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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때도 삶은 빛난다

등록일 2015-07-30 02:01 게재일 2015-07-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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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br /><br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밤에 잠 못 드는 것은 체질이 바뀌어선가 디스크 때문인가 또 다른 외부적 요인 때문인가.

요즘 며칠 밤마다 영화를 본다. 영화도 지금 영화가 아니요, 옛날 옛적 한참 시간이 흘러간 영화다.

아주 어렸을 때, 1970년 언저리 즈음에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본 아역배우 김정훈이 나오는 영화는 무엇이었던가.

공주극장 `비 내리는` 화면 속에서 본 교통사고 당한 아이를 보며 서럽게도 울었는데, 도대체 무슨 영화였던가.

`미워도 다시 한번`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찾아서 끈기있게 본다.

유부남 신영균의 아이를 갖게 된 문희와 아버지 없는 아이로 성장하지 않을 수 없는 김정훈의 이야기는 내 폐부를 찌른다. 한밤에 나는 신파 영화를 신파로만 볼 수 없는 눈물을 흘린다.

`고교 얄개`도 본다. 이 얄개 시리즈의 하나를 나는 고등학교 때도 본 것 같은데, 이 영화는 그 원조격으로 이승현, 김정훈, 강주희 등을 청년들의 우상으로 만들었다.

1970년대는 역사적으로 보면 결코 밝은 시대였다고만 생각할 수 없는데, 그럼에도 얄개에게는 꺽일 수 없는 개성과 장난기와 순정이 있었다.

교복이 자율화 된 게 언제였던가? 내가 고3 되던 1983년이다.

교복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일제식 검정교복을 착용해야 했던 시절에도 자라나는 아이들의 생명력은 풋풋하고도 푸르렀다.

내친 김에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도 본다.

이 영화가 기법적으로 이렇게 새로웠던가 하는 감탄사와 함께 작고해 버린 원작의 작가 최인호의 감각과 감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서 무엇보다 오경아 분 안인숙의 끼가 넘치는 호스티스 연기에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끝내 경아는 세상을 떠나야 했지만, 살아 있는 동안 그녀는 누를 수 없는 생명욕을 품고 굳세게 삶의 편에 서고자 했던 여인이었다.

그리고 이틀 동안 최인훈 장편소설 `광장`을 뜯어보고 있다. 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즘 들어 자꾸 흘러간 것, 지나간 것들에 관심이 가고, 그 어렵던 시절을 살아간 영화 속,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에 `주책 없는` 감동을 받는다.

어쩌자고 이명준은 북으로 갔더란 말이냐. 또 중립국을 향해 타고르 호를 탔더란 말이냐.

그가 회색빛에 둘러싸인 삶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데올로기 대신 사랑을 갈구해 마지 않았던 자의 역설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선택이 아니었던가.

나는 길 가는 중에도, 차안에서도, 자다 깨어서도 세로로 인쇄된 정향사판 1961년의 `광장`의 고색창연한 문자들을 본다.

이명준의 생생한 추구는 그가 세상에 나온지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 아니던가.

영화를 자주 보는 때를 타서 그런지 오늘은 독립영화 만드는 사람들께 우리 소설을 설명을 드리러 갔다.

김유정의 `동백꽃`이며,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며,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같은 작품들을 위해 크로포트킨이 어떻고, 톨스토이가 어떻고 하는 장황한 이야기를 내놓고, 그 사이에 좌석에 앉은 젊은이들의 명민한 눈빛을 산다.

이들은 이 어둡고 험한 시대에 저렇듯 푸르른 게 아니냐고 생각한다. 이 경쟁과 부자유의 시대에 영화, 그것도 독립영화라니. 이들은 어쩌자고 예술의 길을 걷고자 하느냐 말이다.

하지만 어두운 때도 삶은 그 자체로서 발광체임을,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음을 이네들이 내게 말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젊음은 노쇠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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