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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이라는 말

등록일 2015-04-23 02:01 게재일 2015-04-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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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사전에서 경영이라는 말의 뜻을 찾아본다. 1. 기업이나 사업 따위를 관리하고 운영함, 2. 기초를 닦고 계획을 세워 어떤 일을 해나감, 3. 계획을 세워 집을 지음, 4. 궁리하여 일을 마련하여 나감. 뜻이 많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의 중심적인 의미를 경제활동에 관한 것으로 이해한다. 경작이라는 말을 이곳저곳에 두루 쓰기는 해도 그 중심적인 뜻은 농사에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하지만 어떤 말이라도 그 뜻은 멀리까지 확장되어 쓰일 수 있다. 그런 확장적 용어를 대변하는 말 중의 하나로 `공학`이 있다. 공업이 산업중의 산업으로 부상한 이래 이 말은 수많은 다른 말들과 결합, 합성어를 양산하는 어휘로 급부상했다. 물론 인간공학이라는 말도 생겼다. 아니, 이것은 어엿한 분과 학문의 명칭이기도 하다. 그것은 인간과 그들이 사용하는 물건과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학문을 가리킨다.

경영이라는 말도 그렇다. 공학이라는 말처럼 이 경영도 오늘날 아주 광범위하게, 탄력적으로 다른 말들과 결합해 나간다. 인간공학처럼 인간경영이라는 말도 아주 빈번히 인구에 회자된다. 대학도 운영한다기보다 경영한다고 하고 병원도 운영한다기보다 경영한다고 한다. 아마 지방자치단체도, 정부도, 기업처럼 경영해야 손해를 내지 않고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경영의 전 부문화, 경영이라는 말의 사람의 삶 전체로의 확산, 우리는 지금 이같은 경영`주의`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경영이라는 말은 물론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의미망이 넓다. 하지만 그 중심적 의미는 여전히 기업이나 사업을 움직여 나간다는 첫번째 뜻에 있다. 뭔가를 움직여 이익을 창출하고 그것을 통하여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간다는 뜻이 이 경영이라는 말의 중심적 범주인 것이다.

대학은 경영해야 하는 걸까? 병원은 또 경영해야 하나?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경영이라는 말로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는 일들을 포괄하고 있다. 대학의 고유한 역할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는 데 있고, 이 교육은 경영보다 높거나 넓은 일들을 가진다. 교육은 이익을 남기거나 효율적으로 움직여 나가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 심지어 그것은 늘 손해만 보면서도 유지되어야 할, 사회 구성의 핵심적 요소라고 아니할 수 없다.

병원도 사설병원은 혹여 입장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근본에서는 같다. 병원 의사의 본질적인 역할은 병든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다. 이 고유성이 경영이라는 말의 힘에 휘둘리어 본말이 전도된 상태에까지 이르면 의학, 의업의 가치는 땅에 떨어진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그런 본말전도를 여러 곳에서 보게 된다. 많은 대학의 교수들이 대학의 효율적 경영이라는 요구에 밀려 자신의 가치에 대한 신념을 잃어버리고 있다. 형편이 좋지 않은 대학만 그런 것이 아니요, 좋은 대학은 좋은 대학대로 더 많은 효율성, 생산성, 이익 창출 같은, `절대가치`를 내세우는 논리에 휘둘리고 있다. 그리고 그 많은 곳의 움직임을 주도하는 행정가들은 이공계 출신, 기업 출신으로 많은 성과를 내놓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진보란 손실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문장이다. 나는 이것을 놀라운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효율, 생산, 이익이 진보라면 그 진보는 손실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손실은 진보를 통하여 얻은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이었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들 삶의 아이러니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는 사이에 오히려 우리는 금쪽 같은 과거를 잃어버리고 있다!

언젠가부터 나는 진보라는 말을 싫어하게 되었다. 더 많은, 더 나은, 그러나 더 조악하고, 더 품격 없는 진보를 너무 많이 본 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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