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은 우화를 만들고 후손들은 거기에서 지혜를 얻는다. 그렇다고 모든 우화가 개인을 완전히 설득시키는 것은 아니다. 라 퐁텐느 우화 중에 유명한 `참나무와 갈대`편을 보자.크고 강한 참나무는 개울가의 갈대를 은근히 비웃었다. 저건 뭐, 바람이 없어도 머리를 숙이고 있는데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금세 가는 허리를 허공에다 굽실대는 것이다. 저렇게 줏대 없이 살 바엔 콱 죽어버리는 게 낫지, 참나무는 생각했다. 폭풍우가 몰아쳤다. 튼튼한 뿌리와 너끈한 허리로 참나무는 바람을 견디려했다. 웬 걸, 안간힘을 썼지만 뿌리는 통째로 뽑히고 허리는 갈가리 찢어졌다. 떠내려가던 참나무가 죽을힘을 다해 갈대에게 물었다. “니들은 어째 안 뽑혔노?” 맞장 뜨지 않고 흔들리며 바람이 지나는 길을 터줬기 때문이라는 현명한(?) 대답이 들려온다.우화 내용에 공감이 갈듯말듯 미묘해진다. 라 퐁텐느가 말하려는 가장 큰 주제는 강한 게 강한 게 아니고 약한 게 꼭 약한 것만은 아니다, 정도가 될 것이다. 지혜로우면 살고 어리석으면 죽는다, 라는 말도 성립되겠다. 저항하면 죽고 피하면 살 수 있다는 논리로까지 연결되고, 갈대의 행보에 과연 지속적인 행운이 따라줄 것인가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된다. 그렇게 살아남은 갈대에게 무슨 큰 삶의 의미가 있을 것인가. 약하지만 현명하게 살아남아 강자처럼 보이기도 하는 갈대, 그렇다고 갈대가 강자 입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무심한 농부의 낫질 한 번, 장난스런 아이들의 손끝 한 번에 바로 스러지고 마는 게 갈대의 운명이다. 살아남아도 갈대는 갈대요, 죽어도 참나무는 참나무일 수밖에 없다.굽히면서 당당하고, 빳빳하면서 비굴할 일은 세상에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만사 복잡하고 어지러운 것은 그 모순의 경계에 우리 삶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참나무나 갈대의 상황 중 어떤 것이 옳다고 속단할 수도 없다. 현실에서는 그 어떤 것도 영원한 승자나 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때그때의 상황 논리에 따라 꺾이거나 흔들리며 그렇게 우리는 살아간다./김살로메(소설가)
2015-01-30