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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 올려본 자칭 일류 세상

등록일 2015-07-02 02:01 게재일 2015-07-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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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문단에서 이십 년쯤 지내다 보니 이런저런 일 많이 겪게 된다. 신인상에 당선되어 복도에 일제히 형광등이 켜지는 것 같은 환희도 맛보았고, 당선 인사를 갔다 양은 주전자에 물이나 떠오라는 신인 대접도 받아 보았다.

작가 창작집에 해설 원고를 써갔다 이런 원고는 절대 못 실어 준다며 내일 저녁까지 다시 써오라는 편집자 말도 들었다.

그때 이번이 이 출판사와의 인연도 끝이라고 생각했다. 밤을 새워 원고를 다시 써서 갖다주고 뒤로 돌아섰다.

가난하다는 것은 문단에서도 괴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가난한 출판사의 잡지 편집위원이 되면 격도 그만큼 떨어지고 만다. 작가들, 시인들에게 원고료를 제대로 못주니 낯은 그만큼 깎이게 마련이다.

잡지 편집위원 그만 두고는 출판사 기획일도 해보았다. 말이 기획이지 출판사와 작가가 계약하는 것을 돕는 것이다. 사장이 인품이 있으면 견딜 만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영락없는 심부름꾼 신세다.

그동안 맺은 인연들을 밑천 삼아 계약들을 성사시키고 나면 활용 가치 떨어진 계륵 신세가 된다.

이렇게 몇몇 곳을 전전하다 보면 이름은 닳고 신세는 처량해진다. 처음 등단할 때 굳은 마음은 점차 물러지고 일년, 한달, 하루 버티는 일이 힘겨워지는 나날이다.

그런 때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이 바로 김동인의 장편소설 `운현궁의 봄`이다.

김동인은 재능은 대단했지만 붓을 치밀하게 놀리는 작가는 못 되었다. 그의 단편들은 `약한 자의 슬픔`이며 `마음이 옅은 자여`며 `광화사`, `광염 소나타`같은 명작들로 남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정련이 충분히 안된 듯한 인상을 남긴다. 장편소설도 유사한 면이 있다. 이광수의 `단종애사`와 그의 `대수양`을 함께 놓고 보면 그가 얼마나 허술한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운현궁의 봄`만은 대단하다. 갓끈 떨어진 상갓집 개 흥선대원군의 비애와 야심과 기상을 이 작품만큼 잘 보여준 작품도 없다. 김동인은 인간의 나약함에 괴로워하면서 자기 운명의 주인공이 되는 자를 멋지게 그려내고 싶어 했고 마침내 이 작품에서 그는 승리를 거두었다.

비록 권력의 일이지만 흥선대원군의 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누구나 업신여기는 삶을 이어간 끝에 자기의 꿈을 이루고야 말았으며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랐다.

문단에 나가보면 흥선대원군 시절의 대갓집 상가 같은 곳이 제법 많다. 자신을 재상쯤 되는 착각하는 이도 많고, 곧 있으면 판서가 되렸다고 호기를 부리는 이도 많다. 권세 있는 집에서는 마름이나 하인들도 다들 헛기침을 하고 드나드는 사람들을 짯짯이 쳐다보며 못마땅해 하곤 한다.

권세든 권력이든 힘에 관한 것은 그렇다 치고 그런 문단집에서 가장 목불인견인 것은 자신들이 일류임을 믿어의심치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름하여 자칭 일류들이 어찌나 많은지,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추켜주며 일류 놀이 즐기기에 여념들이 없다.

그러나 세상에, 아니 이 비좁은 한국 땅에 그것도 문학 동네에 일류가 그렇게들 많다면 어째서 한국문학의 오늘이 지금 이런 모습을 하겠으며, 또 잊을 만하면 솟아나는 표절 논란은 왜들 일어나겠는가?

최근에 문단에 일고 있는 자칭 일류들의 소동을 보면서 지금 생각하는 것은 지난 15년 동안의 작품들 가운데 좋았던 장편소설, 창작집들을 전면 재검토해야겠다는 것이다.

표절 작가 것은 더욱 엄격히 보고 자칭 일류들에 밀려난 진짜 일류는 없었는지 그야말로 짯짯이 살펴봐야겠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이 자칭 일류들의 자화자찬 놀이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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