 해 한 번 있을 만우절 풍속을 위해? 설마, 대학교 2년생, 3년생도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 사실, 무섭지는 않다. 그 유머에 박수도 치고 싶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이 기분, 그 풍속도에 깃든 조롱과 냉소, 반감 같은 것들, 젊은이들 세상이 간단치만 않다.

하나 더, 그 용감한 교수는 생각한다. 그 고등학교 생활을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 둔 학생들은 만우절 때도 교복을 찾아 입지 않을 것 같다고.

중학교, 고등학교 학급마다 학교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5퍼센트 안팎은 된다. 이것이 학교 교육 현실이다. 이 학생들은 `못한` 게 아니라 `안한` 것일 수도 있는데, 그들의 진짜 목소리는 여간해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만우절에 교복을 찾는 학생들은 그래도 여유를 되찾은 이들, 나는 그 바깥의 학생들을 더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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